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살 아파트' 사라질까…관건은 '감리 독립'
설계·시공·발주 단계별 전문성 높이고 책임 강화
부실시공, 불법적발 시 '5배' 징벌적 손해배상도
'투박하지만 튼튼하다'란 이미지를 구축했던 LH(한국토지주택공사) 아파트에 지난 4월 철근 누락으로 지하주차장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후 연달아 발생한 철근누락 사태로 LH는 '순살 아파트'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LH의 독점적 권한이 부실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거기에 민간 아파트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실태도 드러났다. '순살 자이', '흐르지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후진국형 부실이 노정됐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12일 LH 혁신안과 함께 건설업계에 만연한 카르텔을 뿌리 뽑겠다는 혁파 방안을 내놨다. ▷관련기사: 'LH 힘 쭉 뺀다'…공공주택건설 민간과 경쟁해야(12월12일)
핵심은 발주·설계·시공·감리 등 사업단계별로 투명성, 전문성을 높이고 책임소재 등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최후 보루' 감리, 독립성·실효성 높인다
국토부는 우선 건설안전의 최후 보루인 감리가 독립적 위치에서 건설과정 전반을 감독할 수 있도록 감리제도를 재설계한다는 방침이다.
건설업은 외주를 통한 생산 비중이 커 발주·설계·시공·감리의 사업단계별로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복잡한 구조다. 이 때문에 각 구조에서 카르텔이 발생하면 불법하도급으로 공사단가가 줄어 부실시공으로 이어지고, 공기 단축에 쫓겨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되는 등의 사고가 불거지는 것이다.
감리는 공사 주요 단계마다 설계도대로 시공했는지 확인하고, 다를 경우 시정조치나 공사중지 조치를 통해 부실을 막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감리업체가 영세하다보니 감리역량이 떨어지고 건축주 시공사 등의 눈치를 봐왔다.
이런 부실을 막고자 앞으로는 30가구 이상 주택, 300가구 미만 주상복합뿐 아니라 다중이용건축물도 건축주가 아닌 지자체가 적격심사를 통해 감리를 지정하도록 한다. 향후 용역 수주를 위해 건축주, 시공사 눈치를 봐야 했던 감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감리 선정제도도 임의로 지정했던 방식에서 감리실적, 경험 등을 평가하는 적격심사 방식으로 바꾼다. 감리의 공사중지권이 실효성을 갖도록 시공사, 건축주뿐 아니라 인허가 청에도 함께 보고하도록 제도도 개선한다.
감리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인증 감리자 제도를 도입하고, 감리업무만 전담하는 감리전문법인도 도입할 방침이다. 인증 감리자에게는 입찰가점, 책임감리자격 등을 부여하고 감리전문법인에도 입찰시 가점, 고층 건축물 감리역할 등을 부여할 방침이다.
건축구조는 구조기술사가…단계별 '책임' 명확화
설계단계에서는 설계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는 데 초점을 뒀다. 설계업무는 건축사가 총괄하되, 구도조면은 구조기술사 등 전문가가 작성토록 한다. 구조분야 인력 수요 증가에 대비해 '건축구조기사' 자격도 신설한다.
철근누락 사태 원인으로 구조기술사가 구조계산을 잘못했거나 계산을 제대로 했더라도 건축사가 설계도면을 잘못 옮겨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감리에서도 이를 발견하지 못했던 만큼 구조기술사가 설계뿐 아니라 감리단계에도 참여하도록 협력의무도 강화한다.
구조안전심의는 구조안전 전문성이 있는 의원들로만 구성한 구조분야 전문 건축위원회를 구성해 심의토록 한다. 착공 전 시공사의 시공상세도의 설계오류를 검토하고, 구조전문가의 검토 없이 시공 중 임의로 기초, 주요부 등을 변경할 수 없도록 규정도 만든다.
설계오류를 검증하는 건축안전 모니터링의 점검대상도 소형에서 고층, 특수건물로 확대하고, 점검규모도 연간 1000여건에서 5000건으로 확대한다.
시공단계에서는 공공(국토안전관리원)이 직접 현장을 점검하는 '주요공정 의무점검'을 도입한다. 10층 이상 공동주택 공사현장이 대상으로 LH 시범사업 추진 후 확대할 계획이다.
또 철근·배근 등 상태에서 구조 안전성과 감리업무 실적 점검 등에 통과해야 콘크리트 타설 등 후속공정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한다. 건축물의 정기안전점검을 담당하는 안전점검업체가 시공사에 예속되지 않도록 계약주체도 시공사에서 발주청으로 바꾼다.
아울러 불량골재 유통을 막기 위해 현장납품까지 이동경로를 파악·관리할 수 있는 이력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품질시험업체의 계약 내역 등도 시스템을 통해 관리한다. 발주단계에서는 건축주가 시공사에 적정한 공기를 보장하도록 정부가 내년 상반기 내 '적정 공기 산정 가이드라인'도 마련하기로 했다.
공사비 산출 기준이 되는 표준시장단가도 물가변동을 신속히 반영할 수 있도록 주요관리항목을 204개에서 315개로 확대하고 관리항목 개정주기도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런 정책들이 실효성을 갖도록 시공사별 안전·품질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하자이력, 부실벌점을 비롯해 안전사고, 사망자수, 행정처분 등의 내용을 공개할 계획이다.
불법행위로 부실공사 등이 적발된 업체에 대해서는 손해액의 최대 5배에 이르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고, 정부 및 지자체의 현장감독도 강화한다.
다만 건설 카르텔 혁파 방안 대부분은 건축법, 건설기술진흥법 등 법 개정이 필요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존에 발의한 법령안과 즉시 개정 가능한 하위법령 과제는 내년 상반기까지 개정을 완료할 방침"이라며 "신규 발의가 필요한 법령은 최대 신속히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문성과 효율성, 책임을 명확히 하는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면서 "특히 적정 공기 산정 가이드라인 등은 반드시 필요한 내용으로 기준을 엄격히 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수반비용 증가 등을 명확히 책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미리내 (panni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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