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 "국민께 적십자사 활동 더 많이 알릴 것" [세계초대석]
10·20대 헌혈률 높아 혈액 수급 괜찮은 편
장기적으론 어려울 것… 헌혈자 혜택 논의
의대정원 문제 앞서 필수의료 꼭 살려야
코로나19 때 큰 역할 적십자병원 경영난
공공의료 역량 강화… 새롭게 도약 모색
北 더 고립된 상황… 이럴 때 서로 대화해야
한반도 기후문제 해결 협력 의향도 피력
‘강진’ 튀르키예 등서 해외구호사업 활발
“봉사자들이 존경을 받고, 자긍심을 느끼면서 신나게 봉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지난 7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서울사무소에서 진행한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내과 전문의이자 현재는 의료재단 이사장인 김 회장은 최근 정부의 의대정원 추진과 관련해 필수의료 수가 문제나 사법리스크 완화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또 전국 7개 적십자병원을 새로 단장해 공공의료 및 지역 필수의료 부족 해소에 기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다음은 김 회장과 일문일답.
―그간 해왔던 다양한 사회 활동과 적십자사의 일들은 어떻게 다르나.
“가장 큰 차이점은 사업의 다양성과 사업의 영역이 넓은 점이다. 의료인은 병원사업이 중심이지만 대한적십자사는 정부의 인도주의 사업 보조자로서 다양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를 포함한 191개국 자매적십자사와 국제적십자위원회, 국제적십자사연맹과 국제적으로 공조하며 글로벌 인도주의 사업도 수행하고 있다.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병원사업과 국가로부터 위탁받은 혈액사업, 그리고 재난 이재민과 복지사각지대 취약계층을 돌보는 구호사업, 재난예방 및 재난심리회복지원사업, 심폐소생술 등 안전사업, 개발협력 등 국제사업, 이산가족 등 남북교류사업, RCY 청소년사업, 원폭피해자 및 사할린동포 지원사업, 그리고 인도주의 활동을 위한 모금활동까지 정말 다양하다.”
―대한적십자사의 재난구호활동은 어떻게 이뤄지나.
“재난이 발생하면 소방, 행정당국 다음으로 현장에 도착하는 곳이 바로 대한적십자사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 역사적 사건뿐만 아니라 올해 발생했던 각종 재난 현장에서 가장 먼저 달려가 구호활동을 펼쳤다. 재난이 발생하면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20만 적십자 봉사원과 15개 지사에 배치된 구호물자와 장비가 긴급구호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현장에 투입된다. 올해 전국적인 산불과 집중호우가 발생했을 때, 적십자 직원과 봉사원 등 구호요원이 현장에 출동하여 이재민에게 쉘터, 긴급구호품을 제공하고 특수차량을 이용해 급식과 세탁에 이어 샤워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대한적십자사는 행정안전부와 함께 17개 시·도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를 운영하며 재난 현장에서 구호활동과 더불어 이재민에게 심리적 응급처치와 무료 심리상담뿐만 아니라 찾아가는 심리지원 서비스도 제공한다. 재난과 같은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 직후에 제공되는 심리적 응급처치(PFA: psychological first aid)는 재난 경험자의 초기 고통을 경감하고 장기적 기능 회복을 도모하는 활동이다.”
“우리나라도 과거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성장한 만큼 대한적십자사도 국격에 맞게 국민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성금이 가장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난 2월 대형 강진 피해를 본 튀르키예 이재민을 위해 보금자리 1000채가 있는 ‘한국·튀르키예 우정의 마을’을 건설했다. 튀르키예는 6·25전쟁 때 네 번째로 많은 군대를 보내준 형제 나라다. 지난 10월부터 입주를 해서 현재 2607명의 이재민이 거주하고 있다. 국산 가전제품이 다 들어 있어 현지 이재민들에도 인기가 좋다. 남은 성금으로 보건소, 파출소, 레저시설을 만들고, 혈액원도 짓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분쟁으로 피해를 입은 어린이 구호활동 역시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제적십자위원회에 전달해 구호물품을 전달할 예정이다. 배우 이영애씨가 지난달 성금 5000만원을 기부해 주셨다.”
―최근 정부의 의대정원 확충 문제에 대해 의사들의 반발이 크다. 평소 생각한 해결책이 있나.
“참 민감한 문제다. 한쪽 편 안 들고 정확히 얘기하겠다. 먼저 필수의료를 살려야 한다. 지금 흉부외과 4년 훈련받은 사람이 (개원해서) 보톡스를 놓아주고 있다. 왜 그럴까. 흉부외과 수가가 너무 낮고, 힘들어서 못하는 거다.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해서 받는 돈도 너무 적다. 그런데 사고 나면 수억씩 물어내야 한다. 필수의료에 대한 수가를 올려야 한다. 또 고의성이 없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져 줘야 한다. 그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그다음에 정원 문제로 들어가야 한다. 사실 정원도 부족하다. 의약분업 때 10% 줄였다. 전남 쪽에 의대가 없다고 새로 지어야 한다고 하는데 지방 의대는 실력 있는 교수들이 잘 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방국립대에 모든 공공의료의 책임을 지게 하고, 의대 정원을 좀 늘려주면 된다. 그 공공의료원으로 갈 사람은 전액장학금을 주고 10년 이상 근무하도록 하면 된다. 못 지키면 장학금의 배 이상 토해내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현재 인원이 적은 소규모 사립 의대에 정원을 좀 늘려주는 것도 좋다. 단, 정부가 유도하면 안 된다. 의학단체, 시민단체가 같이 협의해서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코로나19 당시 공공의료의 한 축으로 전국 7개 적십자병원의 역할이 컸다. 요즘 상황은 어떤가.
