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클뉴스]"'유대인 학살' 맥락 봐야 한다?" 미 명문대 총장 사퇴로 번진 '반 유대주의' 논란

이선화 기자 2023. 12. 1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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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 전쟁이 미국 대학가로 번졌습니다. 캠퍼스를 덮친 '반 유대주의' 물결 관련, 최근 명문 대학 총장들이 사임하거나 사퇴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학생들의 '유대인 학살' 발언을 두고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등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는 이유에섭니다.

■반 유대 발언에 “표현의 자유” 답했던 미 명문대 총장들, 줄줄이 '백기'


지난 5일 열린 미국 하원 교육노동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 엘리자베스 매길 펜실베니아대 총장

논란은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미 하원 교육노동위원회 청문회에서 촉발됐습니다. 이 자리엔 펜실베니아대(유펜)의 엘리자베스 매길 총장, 하버드대의 클로딘 게이 총장, 그리고 메사추세츠공대(MIT)의 샐리 콘블루스 총장이 참석했습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교내 갈등이 심화한 가운데, 한 공화당 의원은 “일부 학생들이 '유대인을 학살하자'고 주장한다”며 이는 학칙 위반인지에 대해 '예, 아니오'로 답해달라 질의했습니다. 매길 유펜 총장은 “맥락을 보고 결정할 문제다”, 게이 하버드대 총장은 “하버드는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견해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각각 답했습니다.

매길 총장의 사임을 알리는 펜실베니아대의 공지

모호한 답변에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정치계와 경제계에선 거센 비난이 쏟아졌고, 뉴욕타임스는 “총장들이 변호사처럼 답변하면서, 대학의 유대인 학생과 교수진, 졸업생들에게 도덕적인 명쾌함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매길 유펜 총장은 청문회 나흘 만에 사임했습니다. 게이 하버드대 총장 역시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했지만, 사퇴 압박은 커지고 있습니다.

■잇따른 반 유대주의 시위…캠퍼스로 번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하버드대 캠퍼스 상공에 뜬 '하버드 학생들은 유대인을 혐오한다' 현수막

당초 명문대 총장들이 청문회에 소환된 건 캠퍼스 내 반 유대주의 시위 때문입니다. 반 유대주의란 유대인들을 향한 차별과 증오를 의미합니다. 개인적인 증오부터 홀로코스트 등 폭력적인 박해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역사가 길어 '가장 오래된 증오'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시작된 지난 10월 7일 이후 대학가에선 반 유대주의 시위가 잇따랐습니다. 친 팔레스타인 시위대는 '민중봉기'라는 뜻의 아랍어인 '인티파다'를 외치며 캠퍼스를 활보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반 이스라엘 투쟁'을 의미하는데, 유대인 학생들은 이 구호가 '유대인을 학살하자'는 주장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반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학생들은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저항운동 구호일 뿐이라고 반박합니다.

이처럼 교내 반 유대주의 물결이 확산하자, 당국은 대학에 책임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발언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데도 대학 관리자들이 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겁니다. 미 하원은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대학들이 어떻게 처리했는지 공식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동문 “기부금 철회” vs 교수진 “정치적 압력에 저항할 것”

하버드대 교수진의 '총장 사임 반대'를 알리는 교내 신문 기사(좌)와 탄원서(우)

반 유대주의를 둘러싸고 캠퍼스는 두 동강 났습니다. 유대계 동문들과 교수진이 대립 구도를 형성하게 됐습니다. 유대계 동문들은 기부금 철회를 압박 수단으로 삼고 나섰습니다. 유펜의 거액 후원자인 스톤릿지 자산운용의 창립자는 매길 전 유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기부금 1억 달러(약 1,300억 원의)을 철회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하버드 동문 1,600명 역시 반 유대주의 시위에 반발하며 기부금을 환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교수진은 무분별한 정치적 압력에 학계가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게이 하버드대 총장이 청문회 발언에 대해 8일 “죄송하다”고 공식 사과한 가운데, 교수진은 총장의 사임을 막아야 한다는 탄원서를 냈습니다. “대학의 독립성을 수호하고, 학문적 자유에 대한 약속에 어긋나는 정치적 압력에 저항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는 것입니다. 10일 현재 700명 넘는 교수가 이 서한에 서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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