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을 둘러싼 인도주의 딜레마…기후위기 최전선이 기후회의서 제외돼

노정연 기자 2023. 12. 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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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코치 유목민 여성들이 2013년 9월 8일 와르다크 지방의 수도인 마이단 샤 외곽에서 머리에 물통을 이고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홍수와 가뭄으로 심각한 인도적 위기를 겪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 국제 기금 원조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프간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하나이지만, 올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제외됐으며, 유엔 기후기금에 대한 접근도 차단된 상태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유엔과 국제관계자들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리고 있는 COP28에 아프간 대표들을 참석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당사국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의 기후회의 참석은 3년 연속 무산됐다.

아프간에서는 최근 극심한 가뭄에 이은 홍수로 수백명이 사망하는 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있다. 아프간은 지구에서 화석 연료 배출량이 가장 적은 국가 중 하나로 전 세계 배출량의 1% 미만을 차지하지만,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놓여있다.

아프간 국립환경보호국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10년 사이에 아프간의 연평균 기온은 1.8도 상승했는데, 이는 세계 평균의 약 두 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아프간 남부 지역은 기온이 2.4도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 상승으로 인한 가뭄은 인구의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아프간 경제와 식량수급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현재 아프간 전체 인구 4200여만 명 중 1990만명이 절박한 식량 부족 상태에 직면해 있고, 600만명은 기근 직전 상태에 내몰려 있다.

아울러 기온 상승이 아프간 북쪽 힌두쿠시 산맥의 빙하에도 영향을 미쳐 재앙적 홍수 발생의 위험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아프간 빙하 데이터베이스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아프간 전체 빙하 면적의 14%가 녹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탈레반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가 강화되면서 현재 아프간은 각종 환경 프로그램과 기후 기금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 상태다. 톰슨로이터재단에 따르면 탈레반이 귀환한 2021년 8월 이후 약 8억달러(약 1조500억원)가 넘는 대규모 환경 프로그램 32개가 중단됐다. 여기에는 개발도상국의 기후 목표 달성을 지원하는 녹색기후기금(GCF)의 농촌 태양광 설치 프로젝트도 포함돼 있다. GCF는 아프간의 지속 가능한 에너지 프로젝트를 위해 약 1800만달러(약 236억원)를 지원할 계획이었으나 이 역시 현재 보류된 상태다.

또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탈레반이 시행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탄압 등 비인권적 정책을 이유로 아프간에 대한 식량과 의료 등 인도주의적 지원 자금도 삭감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지난 9월 자금 고갈로 아프가니스탄인 200만명 분의 배급을 삭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구호단체 일각에서는 기후변화가 아프가니스탄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악화시키고 있으며 약 2900만명이 생존을 위한 구호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 처했다면서, 탈레반을 고립시키려는 국제사회의 접근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같은 조치들로 인해 오히려 아프간 여성들이 도움 받을 기회를 차단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인권 활동가들은 가뭄으로 물이 말라붙어 아프간 시골 지역의 여성들이 가족들이 사용할 물을 길어오기 위해 더 먼 곳까지 떠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도 유엔의 원조 감소로 심각한 식량 불안에 직면한 2000만 아프가니스탄인 중 상당수가 여성이라고 지적했다.

아프가니스탄 소년들이 2023년 12월 11일 칸다하르 주 아르한답 지역에서 장작을 나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반면 상당수 인권단체들은 탈레반이 여성 제한 정책을 철회하기 전까지 국제사회 참여를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탈레반 정부는 남성을 대동하지 않는 여성들의 외출을 금지하고 여성들을 대학 진학을 제한하는 등 여성들에 대한 강력한 제한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헤더 바 여성인권부 부국장은 “탈레반이 국제사회에서 환영받는 것을 볼 때마다 아프간 여성들의 권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세계 분쟁과 기후위기 구호활동에 대한 지원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아프간을 비롯한 취약국 지원 논의는 더욱 중요한 의제가 될 전망이다.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사무차장은 11일 성명을 통해 “전 세계에서 구호가 필요한 1억8000만명을 위해 내년에 464억 달러(61조원2000억여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가장 비인도적인 상황에 부닥친 이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기아·전염병과 싸우며 어린이를 보호하고 피난처와 보호시설을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국제사회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유엔에 따르면, 필요로 하는 구호 예산 규모가 큰 나라들로 시리아(44억달러), 우크라이나(31억달러), 아프간(30억달러), 에티오피아(29억달러), 예멘(28억달러) 등이 꼽혔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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