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 승계절차 최소 석달전 시작…'셀프연임' 오명 씻는다 [은행 지배구조 모범답안 제시]
이사회·사외이사 외부평가 강화.. 강제성 없지만 경영평가에 반영
은행들 내규 등 바꿔 실행할듯
금감원이 제시한 모범답안의 핵심은 최고경영자(CEO) 승계절차를 임기만료 최소 3개월 전에는 개시해 충분히 검증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부적 CEO 자격요건도 사전에 정하도록 했다.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도록 규모와 구성을 손질하는 동시에 '역량진단표(Board Skill Matrix)'를 도입, 이사회 후보군 관리 및 선임에 활용하도록 했다.
강제성은 없지만 금감원이 경영실태 평가에 반영한다고 한 데다 은행권이 함께 참여한 만큼 이르면 내년부터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해당 내용을 각 사 내규 등에 반영해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 승계절차 최소 3개월 전 개시
지배주주가 없어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국내 금융지주사는 그동안 회장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로 이사회를 구성, 경쟁자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셀프연임'을 이어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CEO 후보자가 공개되면 역량검증보다는 '낙하산' 시비나 '코드 인사' 논란도 반복됐다. 예를 들어 지난해 말 NH농협금융과 우리금융, 신한금융의 회장들 임기종료를 앞두고 연임 시도나 정치권 낙하산 인사 가능성 등으로 혼란이 커지자 이복현 금감원장이 이례적으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간담회를 하기도 했다.
금감원이 이날 발표한 '은행권 지배구조 모범관행'은 이 같은 CEO 선임을 둘러싼 혼란의 고리를 끊고, 금융사 경영합리화를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모범관행은 사외이사 지원조직 및 체계(6개), CEO 선임 및 경영승계 절차(10개), 이사회 구성의 집합적 정합성·독립성 확보(9개), 이사회 및 사외이사 평가체계(5개) 등 4개 주요 테마 관련 30개 핵심원칙을 제시했다.
우선 CEO 선임절차와 관련해 후보군 관리부터 육성, 최종 선정까지 포괄하는 종합승계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문서화하도록 했다.
승계절차가 형식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경영승계 절차를 최소 임기만료 3개월 전에 개시하도록 한 점도 특징이다. 단계별로 충분히 역량을 검증하고 평가하라는 취지다.
금감원이 국내 8개 은행지주 CEO 선임·연임 사례를 살펴본 결과 승계절차 개시 후 최종후보 결정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5일에 불과했다. 숏리스트(압축된 후보명단) 후보에 대한 대면평가는 단 한 번의 인터뷰나 발표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모범관행은 CEO 상시후보군을 마련해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했으며, 승계절차 개시 후 해당 리스트 이외의 사람이 CEO 후보에 포함될 경우 추천자 및 사유를 공시하도록 했다.
■이사회의 경영진 견제 강화
대부분의 안건에 찬성만 하며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이사회는 독립성을 강화, 경영진에 대한 견제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했다.
모범관행은 이사회 내 소위원회 증가 추세에 대응해 은행별로 적정 수의 이사를 확보하도록 하고 전문성 및 다양성 확보방안도 마련하도록 했다.
'2+1년(2년 임기 뒤 1년씩 연장)'으로 획일적인 사외이사 임기정책도 정비하도록 했다. 임기가 한꺼번에 종료되는 현행 임기구조는 이사회 안정성을 저해하고 경영진 견제기능이 약화된다는 비판을 반영한 것이다.
이사회 및 사외이사의 평가체계도 강화한다. 이사회 소위원회, 사외이사 활동에 대해 외부 전문기관 활용 등을 통해 연 1회 이상 주기적으로 평가를 실시하고, 평가 결과를 사외이사 재선임과 연계하는 한편 세부내용을 공시하도록 했다.
금감원은 이번 지배구조 모범관행 최종안과 관련해 은행별 특성에 적합한 자율적 개선을 유도할 계획이다. 각 은행지주와 은행은 과제별로 이사회 논의를 거쳐 개선 로드맵을 마련하고 추진해야 한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와 협의해 내년 1·4분기 중 규정을 개정, 모범관행 최종안을 추후 지배구조 관련 감독과 검사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박충현 금감원 부원장보는 "지배구조 모범관행은 법이나 규정에 의한 게 아니라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주나 은행이 자율적으로 상황에 맞게 개선해 나갈 것"으로 기대했다. 이 때문에 모범관행이 실제 CEO 선임절차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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