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동, 왜 포항을 떠나 서울로 갈까?
한 해 농사를 마친 프로축구는 선수가 아닌 감독의 이적설로 시끌벅적하다.
포항 스틸러스를 상징하는 명장 김기동 감독(52)이 FC서울 지휘봉을 잡는다는 사실(11일 본지 단독 보도)은 이미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K리그 국내 최고 연봉 여부만 남긴 상황에서 이르면 13일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서울의 한 선수는 “감독님이 일부 선수에게는 ‘앞으로 잘해보자’는 표현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을 정도다.
포항 역시 대안 마련을 서두르면서 포항의 또 다른 레전드인 박태하 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의 선임을 마무리했다.
포항의 한 관계자는 “프로 무대에선 지도자도 변화를 추구하게 마련”이라면서 “지난해 3년 재계약을 맺을 때부터 우리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국내·외 구단이 나올 경우 위약금 없이 풀어주는 조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이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처럼 포항에서 오랜기간 지휘봉을 잡길 바랐던 포항 팬들에게는 아쉬운 대목이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출신인 시메오네 감독은 2011년부터 지휘봉을 잡아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라는 양강 구도를 깬 신화적인 인물이다. 포항에서 은퇴한 김 감독도 ‘현대가’에 사실상 독점된 정상을 빼앗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실제로 김 감독은 올해 포항에서 K리그1 2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대한축구협회(FA)컵에선 우승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흐름을 타고 있었다.
그러나 김 감독이 포항에서 시메오네의 길을 따르기에는 상황이 너무 달랐다. 최소한 시메오네 감독은 매년 빅네임을 데려올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것과 달리 포항에서는 구단이 키워낸 빅네임을 파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김 감독도 알지 못했던 송민규의 전북행을 비롯해 일류첸코, 김승대 등의 이적이 그 증거다. 우승컵을 들어올린 올해와 달리 내년은 혹한기를 각오해야 하는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성적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수비 라인에서 박승욱(입대)과 심상민, 김용환(이상 FA) 등이 이탈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김 감독을 둘러싼 평가가 ‘가성비’ 성적에 한정되는 것도 서울행을 자극했다. 최고의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지금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어야 모든 지도자의 꿈인 축구대표팀 사령탑도 도전할 수 있다. 포항에서 그런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더 할 나위가 없겠지만, 현실은 분명 달랐다.
축구 현장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사실 김 감독을 둘러싼 평가는 그를 상대한 팀들에서 더 좋았다. 올해 K리그1의 히트 상품인 광주 이정효 감독은 “(김기동 감독은)보통 양반이 아니라 내가 대응하면, 또 대응을 한다”고 인정했다. 포항이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에서 상대했던 중국의 우한 싼전도 두 차례에 걸쳐 김 감독에게 영입 제안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감독과 포항이 가장 좋은 타이밍에 이별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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