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전투만 100분 … 연말 극장가 좌우할 '충무공의 최후'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12. 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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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 : 죽음의 바다' 20일 개봉
김한민 감독 '절제의 미'로
영웅 마지막 우아하게 그려
이순신 영화 3부작 대미 장식
조선-명나라-왜군 '워게임'
압도적 전쟁장면으로 재현

당신이 '이순신 영화'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한국인이 죄다 아는 충무공 이순신, 1598년 12월 노량해전에서의 그의 죽음을 도대체 어떻게 그려야 박수를 받을까.

정적 속에서 총성 한 방을 터뜨린 뒤 누군가 "자앙군!"을 외치고 피 토하는 충무공 입에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란 대사가 나왔다가는, 영화가 개봉과 동시에 거북선 뱃머리를 끌어안고 여수 앞바다에 침몰할 가능성이 높다. 신파의 기미라도 보였다간 관객의 준엄한 심판이 불가피한 게 2023년 한국 극장가 현실이기 때문이다.

김한민 감독은 뻔하게 그려질 뻔했던 '성웅(聖雄)의 죽음'을 새로운 방식으로 그리는 데 성공했다. 충무공의 최후를 신파 따위로 망쳐선 이순신 3부작을 만든 10년의 여정을 '올바르게' 끝낼 수 없다는 결기까지 느껴진다. '충무공 트릴로지(3부작)' 대미를 장식할 김한민 감독의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의 함대가 드디어 스크린에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다. 1761만 관객수를 동원한 '명량'(2014), 726만명이 관람한 '한산: 용의 출현'(2022)에 이어 이순신의 마지막을 다룬 대작이다.

때는 1598년 9월 18일, 일본 후시미성에서 이 모든 사건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다.

당초 왜군의 본국행을 불허했던 도요토미는 철군을 유언처럼 남긴다. 왜군의 '완전한 항복'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을 끝내선 안 된다고 믿었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도망가는 적들을 섬멸하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는다. 조선은 명나라와의 '조명연합함대'를 구축하고 왜군 퇴각로를 막는다. '명량'과 '한산'이 양자 간의 싸움이라면 명(明)이 참여한 '노량'의 해전은 3자 간 국제전이다.

단연 관심이 쏠리는 건 충무공을 연기한 배우 김윤석의 연기다. '명량'의 배우 최민식, '한산'의 배우 박해일에 이어 배우 김윤석이 연기한 이순신은 내적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 갓 스물이었던 막내아들 면을 잃은 단장의 고통 때문이다.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은 "개인적 원한을 풀기 위한 게 아니냐. 불필요한 희생은 막아야 한다"고 의심하며 '명분 쌓기' 게임이 시작된다.

진린 역의 배우 정재영, 왜군 수장 시미즈 역의 배우 백윤식, 그리고 순천에 고립된 왜군 고니시 역의 이무생까지 총 4명의 배우가 벌이는 각축전이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

'노량'의 최대 미덕은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이겨보지 못한 조선왕조 500년사의 울분을 압도적인 전력으로 대리만족시켜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노량'에서의 해전은 전작 '명량' '한산'과는 결이 다른데, 이번 영화는 충무공의 해군이 압도적인 승기를 미리 확보한 뒤 싸움을 진행하는 선승구전(先勝求戰·먼저 승리해놓고 싸운다)의 정신을 육화한다.

조선-명나라-왜군 3개국 간 실시간 워게임(Wargame)을 목격하는 듯한 착각까지 든다. 상영시간(러닝타임)은 153분 중 약 100분이 해상전 장면으로 채워졌다. 12척(실제로는 13척)의 배로 왜군을 겨우 섬멸했던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전쟁영화다. 다만 '노량'에 등장하는 여러 척의 거북선은 실제 역사와 다르다. 거북선은 칠천량 해전에서 모두 완파됐다. 고증오류거나 감독의 의도적 설정이다.

무엇보다 충무공 죽음을 그리는 방식이 우아하다. 조총을 맞은 충무공 면전에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다. 모두가 다 아는 최후를 다시 스크린에 굳이 재연하지 않음으로써 세련미를 확보했다. 짧은 엔딩크레딧 이후 에필로그에서 충무공의 유언을 덧붙이지만, 별도 영상으로 배치함으로써 신파 요소를 교묘히 피해갔다. 충무공의 상여가 이제는 평온해진 백성들 곁을 지나는 마지막 장례 장면은 이순신을 향한 진정한 애도다. 다만 영화가 다소 길어 후반부에 한두 장면에서 몰입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다.

최근 영화 '서울의 봄'이 1000만 관객을 향해 질주하면서 극장가에 때아닌 '봄'이 예견된 가운데,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연말 영화관을 들썩이게 만들지도 주목된다. 2023년 영화계는 코로나19의 악몽에서 벗어났지만, 올해 극장을 찾은 관객수는 이달 12일 기준 1억1392만명으로 작년 총관객(1억1280만명)을 간신히 넘어선 상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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