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총상, 더듬는 손, 눈물의 런웨이…`슬픈 패션쇼`

박양수 2023. 12. 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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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올드 자파 구시가지에선 파인 프로덕션의 패션쇼가 열렸다. 모델에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습격 당시 학살을 목격한 생존자이거나 하마스의 총칼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이 모델로 출연했다.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패션쇼를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풀어낸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각 의상은 이스라엘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제작했다. [데일리메일 캡처]
리버풀 출신의 제시카 엘터는 학살 현장에서 12명을 구출한 뒤 사망한 약혼자 벤 시모니를 기억하기 위한 특별한 패션쇼에 참가했다. [데일리메일 캡처]
지난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들이닥친 음악축제 현장에서 붉은색 스카프를 둘러매고 현장을 도망치는 '붉은 옷의 여인' 블라다 파타포브(오른쪽)를 담은 사진. 그녀는 이번 패션쇼에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파란색 드레스(왼쪽 사진)를 입고 무대에 섰다. [데일리메일 캡처]
이스라엘인 요벨 샤비트 트라벨시(26세)는 꿈에 그리던 남자 모르 트라벨시(27세)와 9월 7일 결혼했다. 정확히 한 달 뒤 그는 모 트라벨시가 보는 앞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총탄에 남편을 잃은 요벨 트라벨시(왼쪽)은 학살이 일어나기 한 달 전에 결혼했다. [요벨 트라벨시 페이스북 캡처]

새햐얀 웨딩 드레스를 입은 모델의 가슴에는 총알이 박힌 붉은 흔적이 남아 있다. 드레스 앞 가슴 부위에는 두 자루의 모형 칼로 장식했다.

입에 노란색 테이프로 재갈이 물린 또다른 모델의 관자놀이에도 총상의 흔적이 선명하다. 피묻은 바디수트를 입고 나온 모델도 있다.

1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일 저녁 이스라엘 텔아비브 올드 자파(Old Jaffa)에선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한 패션쇼가 열렸다.

매체에 따르면 패션쇼 무대에 오른 모델들은 지난 10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습격 당시 생명을 구한 생존자들이었다. 또한 학살의 목격자이거나 하마스의 학살로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사람들이다.

모델에는 약혼자 벤이 전화통화를 하던 중 총에 맞아 숨지는 순간을 들어야 했던 영국계 이스라엘인 제시카 엘터, 축제 현장 노바에서 하마스 대원들로부터 달아나던 사진으로 유명한 '붉은 옷의 여인' 블라다 파타포프가 포함됐다. 이들은 학살 당한 약혼자가 입었던 웨딩드레스와 처형된 남편처럼 '총상'을 입은 모습의 웨딩드레스 등으로 특별한 패션쇼를 펼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웨딩드레스를 입은 제시카 엘터(27)는 런웨이에 서기 전부터 눈물을 흘렸다. 리버풀 출신의 엘터는 심장에 총알 구멍이 난 신부 가운을 입고 다른 13명의 생존자들과 이 패션쇼에 참가했다.

엘터의 약혼자 벤 시모니는 하마스 습격이 벌어졌던 지난 10월 7일 학살 현장에서 12명 이상의 생명을 구한 뒤, 테러리스트들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엘터는 데일리메일에 "나는 매일 매 순간 그를 그리워한다"면서 "하지만 그를 그리워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사람들이 벤을 기억하고, 그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전하는 일을 하는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드레스를 입고 내가 말한 첫 문장은 벤과 함께 이 순간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블라다 파타포프(25)는 이스라엘 국기에서 영감을 얻은 파란색 드레스를 입었다. 드레스 왼쪽 편에는 다윗의 별이 새겨져 있다.

파타포프는 빨간 숄을 두른 채 하마스의 습격이 벌어진 노바(Nova) 축제 현장을 피해 도망치는 사진이 공개된 후, 학살을 상징하는 '빨간 옷의 여인(Lady in Red)'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학살 당시 그녀는 세 살배기 딸 로미를 남겨두고 파트너 마탄, 친구 마이와 함께 축제에 참가했다. 하마스의 공격이 시작되자, 파타포프는 다른 일행 6명과 함께 도망쳤다.

다행히 그녀의 파트너는 살아 남았습니다. 파타포프 씨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러지 못했을 때, 나는 친구들에게 돌아왔다"고 말했다.

가장 인상적인 무대에는 요벨 샤빗 트라벨시(26)가 입었던 의상이 있다. 웨딩드레스를 이비은 그녀의 입에는 리본 재갈이 물려져 있고, 관자놀이에는 총상 자국이 선명하다.

그의 남편 모르 트라벨시(27)는 결혼한 지 정확히 한 달 후인 그날 그녀 앞에서 머리에 총을 맞았다. 그들이 타고 도망치던 차가 도랑에 굴러떨어진 후, 트라벨시는 남편의 피를 받아 몸에 바른 뒤, 6시간 넘게 죽은 척을 해야 했다.

그녀는 결혼할 당시 입었던 것과 거의 똑같은 웨딩드레스를 입었고, 똑같은 헤어스타일로 장식했다. 그녀의 머리에는 총알 구멍이 있고, 옷의 뒷면에는 'No More Killing'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둘 모두 고인이 된 그녀의 파트너 모르 트라벨시를 상징한다. 그녀는 "남편의 이야기를 모든 사람들이 기억해주기를 바라서 지금 이 자리에 섰다"며 패션쇼 참가 이유를 밝혔다.

축제 현장에서 유일한 남동생을 잃은 사피르 테일러 로즈는 그녀의 유일한 남동생인 선 야하코바르가 노바 축제에서 살해된 후, 4살과 5살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 드레스를 디자인했다.

로즈 씨가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은 야린 아마르(22세)는 축제에서 도망쳐 덤불 속에 숨은 뒤, 주변의 시체들에서 흘러내린 피를 몸에 바르고 8시간 동안 죽은 척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를 목격했다. 덤불 속에 누워 있는 동안 하마스 대원들이 축제 참가자들을 강간하고, 총격을 가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아마르는 "8시간 동안 숨어있는 동안 직접 눈으로 들은 것 아니지만, 귀로 들었다"면서 "그들은 한 소녀를 데려다가 강간하고, 서로 넘겨줬다. 그런 이후 총으로 쏴 죽였다"고 말했다.

아마르 씨는 "피해자들의 실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드레스를 입었다"고 말했다.

이날 또 다른 생존자 한 명은 수많은 이스라엘 여성들이 당한 강간을 상징하는 피 묻은 바디수트를 공개하기 위해 런웨이에서 드레스를 벗었다.

탈 리 메나헴(32)은 앞면에 빨간 리본으로 테러 날짜가 새겨진 회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나왔다. 목걸이 아래에는 다윗의 별 배지가 있었다.

메나헴이 코트를 벗자, 하얀 웨딩드레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10월 7일 노바 축제에 참석한 참석자들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그러나 메나헴이 하얀 드레스를 벗자 피 묻은 바디수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마스 대원들에게 강간 당한 수많은 이스라엘 여성들의 고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담겼다.

엘터의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한 리안 미즈라치(26)는 "두 달 전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의해 재난을 겪었다"며 "우리는 그 날을 기억하고, 여기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일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밝혔다.

이날 패션쇼에서 선보인 각 의상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인질 석방 협상과 관련해 인도주의적 휴전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날 패션쇼에선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잃고 살아남은 이들의 분노와 슬픔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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