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40% 재발 후 '반년' 사는 혈액암, 20년만 혁신신약 나왔지만…

이창섭 기자 2023. 12. 1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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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만성 거대 B 세포 림프종, 1차 치료제 '폴라이비'
20년 만에 새로운 치료 옵션으로 등장… 환자 사망 위험 27% 낮춰
18주 처방에 약 1억원… 건강보험 등재 여부 주목
"혈액암 치료제, 고형암에 비해 급여 심사에서 불리"
엄기성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가 머니투데이와 만나 DLBCL 1차 치료제 '폴라이비'의 효능과 급여 적용 필요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사진=이창섭 기자

20년 만에 등장한 미만성 거대 B 세포 림프종(DLBCL) 1차 치료제가 건강보험 문턱을 넘을지 주목된다. DLBCL 환자 10명 중 4명은 치료에 반응하지 않거나 재발을 겪는다. 재발 이후 환자 생존기간은 6개월 남짓이다. 한국로슈의 '폴라이비'는 재발을 막아 환자의 사망 위험을 27% 감소시켰다.

최근 머니투데이와 만난 엄기성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폴라이비는 재발 자체를 예방함으로써 환자의 생존율과 치료 성적을 향상한다는 의의가 있다"며 "재발 위험을 27% 줄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고, 몇십 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미충족 의료수요를 일부 해결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새롭게 발병한 DLBCL 환자 수는 약 2000명이다. 비호지킨 림프종 신규 환자 수 5000명의 40%다. 그만큼 DLBCL은 악성 혈액암 중에서 압도적으로 흔한 질환이다.

엄 교수는 "DLBCL 환자는 항암 치료에 반응이 좋은 암이고, 반응률도 좋다"면서도 "1년 이내 재발, 처음부터 치료가 듣지 않는 불응성 등을 고려하면 환자가 2년 내 재발하지 않을 확률은 60%에 그친다"고 말했다.

300명의 DLBCL 환자가 있다면 약 100명이 치료에 반응하지 않거나 재발을 겪는다. 이 중에서 50명은 자가조혈모세포이식조차 하지 못한다. 이들의 장기 생존율은 20% 미만이다. 나머지 절반은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받을 수 있지만 40~60% 환자만 효과를 본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완치가 되는 환자는 40%다.

엄 교수는 "결론적으로 100명 중 장기 생존 가능한 환자는 15명 이내이고, 이들의 평균 생존 기간은 6개월 남짓이다"며 "재발 후에 열심히 치료하는 것보다 재발할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 훨씬 좋은 치료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폴라이비는 20년 만에 등장한 DLBCL 1차 치료제다. 폴라이비 등장 이전에는 리툭시맙에 세포독성 항암제를 섞은 'R-CHOP' 요법을 사용했다. 엄 교수는 "R-CHOP 요법을 넘어서기 위해 20년간 무수한 임상시험이 진행됐지만 모두 실패했고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고 말했다.

폴라이비는 세포 표면의 'C79b' 분자와 결합하는 항체 항암제다. 폴라이비에는 항체뿐만 아니라 '유사분열 억제제'라는 항암제가 결합해 있다. C79b 분자에 폴라이비가 달라붙으면 결합한 항암제가 암세포에 작용한다. 이처럼 항체에 항암제를 결합한 약물을 ADC(항체·약물 접합제)라고 한다. 폴라이비도 ADC 항암제다.

엄 교수는 "일반 항암제는 암세포처럼 빨리 자라는 정상 백혈구나 머리카락 등을 공격하는데 폴라이비는 암세포만 타깃하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사 로슈가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 아시아 연례학술대회(ESMO Asia 2023)에서 DLBCL 1차 치료제 '폴라이비'의 효능을 홍보하고 있다. 환자의 사망·재발 위험을 '27%' 낮췄다는 점을 강조하는 모습./사진=이창섭 기자

폴라이비는 R-CHOP 요법과 함께 사용한다. R-CHOP 단독요법과 비교해 DLBCL 1차 치료에서 2년 이내에 환자가 사망하거나 재발할 확률을 27% 줄였다.

게다가 예후가 좋지 않은 고령자에게서 더 잘 듣는 약이다. DLBCL 환자를 분류하는 국제예후지수(IPI)가 있는데 △60세 이상 △낮은 건강 상태 △3~4기의 병기 △암세포가 장기 두 군데 이상 침범 등이 있다. 이런 조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장기 생존율이 9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모두 해당한다면 30%에 그친다.

엄 교수는 "특히 IPI 스코어가 높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폴라이비의 성적이 훨씬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60~70세 환자의 경우 예후가 더욱 좋지 않고 재발한 이후에 치료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기에 고위험군에서 효과가 있다는 건 특히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관건은 급여 등재 여부다. 폴라이비는 비용 문제로 현재 활발히 처방되지 못하고 있다. 폴라이비와 R-CHOP 병용요법은 3주 간격으로 6주기, 총 18주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약 1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엄 교수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폴라이비 병용요법을 택하는 환자는 극히 드물다"며 "내원했던 환자 20~30명에게 신약(폴라이비)을 소개했지만, 담당한 환자 중에서 1명 만이 폴라이비 병용요법으로 치료받았다"고 밝혔다.

정부로선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엄 교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선 오히려 폴라이비의 급여 등재가 보험 재정을 아끼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년 후 재발률을 27% 줄일 수 있다면 재발 이후의 어마어마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이라며 "환자가 재발을 겪으면 입원, 항암치료, 조혈모세포이식까지 진행해야 하고 최근에는 1회에 3억6000만원이 소요되는 CAR-T 세포 치료도 진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적어도 27% 환자에게는 1억원을 투자함으로써 추후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이라며 "돈을 떠나서도 사람이 죽는 확률을 낮추는 것이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혈액암 치료제 급여 평가가 고형암에 비해 불리하다는 점도 언급됐다. 항암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에서 건강보험 등재 적절성을 심사받는다.

엄기성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가 머니투데이와 만나 DLBCL 1차 치료제 '폴라이비'의 효능과 급여 적용 필요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사진=이창섭 기자

엄 교수는 "고형암은 암질심에서 치료제를 평가할 때 생존율이 5~10%만 차이가 나도 인정받는데, 혈액암은 환자 수가 적어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임상시험이 어렵다"며 "이런 이유로 통계적 유의성을 획득하기 어렵고 암질심에서 심사위원들을 설득하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암질심에서도 심의위원 10명 중 고형암을 담당하는 위원은 7~8명이라면 혈액암은 2명 정도밖에 되지 않고, 혈액암의 환자 수가 적은 점과 맞물려 치료제의 보험 급여 등재가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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