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동학의병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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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소위는 2004년 제정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안을 심의했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직후인 1894년 9월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참여자의 서훈 문제 등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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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전국 프리즘] 박임근 | 호남제주데스크
지난 9월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소위는 2004년 제정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안을 심의했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직후인 1894년 9월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참여자의 서훈 문제 등을 다뤘다. 이 법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란… 1894년 9월에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2차로 봉기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농민 중심의 혁명 참여자”라고 규정한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혁명 2차 봉기 참여자(1차는 제외)에 대해 상훈법에 따라 서훈 또는 표창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 문체부가 서훈 문제 반대를 하는 것 같은데, 그 반대 이유가 잘 납득이 안 됩니다. 말하자면 동학 2차 봉기가 독립운동에 해당되는지 여부가 현재 확실치 않습니까? 2차 봉기 때 구호가 ‘척왜양창의’(일본과 서양을 몰아내려 의병을 일으킴) 아닌가요? 서훈 문제와 관련한 일반법인 ‘상훈법’이 있는데 상훈법이 아닌 개별법에 서훈 문제를 담는 게 법 논리와 체계상 안 맞다 그 취지지요? 다른 법과 형평이 문제가 된다거나?”(이개호 의원)
“예, 저도 그렇게 생각…. 그 입장은 지금 국가보훈부에서….”(전병극 문체부 1차관)
“교과서를 훑어보니까 대부분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는 일본군을 몰아내자는 것이 주목표이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쳐 나라를 지키려 한 반침략적 성격이다. 교과서에 독립운동이라는 말이 안 쓰였다고 해서 이게 항일독립운동이라고 볼 수 없는 건가요?”(이병훈 의원)
“전문가 의견은 반일운동적 성격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전반적으로는 국권 수호보다 체제 개혁에 중점을 두고 교과서에 기술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일적 성격이 없지 않지만 이걸 독립운동으로 보기에는 (2차 봉기가) 아직은 좀 미흡하다는 의견이 강했습니다.”(남궁선 국가보훈부 보훈예우정책관)
이날 우여곡절 끝에 개정안은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아직 상임위에는 상정되지 않았다. 이는 정부와 여당의 반대 때문이다.
국가보훈부는 이후 “현재 학계 다수에서도 동학 2차 봉기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음에도 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입법한 것은 독립유공자 서훈 체계를 무력화한 것이다. 독립유공자는 엄격한 보훈 심사를 거쳐 인정하는 반면, 특별법 일부개정안은 대상자를 심사 절차 없이 무조건 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훈 관련 법안을 무시하고 형평성도 간과한 과도한 특혜”라며 반대했다.
박용규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보훈부의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 심사위원 가운데 동학농민혁명을 전공한 역사학자는 단 한명도 없다. 또 현재 9종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동학 2차 봉기를 일본군을 몰아내려는 항일구국투쟁, 즉 독립운동으로 기술하고 있다”며 “양반 유생이 주류였던 을미의병은 서훈에서도 우대를 받았으나, 농민이 대다수였던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갑오동학의병)는 서훈에서 차별을 받아왔다. 이제는 동일한 잣대로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심의 절차 없이 무조건 유공자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결정한 혁명 참여자로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 대해서만 서훈 또는 표창을 추천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고 설명했다.
1895년 4월 사형 선고를 받은 전봉준의 판결문에는 2차 봉기가 국권 회복을 위한 의병 활동임이 나온다. “피고는 일본군이 궁궐로 난입했다는 말을 듣고 분명히 일본인이 우리나라를 병합하고자 벌인 일이라 여겨, 일본군을 쳐서 물리치고 조선에 머무르는 일본인들을 나라 밖으로 몰아내려는 마음을 품고 다시 군사를 일으켜 의병운동을 도모했다.” 그해 일어난 을미의병은 참여자 145명이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갑오동학의병은 유공자가 단 한명도 없다. 개정안 통과를 기대한다.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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