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팔현습지 산책로, 수리부엉이 부부에게 먼저 물어보라
대구 금호강 팔현습지에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이 건설하려는 자전거도로 겸 산책로 연결사업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 사업은 제방길이 끝나는 무제부 산지를 따라 그 앞으로 교량형 산책로를 건설해 끊어진 길을 잇겠다는 것이다. 이 산책로로 말미암아 법정보호종 야생생물들이 그 터전을 잃게 될 것이라 지역 환경단체들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무제부 산지와 강이 연결된 이런 곳은 생태적 온전성이 유지되는 곳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들이 인간의 각종 개발행위를 피해 최후의 보루로서 머무르게 되는 곳이다. 이를 생태학적 용어로, ‘숨은 서식처’(cryptic habitat)라 이른다. 반드시 보전해야 하는 핵심적인 생태 공간이란 말이다.
문제의 산책로는 바로 핵심 생태구역이자 ‘숨은 서식처’에 해당하는 하식애 앞에 8m 높이로 건설된다. 산과 강의 연결된 생태계를 갈라놓아 심각한 생태적 교란을 야기할 수 있다.
대안 노선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강 한가운데 2012년에 놓인 강촌햇살교란 잠수교를 통해 강 건너편의 잘 정비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이용해도 된다. 그런데도 굳이 무제부 산지 벼랑 앞으로 새 길을 내겠다 한다. 1.5㎞에 이르는 이 산책로를 건설하는 데 예산만 무려 170억원이 투입된다. 그 결과 얻는 이점이란 것이 고작 10분 정도의 시간 단축이다. 환경부는 직선 길로 10여분 단축하기 위해 170억원의 국민혈세를 쓰고, 멸종위기종들의 최후 보루인 ‘숨은 서식처’마저 건드리는 일을 벌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 환경부에 의해 지금 대구 금호강 팔현습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해결책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올해 초 당시 홍동곤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은 환경단체들의 이런 우려들에 대해 공감하고, 문제의 산책로 사업을 하지 않겠다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이처럼 소신 행정을 펼쳤던 홍 청장이 환경부 본부의 질책을 받고는 입장을 번복해 버리는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일선 환경청의 소신 있는 행정에 환경부가 제동을 걸어 멸종위기종들의 서식처를 파괴하는 행위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아무리 거꾸로 가는 환경부라지만, 산하기관 행정마저 뒤집어엎으며 오히려 ‘환경 파괴부’의 면모를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 단서는 이 사업의 최초 제안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초 제안자는 다름 아닌 대구시였던 것이 최근 대구시 공문서에서 밝혀졌다. 대구시가 2020년 7월 금호강 좌안 자전거도로·산책로 연결사업을 국가사업으로 시행해줄 것을 건의했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팔현습지는 대구의 3대 습지이자 야생동물보호구역이고, 철새도래지이자 생태자연도 1등급지가 포함돼 있는 아름다운 자연 습지다. 이런 습지를 보전해 후대에 길이 물려줘야 할 대구시가 이곳에 ‘막개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 환경부는 이런 대구시의 요구를, 아니 대구 표심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 팔현습지에는 금호강 대구 구간 전체(42㎞)에서 목격된 13종보다 더 많은 14종의 법정보호종이 살고 있다. 문제의 산책로가 놓일 무제부 산지인 하식애 중턱에는 수리부엉이 부부가 둥지를 트고 곧 포란(抱卵)에 들어가려 한다. 이 산책로가 예정대로 건설된다면 이들 수리부엉이 부부는 이곳 하식애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 된다. 이대로 공사가 강행된다면 그들에게 너무 못할 짓을 벌이는 셈이 된다. 그러니 탐욕에 가득 찬 인간들이여, 이곳에 공사를 하려면 적어도 이들 수리부엉이 부부에게 먼저 물어볼 일이다. 왜냐하면 팔현습지는 이들의 마지막 집이기 때문에.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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