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치매환자 주치의

이명희 기자 2023. 12. 1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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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파더>의 한 장면. 치매 환자가 경험하는 인식의 혼란을 그렸다. 판씨네마 제공

‘100세 시대’ 인간에게 치매는 공포다. 집을 못 찾고, 용변 실수를 하고, 가족은 물론이고 자신의 존재조차 잊게 만든다. 고령층에겐 암보다 무섭다는 질환이다.

나이가 들면 안 그래도 아픈 곳 천지인데, 냉장고 문을 열고 우두커니 서 있거나 아파트 비밀번호를 깜빡깜빡하는 일들이 거듭되면 가슴이 철렁한다. 이런 증상이 단순히 건망증인지, 치매 초기인지 생각이 미치는 것이다.

“치매가 아닐까” 두려운 마음이 들 때 많이 쓰는 ‘하세가와 척도’라는 게 있다. “오늘은 몇년 몇월 며칠이죠?” “100에서 7을 빼보세요” 같은 문항으로 이루어진 검사인데 일본 치매 전문의 하세가와 가즈오가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치매의 주원인은 노화다. 치매 권위자인 그도 88세에 치매 진단을 받았다. 일본은 2004년 ‘치매’라는 단어가 모멸감을 준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인지증’으로 명칭을 바꿨다. 우리도 용어 변경을 검토 중이다.

국내 치매환자 수가 올해 100만명을 넘어섰다. 중앙치매센터에 등록된 60세 이상 치매환자는 102만여명에 이른다. 치매의 비극은 환자를 돌보는 가족까지 고통의 늪으로 끌어들인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의 일상이 무너지는 안타까운 사례들이 이어진다. 지난 8월에도 중증 치매환자인 80대 노인과 그를 돌보던 아내가 함께 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우리 사회에서 치매는 더 이상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7년부터 치매국가책임제를 시행하고 있다 해도, 인프라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 전국에 치매안심센터가 있지만 등록 환자 수는 실제 환자 수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그나마 수도권에 모여 있어 지역 환자들에겐 ‘딴나라 얘기’다. 정부가 치매 주치의 제도를 내년 7월부터 시범 도입한다고 한다. 전문의 등이 치매환자의 건강 전반을 관리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치매환자 가족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정부가 이런 불안만 덜어줘도 국민 행복도가 높아질 것이다.

오늘은 어떤지, 무얼 하고 싶은지 자주 물어봐 달라는 게 치매환자였던 하세가와 박사의 부탁이다. 치매는 ‘자신에겐 천국, 다른 사람에겐 지옥’인 병이라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치매에 걸린다고 해도 변치 않는 건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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