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과도한 민간교류 차단 논란 “조선학교 10년 전 인터뷰까지 문제 삼아”
통일부가 ‘질서있는 남북교류’, ‘원칙있는 남북교류’를 강조하면서 사실상 민간 교류협력 단체들의 활동을 불법화하고 남북교류협력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6·16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조선학교와함께하는사람들 몽당연필, 지구촌동포연대 KIN, 우리학교와아이들을지키는시민모임은 지난달 27일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북교류협력법 제정의 목적은 제1조에 담겨있든 상호간 교류와 협력을 촉진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에 있지만, 이러한 목적과 달리 정부는 최근 교류협력을 위한 북한주민접촉 신고를 거의 모두 거부해 ‘신고’제인 남북접촉관련 제도를 ‘허가’제로 운용하면서 민간 교류협력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학교 다큐 제작진 조사
몽당연필의 김명준 사무총장은 이날 “통일부의 남북교류협력법 악용 사례”라며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와 ‘차별’ 제작진이 경위서를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2021년 개봉한 다큐로 재일동포들 중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청춘을 빼앗긴 재일동포 간첩단 조작 사건의 주인공들과 반국가단체 누명으로 피해를 입은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동포, 조선학교 관계자들이 등장한다. ‘차별’은 김지운 감독이 조선학교 학생들의 고교무상화재판 과정을 촬영해 지난 3월 개봉한 다큐멘터리다.
김 사무총장은 ”재일동포간첩단 사건은 이미 무죄이며 한통련 어르신들도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자유입국하고 있는 분들로, 존경하고 사죄할 대상이지 이념놀음에 이름을 올릴 분들이 아니다”라며 “이런 분들을 인터뷰 한 것이 문제인가”라고 반발했다.
조선학교 관계자 접촉에 대해서는 “영화 ‘차별’의 주인공들인 조선학교 학생들의 고교무상화 재판은 2013년부터 시작됐고 김지운 감독은 그때부터 재판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촬영했다.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에 등장하는 학교 교장, 학부모, 학생들의 경우도 아무리 여유있게 잡아도 개봉하기 1년도 전에 인터뷰 했을 것이고, 더욱이 교장과 학생들은 감독이 이미 10년도 전에 찍은 영상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대중예술 작품에까지 손을 뻗친다면 한국 영화감독은 조선학교나 총련 관계자들에 관한 영화를 찍지 말라는 것이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며 “일본인 감독이 찍어서 한국에서 개봉하는 것은 괜찮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교통위반 과태료를 부과받을 때도 정확한 위반 일시, 장소가 기록된 사진이나 공문을 받고 이의가 있는지 묻는데 (통일부는 단체들에게) 스스로 자신들 사업 중 위반사실을 파악해서 보고하라는 식”이라며 “교류 당사자들을 잠재적 범법자로 만들려 한다”고 반발했다.
몽당연필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피해를 입은 조선학교를 지원하고자 설립된 단체로 10년넘게 활동을 이어온 단체다. 배우 권해효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최은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사무처장은 지난달 30일 통화에서 “과거에 접촉 신고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도 과태료나 위반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일동포 관련 단체나 조선학교 교사나 학부모 등 조선학교 관계자들은 많다. 그동안엔 그 사람들이 총련 소속이라고 공식 직책이 확인되지 않으면, 그분들을 총련으로 간주한 적은 없었다”며 “그런데 최근에는 그저 조선학교 관계자들이면 다 총련 소속이라고 포괄적으로 대하며 그 사람들의 신분을 우리가 임의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 분단에 반대하며 국적 선택을 거부하고 분단 이전의 조선적을 고수한 재일동포들이 기원인 조총련은 일본 내에서 법상으로는 무국적자다. 2009년 개정된 남북교류협력법 제30조 북한주민 의제조항은 ‘북한의 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국외단체의 구성원은 북한 주민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조총련은 남북교류협력법 상 접촉시 신고 의무가 있는 대상으로 간주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과거 북한주민 접촉과 관련해 교류협력법의 적용이 다소 느슨하게 운용된 측면이 있다”며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른 교류협력 질서・체계를 확립해 나간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교류협력을 막거나 과태료를 부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류협력에 대한 법적 신뢰를 높여 국민들이 공감하는 지속가능한 교류협력 여건을 마련해 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일부가 지난 8월 행정예고한 훈령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른 과태료 부과징수 업무처리규정’에 따르면, 외부 법률자문관이 포함된 과태료부과심의위원회를 설치·운영해 질서위반행위의 동기, 목적, 방법, 결과 등을 고려해 과태료 부과 여부를 최종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통일부는 훈령을 제정하면서 과거 과태료 부과시 별도 절차 규정 없이 처분 담당 부서에서 과거 사례 등을 참고해 처리했으나 앞으로 합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과태료 부과를 위해 심의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이날 외신기자클럽과의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내에서 조선학교나 남북문제 관련 영화제작이나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는 일본 언론 질문에 “국정감사에서 두 영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기 때문에 통일부가 경위서를 요청했고, 법적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두 영화에 정부 지원 적절성과 접촉신고 여부를 따진 바 있다.
김 장관은 “접촉 사전신고와 관련해서 지금 통일부는 남북 관계 상황을 고려해서 꼭 불요불급하지 않은 접촉에 대해선 대단히 신중을 기하고 있다”며 “남북관계 상황이 어느 정도 개선되면 좀 더 전향적인 방향으로 조치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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