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번영하는 도시, 몰락하는 도시
세계의 부와 인구는 뉴욕, 파리, 런던, 베이징 등 대도시에 집중됐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세계 곳곳의 도시가 봉쇄되고 많은 기업들이 원격 근무에 돌입하고 출퇴근이 사라지면서 도시의 상업 시설은 큰 위기를 맞았다. 기존에 도시계획의 일반적인 철학은 도시의 여러 지역을 서로 다른 기능상의 용도로 나누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이제 경쟁력 없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인류 진보의 엔진이었던 도시의 번영과 몰락은 도시가 가진 힘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이언 골딘 옥스퍼드대 교수와 경제매거진 ‘이코노미스트’ 필진 톰 리데블린이 함께 쓴 ‘번영하는 도시, 몰락하는 도시’는 정치 분열과 불평등,전염병과 기후 재난에 위협받고 있는 도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살핀다.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는 연결된 세계에서, 도시의 운명은 곧 전 인류의 운명으로 이어진다. 기원전 3500년 무렵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류 최초의 도시가 등장한 이후, 도시는 사람들을 모으며 협력과 분업, 발명을 통해 발전을 이끌었다. 최근 몇 세기 동안 식량 생산과 저장, 운송에서 일어난 혁신과 공중 보건, 사회 기반 시설의 발전으로 도시가 급속도로 커졌다. 18세기 초에는 세계 인구의 5퍼센트만이 도시에 살았으나, 오늘날 그 비율은 55퍼센트이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에서 고대 로마와 아테네를 거쳐 뉴욕과 상하이 등 현대의 메트로폴리스에 이르기까지, 도시는 항상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 그 명성이 흔들리고 있다. 규모는 커지는데 거주민은 빈곤해지고,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가상 공간은 사람들을 분열시킨다. 전염병과 기후변화까지 도시를 위협한다.
20세기까지 도시계획은 도시의 여러 지역을 서로 다른 기능상의 용도로 나누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이제 효용성이 떨어진다. 저자들은 런던의 한 도시를 예로 든다. 영국 런던 ‘커네리워프라’는 도시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다수 들어서 있으며 오후 7시가 지나면 활기가 없는 전형적인 사무 밀집 공간이다. 반면 이 지역에서 5킬로미터(km) 떨어진 쇼어디치는 복합용도 지역으로 주거 생활과 여가 시설, 기술 클러스터가 공존해 대조를 이룬다.
책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출퇴근이 사라진 도시의 위기를 거론한다. 미국의 금융 지구들은 사무용 건물을 아파트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직주 근접에 대한 요구가 점점 높아지는 우리의 현실에서도 눈여겨볼 사례이다. 저자들은 경제, 지식, 사회 일자리에 맞게 도시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원격 근무는 여러 장점이 있지만, 사람들이 협력하고 창조성을 발현하는 도시의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앞으로는 원격 근무와 사무실 근무의 장점을 두루 취하는 방식이 주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책에서는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 주요 도시들이 어떻게 집약적 성장을 이뤄왔는지도 소개한다. 이러한 발전이 왜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나기 어려운지도 알려준다. 한국에 대해서는 한반도 남동부 지역의 여러 도시가 중공업 생산기지 역할을 하면서 서울의 과밀을 일정 부분 해소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책은 도심에 밀집된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 지역에서도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젊은 근로자들이 도심에서 얻는 매력적인 문화생활과 같은 생활양식과 커뮤니티를 도심 지역 외에서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인공지능(AI), 클라우딩 컴퓨팅을 활용해 광역 경제권의 핵심으로 떠오른 워싱턴DC 교외 지역인 알링턴이나, 문 닫은 쇼핑몰 부지를 복합용도로 개발해 사람들을 끌어들인 덴버 교외 지역인 레이크우드를 주목할 만한 예시로 든다.
저자들은 도심 집중·교외화·산업공동화·젠트리피케이션 등 도시화가 야기한 문제에 각국의 도시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인터넷과 원격 근무는 도시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20세기 제조업의 흥망을 겪은 도시가 21세기 지식 경제 시대에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등 도시가 마주한 문제와 그 해결책을 역사적 사례와 풍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탐구한다. 책은 위기에 놓인 도시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싶은 독자에게 통찰력을 제시한다.
이언 골딘·톰 리-데블린 지음ㅣ김영선 옮김ㅣ어크로스ㅣ320쪽│1만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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