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일의 성패는 사소함이 가른다
마루의 괘종시계가 멈췄다. 제때 태엽을 감아주지 않아서다. 아버지가 멈춰선 시계를 넘어뜨리자 앞 유리가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우리집이 멈췄다"라며 새벽부터 불같이 화냈다. 대학에 다니던 때다. 건넌방에서 이불을 걷어차고 재빨리 뛰쳐나가 시계를 일으켜 태엽을 감았다. “집안의 시계가 멈추는 일은 삶의 긴장이 느슨해진 거고 게으름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라며 아버지는 태엽을 감는 내 머리 위로 역정을 쏟아부었다.
방으로 불려들어가자 아버지는 “집안의 시계가 멈춘 거는 우리집 지킴이의 죽음이다”라며 태엽을 감지 않은 것이 무척 큰일이라고 확대했다. 이어 “시계 태엽을 감는 일을 하찮게 여기는 데 끝나지 않고 습관으로 굳어지는 일이 두렵다”라며 우려했다. 아버지는 “순간이 모여 시간이 된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때와 때 사이가 시간이다. 시간(時間)의 ‘간(間)’은 원래 문(門) 안에 달 월(月)을 넣어 ‘틈 한(閒)’이었다. 틈새란 뜻이다. 어두운 밤 문틈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온 모습을 그렸다. 밝은 낮에는 보이지 않고 어두운 밤이 되어야 달빛을 통해 문틈이 벌어진 것을 알 수 있으니 ‘틈새’라는 뜻을 잘 표현했다. 시간에 틈이 있어 한(閒)이 ‘한가하다’란 뜻으로 쓰이자 날 일(日)자를 써 지금의 틈새를 대신하는 말이 되었다.
아버지는 “시계의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가 태엽이다. 세상 모든 것은 연결돼 있고 연결된 모든 것에는 틈이 있다. 시간은 물론 인간, 일간(日間), 천지간, 막간(幕間), 산간, 부모·자식 간처럼 둘의 연결에는 틈이 있다. 틈은 시간이 지나면 벌어진다. 그 틈을 메우는 아교 같은 접착제가 ‘적다’란 뜻의 사소(些少)함이다”라고 했다. 이어 “사소함은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 그래서 소홀하기 쉽다. 큰일에 가려 밀려난다. 단순반복적이어서 귀찮고 성가시다고 여긴다. 내가 이미 해본 일이라는 데서 오는 익숙함이 안이함을 낳는다. 신선함마저 떨어지니 무관심해지고 부주의를 부른다”며 세심한 주의를 가지기를 당부했다.
아버지는 사소한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소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신뢰를 잃을 수 있고 습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습관이 되면 더 큰 일도 소홀히 할 가능성이 커지는 점을 우려했다. 아버지는 “사소한 것들이 모여 큰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매일 아침 5분 일찍 일어나면 일주일이면 35분, 한 달이면 21시간, 일 년 후에는 2,555시간을 더 일찍 일어나게 된다”고 구체적으로 예를 들었다.
그날 아버지가 “사소함을 쉬운 것으로 치부하지 않아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며 인용한 고사성어가 ‘난사필작이(難事必作易)’다.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생긴다’는 말이다. 곧 ‘쉬운 일은 조심해서 하면 어려운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세상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부터 시작되고 세상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부터 일어난다[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63장에 나오는 말이다.
아버지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러우면 겉으로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에게 감동을 주고, 감동을 주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 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라는 중용(中庸) 23장의 말로 사소한 일에 정성을 기울일 것을 강조했다. 아버지는 “일의 성패는 사소함이 가른다. 소심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지만 세심하면 일을 성사시킬 수 있다”고 몇 차례 더 당부했다.
아버지가 강조한 말씀은 요즘 말로는 ‘작은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든다’는 뜻이다. 며칠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익숙해져 싫증 난 손주들을 보며 세심함 또한 서둘러 깨우쳐줘야 할 품성이라는 생각이 그때 아버지의 질책처럼 떠오른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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