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장 선임때 지주보다 은행 이사회가 실질 역할해야"

조윤진 기자 2023. 12. 1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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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감원 '은행 지배구조 모범관행'
CEO 임기만료 석달전 승계절차 등
4개 주제·30개 핵심원칙 담아내
강제성 없고 시행시기 미정 한계
일각선 금융당국 관치 강화 우려
[서울경제]

금융감독원이 금융지주와 은행 최고경영자(CEO)를 새로 선임할 때 현 CEO의 임기 만료일로부터 최소 3개월 전부터 선임 절차를 시작하도록 했다. 또 은행장을 새로 뽑을 때 현재처럼 지주회사 이사회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 이사회가 실질적인 역할을 하도록 했다. 아울러 거수기 역할을 하는 이사회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한편 사외이사의 전문성을 확보하도록 하고 이사회와 사외이사에 대한 평가 체계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8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 관행’을 발표했다. 이번 안은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이 소유와 지배가 분산된, 소위 ‘주인 없는 회사’를 겨냥해 “지배구조 구성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 데 따른 것이다. 4개 분야에서 총 30개에 달하는 핵심 원칙이 담겼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금융지주 및 은행 CEO 선임과 경영 승계 절차에 관한 원칙들이다. 우선 CEO를 신규 선임할 때 현 CEO 임기가 만료되는 날로부터 적어도 3개월 전에는 경영 승계 절차를 시작할 것을 권유했다. 금감원이 8개 금융지주 사례를 살핀 결과 승계 절차 개시 후 최종 후보 결정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평균 45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은행들은 1~2년 전부터 승계를 준비한다는 것이 금감원의 설명이다. 박충현 금감원 은행 담당 부원장보는 “모범 관행 적용 초기인 점을 감안해 3개월로 하되 이후 점차 장기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장, 증권사 사장 등 금융지주 자회사 CEO를 선임할 때도 자회사 이사회가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원칙 또한 제시됐다. 구체적으로는 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후보군 추천 권한을 부여하고 지주의 자회사추천위원회에 은행 임추위원의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현재는 지주회사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은행장 최종 후보를 선정하고 은행 이사회가 이를 추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앞으로는 은행 이사회가 임원 추천, 지주 추천 후보에 대한 의견 제출, 재추천 등의 실질적인 역할을 하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박 부원장보는 “은행장 선임과 관련해 지주 이사회와 자회사인 은행 이사회 간 권한과 책임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배경을 밝혔다. 이 원장은 “은행이든 보험·증권이든 자회사 임추위가 지주 회장 등 경영진이 희망하는 후보군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고, 내야 한다는 게 이 원칙에 담긴 정신”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금융지주와 은행은 후보군 육성·관리부터 최종 선정까지 경영 승계 절차 전 과정을 포괄하는 경영 승계 계획 및 경영진 유고 등에 대비한 비상 승계 계획을 문서화하도록 했으며 내외부 후보자의 세부적 자격 요건이나 평가 요건 등은 사전에 공개하도록 했다. 적정 규모 후보군을 상시 관리하고 승계 절차 과정에서 상시 후보군이 아닌 후보가 CEO 후보에 포함되면 추천자와 추천 사유 등을 명확히 기재해 공시하라는 내용도 담겼다. 이사회는 연 1회 이상 이런 승계 계획의 적정성 등을 점검해야 한다.

아울러 이사회의 독립성과 사외이사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권고됐다. 경영진이 참여하지 않는 사외이사만의 간담회를 진행하고 ‘2+1년’으로 구성된 은행들의 획일적인 이사회 임기 구조도 개선하도록 했다. 또 사외이사 전담 지원 조직을 설치하고 이사회의 집합적 정합성 확보를 위한 ‘보드 스킬 매트릭스(board skill matrix)’를 작성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다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번 모범안의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실적으로 지방 금융지주나 중소형 은행들은 이 모범안을 사실상 거의 이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지주의 한 관계자는 “대형 금융지주들은 당국의 기대에 걸맞은 로드맵을 준비할 수 있겠지만 지방 금융지주들은 인력·비용 등을 감안했을 때 모범안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이번 모범안 적용을 은행의 ‘자율’에 맡긴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감원이 금융기관 경영 실태 평가에 이 모범 관행을 활용할 수 있도록 내년 1분기 중 관련 규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함에 따라 금융지주와 은행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예상도 있다. 박 부원장보는 “(지키지 않는다 해서) 제재는 하지 않겠지만 경영 실태 평가 등에는 반영할 것”이라며 “감독 당국에서 손을 놓고 있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일단 굳이 강제하지 않아도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지만 법이나 규정에 담을 부분이 있다면 이후 금융위원회와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윤진 기자 jo@sedaily.com백주원 기자 jwpai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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