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후보자 "이재용, 여전히 '국정농단' 피해자라 생각"
정형식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국정농단의 피해자'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 후보자는 2018년 이 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에서 1심의 실형 판결을 깨고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 있다.
정 후보자는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지금도 이재용 당시 피고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한테 협박당해서 뇌물을 가져다줄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 후보자는 2018년 2월 서울고법 형사13부 재판장 시절 이 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을 맡아 1심 재판부가 선고한 징역 5년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정 후보자는 국정농단의 주범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인 만큼 이 회장의 혐의는 박 전 대통령의 압박에 의한 '요구형 뇌물'이었다고 판단했다. 최 씨에게 말 3필이 제공됐으나 그 소유권까지 최 씨에게 이전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뇌물 인정 금액을 86억여 원보다 적은 36억 원대로 낮췄다.
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서면질의 답변서에서도 '요구형 뇌물'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36억 원도 그 자체로 보면 거액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박 전 대통령의 압박에 의한 요구형 뇌물이라는 점을 감안해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했다"면서도 그는 "물론 그렇다고 제공된 금액의 뇌물 성격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다만 정 후보자는 "사건이 대법원으로 올라가 제 결론과 달라진 것을 인정한다"며 "대법원 판단을 존중한다"고 했다.
박용진 의원은 "대법원 판단을 존중하려면 본인 판단의 오류를 인정해야지, 본인 판단을 (그대로) 주장하면서 대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는 것은 해괴한 이야기"라며 "그때는 그렇게 판단할 수 있었지만 최종심이 나와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판단이 맞다고 하면 되느냐"고 질타했다.
정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법무부 인사검증단의 역할에 대해 비판적 답변을 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법무부가 사법부 인사검증 업무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취지로 묻자 "그 자체가 사법부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부적으로 행정부(법무부)가 사법부를 검증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후보자는 검사 탄핵 등 민주당이 주도하고 있는 연이은 탄핵소추권 행사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정 후보자는 '민주당이 의석 수를 내세워 탄핵소추권을 남발한다'는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의원들이 판단할 때 헌법적 가치에 어긋났다고 생각해 탄핵소추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제가 재판관이 되면 탄핵 사건을 담당해야 하므로 구체적 내용까지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즉답을 피했다.
민주당은 정 후보자가 2021년 차남에게 1억7000만 원을 빌려주고 세법상 적정 이자율(연 4.6%)에 한참 밑도는 연 0.6%의 이자를 받아 논란이 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현재 정 후보자 차남은 상환액 4000만 원을 제외하고 1억3000만 원에 대한 이자 월 6만5000원을 정 후보자에게 내고 있다.
정 후보자는 "세법상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고, 박용진 의원은 "불법이 아니라는 후보자의 태연한 답변이 서민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용진 의원은 "고위 재판관의 자녀와 서민의 자녀 출발선이 달라서야 되겠느냐"며 "판사 아빠도 아니고, 돈 있는 부모도 아닌 집의 자식들은 월 52만 원의 이자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드님 연봉이 8000만 원이라 디딤돌 대출은 못 받고 (시중은행 대출을 받으면) 50만 원의 이자를 내야 한다"며 "국가고위 법률가가 세테크에는 민첩한데 국민적 상식과 사회적 정의, 국민적 눈높이에 둔감한 모습이 국민이 원하는 이 시대의 헌법재판관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 후보자는 "자식에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받는 부모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그런데 이자를 받은 것은 명확하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해명했다. 이어 "제 아들과 같이 부모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는 환경에 처하지 않는 국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제가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민주당의 지적에 국민의힘 박형수 의원은 "부모로부터 차용도 할 수 없는 젊은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가능하다"면서도 "그렇지만 재벌집에 태어난 사람이 있듯이 아닌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제도적으로 증여세 내는 것이 우리 사회 방식인데, 상대적 박탈감 느끼는 사람들에게 다 맞추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사회로 가자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후보자는 "사실 부모가 아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로 6만5000원을 받는 다는 게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면서 "작은 아들이 먼저 결혼을 했고 큰 아들은 결혼을 안 했는데, 작은 아들에게 지원한다는 게 큰 아들 보기에 민망스러운 것도 있어서 이자를 받겠다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 후보자는 또 과거 해외 연수에 미성년 자녀들을 동반하면서 관용여권을 발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 후보자는 2003년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국제화 연수 프로그램으로 영국 등 유럽을 방문하면서 당시 초등학생, 중학생이었던 두 자녀를 동반하고 관용여권을 발급받았다.
정 후보자는 자녀에 대한 관용여권 발급이 "부적절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왜 저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관용여권을 굳이 발급받을 필요가 없었는데 발급받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 비용은 제가 모두 부담했다"며 "공무로 해외에 나갈 때 어긋나게 나간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한편 정 후보자는 사회적 공익을 위해 동성애를 제한할 수 있느냐는 조정훈 의원 질의에 "공익적 필요가 있다면 제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면 답변을 통해서도 "동성애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나 사생활의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지라도 다른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제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정연 기자(daramj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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