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습게 봤어, 웃음을···갈 길 못 찾는 K코미디
기대 못미쳐…식상한 포맷·뒤처진 외모비하
“규제 때문 아냐…예전 코미디 잊어야”
재미는 주관적인 것이다. 누군가 재미있게 본 콘텐츠가 누군가에게는 재미없을 수 있다. ‘추천 알고리즘’으로 모두의 취향이 그 어느 때보다 ‘뾰족’해진 지금, 모두에게 호소할 수 있는 코미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3년 만에 부활한 KBS <개그콘서트>가 지난 10일로 방송 5회째를 맞았다. 국내 공개 코미디 방송의 원조 격인 <개그콘서트>는 1999년 처음 방송됐다. 20년 이상 방송되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한때 ‘국민 방송’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점차 시청률이 하락해 2020년 6월 1050회로 종방했다. 김상미 책임프로듀서(CP)는 지난달 진행된 <개그콘서트> 공개 녹화에서 “주말 밤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방송이 시작된 지 한 달쯤 지난 현재, <개그콘서트>에 대한 반응은 미지근하다. 오히려 ‘나오는 사람’만 바뀌었을 뿐 과거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개그 포맷, 시대에 뒤처진 외모 비하 개그가 실망스럽다는 후기가 많다.
여전한 ‘비하 개그’, 어디서 웃어야 하나
‘데프콘 어때요’는 대놓고 여성의 외모를 개그의 주된 소재로 쓴다. ‘데프콘을 닮은 여자’가 소개팅남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지만 남성은 거부하는 것이 극의 전체적인 흐름인데, 주로 주인공 여성의 식탐을 웃음 포인트로 삼는다.
‘니퉁의 인간극장’에서는 제작진의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이 코너는 유튜브에서 14만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폭씨네’ 채널을 옮겨온 것이다. 최근 몇년 새 새로운 코미디 생태계를 구축한 ‘유튜브 코미디’를 방송으로 끌고 들어왔다. 문제는 성적인 소재나 표현 등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유튜브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가 ‘모든 연령대가 보는’ 방송에서 구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개그맨 김지영이 연기하는 니퉁은 한국 남성과 결혼해 살고 있는 필리핀 결혼이주여성이다. 니퉁과 한국인 남편, 그리고 시어머니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원래 폭씨네 채널에서 니퉁은 성적으로 매우 적극적인 여성으로, 얼른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 자연히 전반적인 웃음 코드가 ‘19금’이다. 이 코드는 <개그콘서트>에서 ‘고부갈등’으로 대체됐다.
문제는 시어머니의 대사다. “결혼기념일 그게 뭐 대수야? 우리 아들 돈 빨아먹을라고 아주 그냥. 나 때는 ‘서방님이 왜 그 여자집 안 가고 우리집으로 오셨지? 왜 서방님이 밥상을 안 엎으셨지?’ 그러면은 그게 기념일이고 동네 축하받고 그랬어.”(11월12일 방송) “자고로 아녀자가 예쁘게 꾸미고 바르게 앉아가지고 곱게 서방을 맞이하면은 아기 만들고 싶은 생각이 안 생기겠냐? (중략) 나는 항상 꾸미니까 너네 시아버지가 나를 밤마다 괴롭혀가지고 내가 밤이 무서운 사람이야.” “그러니까 말이에유. 아버지한테 밤마다 왜 그렇게 맞았어요?”(12월10일 방송) ‘아들 돈 노리는 외국인 며느리’ ‘아버지에게 맞는 어머니’ 같은 소재는 웃기기보단 불쾌하다.
웃기지 않은 건 규제 때문? “코미디 기본은 공감”
<개그콘서트>가 아쉬운 건 지상파 방송의 특성상 유튜브처럼 자극적인 내용을 다루기 어렵기 때문일까. 넷플릭스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코미디 로얄>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코미디 로얄>은 넷플릭스에서 단독쇼를 론칭할 기회를 놓고 개그맨들끼리 벌이는 코미디 서바이벌이다. 이경규 같은 베테랑 개그맨에서부터 신인 개그맨들이 승부를 겨룬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시리즈 공개 후에는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특히 2화의 ‘원숭이 교미’ 개그 장면이 논란이 됐다. 일부 출연진이 원숭이 분장을 하고 교미 장면을 흉내내는 모습은 유튜브보다 훨씬 선정적이었지만, 웃겼다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황스러웠다는 반응이 많았다. 오히려 이 장면을 보며 “그만하라. 코미디의 기본은 공감대다. 이건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것인데 선을 넘었다”고 한 이경규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통합 검색 사이트 ‘키노라이츠’의 평 역시 비슷하다. 안 웃긴 게 꼭 ‘규제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지금 한국의 코미디계에는 ‘롤모델’이 없는 것 같다. 다 예전 방식들이다. 소재만 다를 뿐 포맷은 거의 비슷하다”며 “코미디는 특히 ‘문화할인율’(한 나라의 문화 콘텐츠가 다른 나라에 수용되는 지표. 문화할인율이 낮을수록 수용이 쉽다)이 높다. 이걸 낮추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른 웃음’을 유발해야 한다. 웃음을 유발하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예전의 코미디는 잊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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