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열 응시과목 제한 없어지자 이과생들 ‘사탐 런’
“재수 때는 국어·수학에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할 것 같은데 ‘사탐 런’ 어떨까요?”
“내년에는 과탐 대신 사탐을 선택할 예정인데 과목 추천 좀 해주세요”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재수를 고려하는 수험생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최근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글들이다. ‘사탐 런’이란 이과생이 수능에서 과학탐구 대신 사회탐구를 선택해 시험을 치르는 것을 일컫는 수험생들의 신조어다. 내년부터 서울 주요 대학들이 자연계열 학과의 응시과목 제한을 없애면서 사탐을 선택하려는 이과생이 늘고 있다.
12일 대학교육협의회의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시행계획 주요사항을 보면 자연·공학·의학계열 중 정시모집에서 수능 선택과목 제한을 두지 않는 대학은 146개교로 2024학년도보다 17개교 늘어났다. 실제로 입시요강을 뜯어보면 의대는 여전히 수학영역 미적분·기하, 탐구영역 과탐 응시가 필수인 곳이 많지만 자연·공학계열에서는 선택과목 제한이 완전히 사라진 대학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서울 주요 대학 중에서도 건국대·경희대·국민대·광운대·동국대·성균관대·숭실대·연세대·이화여대·중앙대·한양대 등이 과학탐구 필수응시를 없앴다.
교육부는 통합수능 체제에서 이과생이 높은 표준점수를 획득해 인문사회계열 전공에 교차 지원하는 ‘문과 침공’ 논란이 커지자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평가지표에 ‘수능 선택과목 제한 폐지’를 반영했다. 그동안 주요 대학들은 자연계열에는 과탐을 필수 반영한 반면 인문사회계열에는 제한을 두지 않아 이과생들만 문과에 교차 지원할 수 있었다.
형평성을 고려한 조치지만 응시과목 제한 폐지는 문과생들의 자연계열 교차지원보다는 이공계열 대학을 지망하는 이과생의 사탐 선택만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의대 선호현상이 매년 심해지면서 과탐 난도는 올라가고 공부해야 하는 분량도 늘어났다. 서울대와 의약계열을 지망하는 최상위권 수험생과 N수생들이 과탐에 몰리자 상대평가 체제에서 이들을 변별하기 위해 난이도를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과탐 1과목의 공부량이 사탐 2~3과목과 맞먹는다는 이야기도 돈다. 여기에 국어와 수학의 선택과목별 표준점수 격차가 커지면서 국어는 언어와매체, 수학은 미적분을 선택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지기도 했다.
이런 현상들이 겹치면서 의대나 서울대를 지망하는 것이 아니라면 공부량이 적은 사탐을 선택하고 국어와 수학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 전략으로 여겨진다. 적성에 맞춰 과목을 선택하고 그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라는 문·이과 통합수능의 취지와는 정반대로 ‘공대에 진학하기 위해 사탐을 공부하는’ 수험생들만 늘어나게 된 셈이다. 과학을 공부하지도 않고 이공계 첨단분야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대학 전공수업을 따라갈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갈수록 기형적으로 변해가는 수능 제도를 개선하려면 킬러문항 제거 같은 미봉책이 아니라 상대평가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2024학년도 수능 평가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킬러문항 몇 개를 핀셋으로 덜어낸다 해도 문제의 원흉이자 본체인 상대평가 대입경쟁 체제가 존속되는 한 수능 사교육이 줄어들거나 수능이 더 공정해질 리 없다”고 말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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