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건설사에게도 개방된 ‘공공주택 시행권’… ‘양날의 칼’ 되나
정부가 12일 발표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혁신안’에서는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민간 건설사에게 ‘공공주택 시행사’ 역할을 허용해준 것이다. 지금은 LH가 시행을 맡고 민간 건설사는 시공을 맡는 형식으로 참여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LH와 민간의 경쟁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과 ‘공공주택 사업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조치’라는 입장이 엇갈렸다.
진현환 국토교통부 주택도시실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번 혁신안은 권한과 이권이 집중된 LH의 힘을 빼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LH는 공공택지의 85%, 공공주택의 72%를 공급하는 단일 최대 사업시행자다. 지난해 기준 발주 규모가 연간 10조원에 육박한다. 정부는 LH에 공공주택 공급 물량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과정에서 ‘전관 업체’ 수주가 늘어났고, 이것이 카르텔 구조로 형성된다고 봤다.
반면 민간의 신기술·신공법을 도입할 유인은 부족했다. LH는 공공부문에 따른 각종 제약에 걸려 시장 상황과 기술 변화에 민간만큼 민첩하게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정해진 사업비를 맞추고 공기를 단축하는 건설방식 위주로 주택을 짓다보니 관리소홀과 품질저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예컨대 지난 4월 인천 검단 지하주차장 사고 이후 진행된 무량판 구조 지하주차장 전수조사에서 LH 단지는 121개 중 22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이 발견됐다. 반면 민간 427개 단지에선 철근 누락이 한 건도 없었다. 민간에서는 공장에서 기제작된 전단보강근을 사용한 반면, LH 공사에서는 현장 작업자가 철근을 구부려 제작하는 재래식 방식을 유지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공공 뿐 아니라 민간 건설사에도 자체 브랜드를 내걸고 공공주택을 직접 공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입장이다. 분양가나 하자 빈도, 입주자 만족도 등을 평가해 성과가 우수한 사업자가 더 많은 물량을 공급하도록 공급계획을 수립하겠다고 했다. LH의 혁신이 부진할 경우 공공주택 공급 구조가 민간 중심으로 완전히 전환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이같은 대책에 건설 업계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지금도 LH 민간참여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건설사는 시행·시공을 동시에 하는 경우 수익성이 더 높아진다는 점에서, 단독 시행 사업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원자잿값 상승 등으로 건설 시장이 얼어붙은데다 민간 아파트를 공급할 택지가 제한적인 상황인만큼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노리는 중견·대형 건설사도 공공주택 사업에 진입할 수 있다.
A중견건설사 관계자는 “공공택지는 민간택지보다 입지는 떨어지지만 안정적이고 확실한 사업 진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장점이 확실하다”며 “기존에 없던 시장이 열렸다는 차원에서 건설사에겐 확실한 호재”라고 했다.
다만 공공택지 분양은 분양가 상한제의 적용 대상인데다, 정부가 정한 주택공급기준도 따라야 한다. 정부는 공공주택사업자로 지정된 민간건설사에게 주택도시기금을 통한 저리 융자나 미분양 매입 확약 등 인센티브를 지급해 분양가 상승을 최대한 제한하겠다고 했다. B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민간이 들어오면 LH가 짓는것보다는 분양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LH가 건설사에게 얼마만큼의 자율성을 주느냐가 사업 진입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같은 정부 대책에 전문가들과 시민단체 입장은 엇갈렸다. LH 자문위원 경험이 있는 C대학 건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주택공급 수준을 고려할때 정부가 LH와 같은 거대 공기업을 통해 공공주택 건설에 개입할 필요는 더이상 없다고 본다. 오히려 규제 비용만 늘리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며 “LH와 민간의 경쟁을 유도하는 큰 방향성에는 동의한다”고 했다.
반면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은 LH가 공공택지를 개발하고 공공주택을 분양해서 얻은 시행 이익을 주거복지에 쓰는 구조”라며 “이러한 시행 이익을 민간 건설사에 주겠다는 것은 LH 혁신의 본질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도 이날 성명을 내고 “LH와 민간건설사가 공동으로 사업을 시행하는 민간참여공공주택사업조차 임대료 및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문제점이 지적된다”며 “하물며 민간건설사가 단독으로 공공주택사업자 권한을 부여받는다면 공공주택의 공공성은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훼손될 것”이라고 했다.
국토부는 민간시행 공공주택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공공주택법’ 개정 작업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이르면 내년 개정안이 통과되면 LH가 사업계획을 승인받은 기존 사업도 민간 건설사로 사업시행자를 변경해 진행할 수도 있다. 3기 신도시와 내년도 공급물량이 여기에 해당된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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