“대한적십자사의 역사가 곧 적십자병원의 역사다. 1905년 개원 이래 118년간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코로나19 이후 적십자병원뿐 아니라 우리나라 공공병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명감을 갖고 코로나 환자를 치료했지만 이후 정부지원은 끊어지고 병원을 찾는 환자도 회복되지 않아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적십자병원은 국민께 차별 없는 의료를 제공하고,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책무가 있다. 이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공공의료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서울 적십자병원의 경우 노후화된 데다 대형병원이 옆에 붙어 있어 공공병원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과거엔 정말 좋은 병원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됐다. 서울 적십자병원은 현대화를 하려고 논의 중이다. 그래서 공공병원 역할을 정확히 해내겠다. 그런데 공공병원만 너무 강조하면 일반 환자들이 안 온다.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병원으로 새롭게 도약하려고 한다. 현재 신축이나 이전 문제까지 고려하면서 구체적인 회의를 하고 있다.”
―나머지 인천·상주·통영·거창·영주 적십자병원과 경인권역재활병원 등은 어떻게 되나.
“전부 다 종합병원으로 승격해서 지방 거점병원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사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조사가 끝나면 내년 초에 직접 현장에 가서 살펴볼 예정이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헌혈량은 약 208만건 정도 된다. 코로나19 발생 이전보다는 아직 3.6% 정도 적긴 하지만, 현재 크게 부족한 수준은 아니며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10대와 20대 헌혈률이 높다. 전체 54% 정도 된다. 현재 30·40대의 참여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적은 편이다. 다만 저출생 등으로 인해 지난 10년간 10·20대 헌혈가능인구가 100만명 이상 감소하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혈액수급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헌혈량 회복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 10월엔 전북에서 헌혈의날을 선포하고 교회나 직장, 아파트 등에서 헌혈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7530명이 참여했다. 큰 성과라 생각한다. 앞으로 지자체와 함께 전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범국민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또 여러 번 헌혈한 분들이 우대받을 수 있도록 헌혈 유공자의 집 명패라든지, 공공시설 이용료 감면과 같은 혜택을 주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혈액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혈액원도 노후화됐다고 들었다.
“작년에 대구경북혈액원에 불이 났는데 스프링클러가 없어서 제때 진압이 안 됐다. 우리나라 국가핵심기반 시설인 혈액원은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이지만 건물이나 기계는 아주 낡았다. 안정적인 혈액수급 관리를 위해서 시설 개선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건축연한 30년을 초과한 6개 혈액원의 노후시설 개선에 1480억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한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와 논의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대북 관계가 악화되면서 적십자사의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남북협력도 어렵게 됐다.
“최근 한·미·일이 공조를 공고히 하면서 북한이 더 고립된 건 사실이다. 북한도 굉장히 초조해한다고 한다. 그럴 때일수록 한국과 북한은 서로 대화를 해야 한다. 이산가족 편지상봉이나 화상상봉처럼 서로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도록 작은 것부터 해보려고 한다. 북한에도 적십자회가 있기 때문에 국제적십자연맹이나 적십자위원회를 통해서 접촉을 해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얼마 전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에서 주관하는 아태지역 적십자사 회의에 다녀오셨는데, 북한도 참석했다고 들었다.
“북한이 직접 오진 않았고, 온라인으로, 줌(Zoom)을 통해 발표했다. 북한적십자회가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참가했다. 기후변화와 재난이 주제였는데 북한 다음에 우리가 발표했다. 북한은 당시 기후변화로 인한 북한의 재난 상황 등을 공유했다. 지구온난화 문제는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북한도, 중국도, 라오스도 모두 같이해야 한다. 우리 적십자사도 한반도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협력할 의향이 있음을 북한적십자회에 피력했다. 아직 반응은 없다.”
―앞으로 대한적십자사 회장으로서 목표가 있다면.
“역대 회장들이 다들 잘하셨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여기 조금 더 보태려 한다. 적십자사와 활동하는 봉사자가 800만명이나 있다. 헌혈 700번 하는 사람, 봉사를 50년간 3만 시간 넘게 한 사람도 있다. 가난해도 아껴서 기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정부에서 지금까지 대통령표창 한 번 주는 일이 없었다. 물론 이런 분들에게는 상을 받는 게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봉사자들이 존경을 받고, 자긍심을 느끼며 신나게 봉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보고 싶다. 국민께도 적십자사를 더 잘 알리고 싶다. 취임하고 국립묘지 참배를 한 뒤 방명록에 ‘순국선열의 뜻을 받들어서 어려운 이웃과 고통받는 이재민을 위해서 든든한 희망의 등불 되겠다’고 썼는데 거기에 맞춰 모든 일을 하려 한다.”
●1944년 전북 김제 출생 ●이리고 ●전남대 의학 학사 ●서울대 의학 석사 ●고려대 의학 박사 ●연세대 행정학 석사 ●단국대 복지행정학 박사 ●경희대 법학 박사 ●고려대·한림대·가톨릭대 의대 외래교수 ●제33대 대한병원협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위원·의료봉사단장 ●국민훈장 모란장·목련장 ●의료법인 서울효천의료재단 H+양지병원 이사장
대담=이우승 사회부장, 정리=이정우·이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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