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배우 덴젤 워싱턴 ‘한니발 캐스팅’에 튀니지가 펄쩍 뛴 까닭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이민자 배척과 맞물려
인기 영화배우 덴젤 워싱턴이 고대 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 전쟁을 다룬 영화에 카르타고 장군 한니발 역할로 캐스팅되자 북아프리카 튀니지가 반발하고 나섰다.
카르타고 관련 유적과 유물을 대거 보유한 튀니지는 영화 제작을 맡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한니발을 흑인으로 묘사해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이면엔 튀니지 정부의 반이민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가디언은 11일(현지시간) “워싱턴의 한니발 역할 캐스팅에 튀니지 정치권과 매체들이 인종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넷플릭스는 앞서 기원전 3세기 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 전쟁을 영화화한다고 밝히며 워싱턴을 주연인 한니발 역할로 내세웠다.
한니발은 현재 튀니지 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고대 국가인 카르타고의 명장이다. 튀니지는 지금까지도 한니발을 자신들의 영웅으로 치켜세우고 있다.
튀니지가 워싱턴 캐스팅에 문제 삼는 부분은 바로 피부색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튀니지 당국은 카르타고가 현재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남서쪽으로 200㎞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세워졌고, 한니발이 현재 레바논과 시리아를 아우르는 지역인 페니키아 출신이라는 데에 대부분 역사학자가 동의한다는 점에서 백인에 가까운 인종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흑인 배우인 워싱턴이 한니발 역할로 부적절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가디언은 “일부 튀니지인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넷플릭스가 역사 왜곡을 조장했다고 비난하고 있다”며 “사이비 다큐멘터리를 폐기하라는 온라인 청원에 1300명 이상이 참여했다”고 전했다. 튀니지 의회 관광·문화·서비스위원회 위원장인 야신 마미 의원도 “튀니지의 정체성을 수호하고 시민사회 반응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일각에선 튀니지 정부의 반이민 정서가 이 같은 반발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은 지난 2월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튀니지로 불법 입국하는 행위는 튀니지 인구 구성을 바꾸려는 목적의 범죄”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이민자 대부분이 흑인이라는 점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이후 튀니지 정부는 난민들을 리비아와 알제리 국경 사막 지역으로 내쫓았다.
가디언은 “최근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유입이 잦아지면서 튀니지에선 인종 문제가 전면에 드러났다”며 “사이에드 대통령은 현재 아무런 증거 없이 ‘가상의 적’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 속 피부색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월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왕 클레오파트라 7세를 흑인으로 묘사한 넷플릭스 드라마 <아프리카 퀸>이 공개되자 이집트에선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제작사는 주인공 클레오파트라 역에 영국 흑백 혼혈 배우인 아델 제임스를 캐스팅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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