[특파원 칼럼] 한·미·일 전략은 있나
미국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 커트 캠벨은 지난 7일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북한이 더 이상 미국과의 외교에 관심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아닌지를 우려한다. 이는 우리가 억제력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미 오래전 실종된 대북정책의 실패를 자인한 말이었으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한·미관계를 취재하는 입장에선 캠벨의 일본 관련 발언에 좀 더 눈길이 갔다. 한국, 일본과의 3자 협력 강화를 핵심 성과로 꼽은 그는 “일본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자 세계무대 파트너”라며 “일본과의 긴밀한 협력 없이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일 미 대사를 지낸 빌 해거티 상원의원(공화)에게는 “일본은 우리 모두에게 각별한 나라” “우리는 일본에 대한 깊은 사랑을 공유한다”는 말을 건넸다. 전후 일본 형성 과정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과시라도 하듯 “우리는 그 잔해(rubble) 위에서 놀라운 일들을 해냈다”고도 했다.
청문회장에서 일본에 대한 ‘극진한 마음’을 거듭 표시하는 것은 다소 의아했고, ‘잔해’ 언급에선 빈약한 역사이해가 도드라졌다. 그럼에도 발언 내용 자체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다. 미·일 동맹을 대아시아 전략의 핵심축으로 여기는 소위 워싱턴 ‘아시아통’ 인사들의 인식을 그저 대변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궁금점이 생겼다. 과연 윤석열 정부는 미·일 동맹의 막강한 위상을 직시하면서 한·미·일 공조의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을까였다. 미국의 ‘1등’ 동맹은 일본이고, 한국은 ‘2등’이라는 식의 무의미한 등급 매기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국력이나 동맹을 규율하는 서로 다른 체계에서 기인하는 구조적 차이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을 ‘가장 중시’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고, 전방위로 뻗어나가고 있는 한·미·일 협력을 점검해 한국의 전략을 가다듬을 때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매달려온 한·미·일 ‘일변도’ 외교의 득실을 따져볼 시점이다. 미·일과 늘 ‘세트’로 묶여 다니는 것이 한국의 외교적 공간을 오히려 좁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한·중 정상회담이 불발된 것은 불길한 징후였다. 한국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중국 대표단에 한국어 통역은 빠졌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각각 회담했다. 곧이어 얼굴을 맞댄 두 정상은 “각자가 하고 있는 중국과의 외교에 대해 논의하고, 계속 긴밀하게 조율해나가기로 약속했다”고 백악관이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한·중 정상회담 무산을 중국의 ‘한국 길들이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3국 공조의 무게중심이 북핵 공조에서 중국 대응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한국은 미·일의 대중국 논의를 먼발치에서 구경해야만 했다. 한·중관계에서 실기(失機)하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격상된’ 한·미·일 협력체제에서 한국만 소외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다음엔 이런 일이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김유진 워싱턴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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