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퇴출'쏙 빠진 COP28 합의문… 산유국 입김 통했다
2050년'순 제로'목표도 무산돼.. 환경단체·도서국 등 거세게 비판
사우디 의장 압박 의혹 제기까지
■초안에서 '단계적 퇴출' 문구 삭제
파이낸셜타임스는 11일(이하 현지시간) 중동 산유국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개최된 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8) 기후서밋 합의문 초안에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이라는 문구가 빠졌다고 보도했다.
이전에 공유된 버전에는 이 문구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산유국들이 강하게 반대하면서 초안에는 이를 대신해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석유·석탄·가스의 생산·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완화된 표현이 담겼다.
UAE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는 COP28은 12일 폐막전 합의문을 발표하게 된다. 약 200개 나라가 이 합의문에 동의해야 한다. 화석연료 생산과 소비를 단계적으로 줄여 2050년에는 이산화탄소(CO2) 배출을 '순 제로'로 만든다는 합의도 실패했다. 합의문 초안에 따르면 각국은 2050년 순 제로 목표에 동참하는 것이 가능하다.
초안은 단계적 퇴출 대신 각국이 선택할 수 있는 8개 방안을 제시했다. 재생가능에너지 생산능력을 2030년까지 지금의 3배로 확대하는 방안,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없는 석탄 화력발전소를 신속하게 폐쇄하고 신규허가는 제한하는 방안 등이 있다. 또 대기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저장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철폐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UAE가 의장국? 예상된 수순
이번 회의에서 기후위기 대응이 크게 후퇴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파다했다.
사우디가 COP28 의장이자 아부다비 국립석유공사 수장인 술탄 알-자베르를 압박해 합의문에서 화석연료에 관한 조항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도록 압박했다는 의혹이 협상대표들 사이에서 강하게 제기됐다.
기후위기 대응을 논의하면서 화석연료를 논의 중심에서 제외하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이다. 화석연료는 기후변화 최대 유발 요인으로 온실가스 배출의 약 4분의3을 차지한다.
또 주요 석유수출국으로서 의장국을 맡은 UAE는 총회 유치 때부터 기후대응 노력에 진정성이 없거나 총회를 중동 산유국들의 환경훼손 이미지를 세탁할 '그린워싱'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기후 싱크탱크인 파워시프트아프리카(PSA)의 모하메드 아도우 이사는 "사람들은 이것이 맞는 '요리법'인지 논쟁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적합한 '재료'가 거기 들어 있다는 것"이라며 초안에 대한 옹호 입장을 밝혔다.
■국제 환경단체·도서국 강력 반발
그러나 유엔이 초안을 발표하자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 남태평양 등지의 작은 섬나라들이 거칠게 반발했다. 특히 작은 섬나라들은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현재 국토 면적이 눈에 띄게 줄고 있고, 이대로 가면 나라가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어 반발이 거셌다.
미국은 강한 실망을 나타냈다. 미 국무부는 화석연료에 관한 언급이 "상당히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 "세계가 가능한 한 신속하게 화석 연료를 단계적으로 퇴출해야 한다"며 "이 비굴한 초안은 마치 석유수출기구(OPEC)의 요구를 또박또박 받아쓴 것처럼 보인다"고 썼다. 이어 "이번 총회는 완전히 실패 일보 직전"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나쁜 (결과)"라고 평가했다.
합의문 협의에 참여한 유럽연합(EU) 측도 초안이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EU 협상위원이자 아일랜드 환경부 장관인 에이먼 라이언은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EU가 협상에서 이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카리브해와 태평양, 인도양 등에 위치한 도서국들의 모임인 군소도서국가연합(AOSIS) 측은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사망 증명서에 사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에 대한 강력한 약속이 제외된 합의문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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