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원했지만 자식은 "안돼"…갈비뼈 부러지며 CPR 받은 89세母
이윤서(가명)씨는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어머니(89)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한다. 심박수,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센서를 몸 곳곳에 붙이고 기관 절개로 목에 구멍을 내 산소를 주입하며 80대 노모(老母)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심폐소생술(CPR)을 해서 갈비뼈가 여러 개 부러졌는데 멍은 없어서 감사했죠" 이씨에겐 그나마 위안이 되는 기억이다.
이씨와 그의 어머니는 몇 년 전 거주지인 서울에서 함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자신보다 더 나이 많은 어르신이 혼자 서류를 작성하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지체없이 펜을 들었다. 쇠약해지기 전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선택했다는 데 어머니의 자부심은 컸다고 한다.
치매와 파킨슨병이 진행해 몸이 점점 약해졌지만 대화에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어머니의 의식은 또렷한 편이었다. 남동생이 사는 경북으로 내려간 뒤로도 어머니는 수개월을 집에서 거주하며 증상을 관리했다. 그러다 결국 병이 악화해 요양병원에 입소했고 한 달여만인 지난 6일, 식사 중 음식이 기도를 막으며 어머니는 급성 심정지 상태에 빠지게 됐다. 폐로 음식이 넘어가 폐렴이 생겼고 혈액이 세균에 감염되는 패혈증까지 동반됐다.
하지만 병원에서 시간은 어머니가 바라던 존엄한 마지막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는데도 의료진은 아들에게 또다시 어머니의 연명의료를 중단할지 물었는데, 남동생이 "치료해달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장녀인 이씨는 평소 남동생과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 남동생이 병원에 생소한 '사생활 보호 조치'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바람에 이씨는 어머니의 상태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중환자실 면회도 직접 병원을 찾아 동생에게 부탁하고 나서야 어렵게 성사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담긴 어머니의 존엄사에 대한 의지도 "나는 잘 몰랐다. 그럼 어머니를 그대로 죽이는 게 효도란 말이냐"는 남동생의 반문 앞에서 힘을 잃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식물인간 상태로 쓰러진 지 단 4일 만에 숨을 거뒀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을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가 있으면 연명의료를 중단(유보)할 수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영석 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까지 29만 7313명이 CPR, 인공호흡기 치료 등 7개 연명의료 행위를 중단(유보)하고 존엄사 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존엄사를 이행한 비율은 6.9%(2만649명)로 10명 중 1명도 채 안 된다. 아직 제도가 시작된 지 5년 정도에 불과해 적용 대상인 곧 사망할 상태의 '임종 과정' 환자가 적은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이 외에도 향후 분쟁에 대비하거나 의사가 '선택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병원이 가족에게 추가로 동의를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이씨는 "연명의료 중단은 자기 결정권이 핵심인데도 의료진이 가족에게 환자의 생사를 선택하게 해 마음의 짐을 더하는 것이 과연 합당하느냐"며 "보호자가 평소 환자와 얼마나 친밀한 관계인지,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도 모른 채 결정권을 맡기는 것도 애통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시는 어머니와 같이 비통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며 "사망이 임박한 상태에서만 존엄사할 게 아니라 고통이 극심한 말기까지 이행 기간을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조만간 자기 경험을 토대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연명의료 제도 개선에 대한 글을 올릴 생각이다.
이에 대해 해당 병원은 "아들이 초기 응급실에 왔을 때부터 적극적인 치료를 원했다"며 "이송 당시 환자가 요양병원에서 시행한 CPR을 통해 안정적인 상태를 회복했고 임종 과정이 아니라서 혈압 상승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필요한 처치를 수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여경자 순천향대서울병원 연명의료 전담간호사는 "법적 의무는 없지만, 전통적으로 가족 중심 문화권을 유지한 우리나라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가족에게 묻지 않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며 "현재까지 200만명 이상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이 연명의료 중단을 이행할 '임종 과정'에 처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취지·목적을 살릴 수 있게 연명의료 중단 이행 과정에서 환자의 알 권리와 자기 결정권을 반영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며 "일반인은 물론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홍보와 교육도 확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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