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K푸드 매력 전하는 외교관 출신 ‘헝가리 여자 백종원’
“헝가리에는 지금 대대적인 한국 문화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에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다 보니 드라마를 보다가 한국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K드라마의 인기가 K푸드로 번진 셈이죠.”
조피아 마우트네르(49)는 헝가리를 대표하는 음식 전문 인플루언서다. 현재 진행 중인 헝가리 공중파 채널 TV2와 요리 전문 채널 TV파프리카의 쿠킹쇼를 비롯, 다수의 요리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 진행과 패널로 참여했다.
지금까지 출간한 요리 관련 책만 17권에 달하며, 그중 다수가 관련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마우트네르와 동행한 한국인 일행은 그에 대해 ‘헝가리의 여자 백종원’이라고 귀띔했다. 본인에게 “헝가리에서 얼마나 유명한지” 물으니 “음식과 요리를 좋아하는 이들은 날 알아본다. 시장에서 레시피를 묻는 사람들도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 마우트네르를 지난달 말 서울 용산구 서계동의 한옥카페에서 만났다. 당시 그는 해외문화홍보원의 해외 주요인사 초청사업의 일환으로 7박8일 동안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단풍 명소인 내장산 국립공원 경내의 고찰(古刹) 백양사에서 김장 체험을 하고, 국립민속박물관과 한약재로 유명한 서울 경동시장 등을 방문하는 것이 주된 일정이었다. 김장 체험은 백양사 부속 암자 천진암의 주지이자 한국 사찰음식의 대가인 정관 스님의 주도로 진행했다. 정관 스님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 시즌3(2017)에 출연해 세계적인 인물로 주목받았고 ‘뉴욕타임스’ 등 외국 여러 언론이 ‘요리하는 철학자’로 소개한 바 있다.
마우트네르가 처음부터 요리 전문가로 활동한 건 아니다. 프랑스 명문 소르본대를 졸업하고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5년 동안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이후 ‘칠리와 바닐라(Chili & Vanília)라는 이름의 음식 블로그 운영을 병행하다가 2008년에 커리어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렸다.
전날 백양사에서 150포기 김장을 도왔다는 그는 헝가리 집에 돌아가면 “소파에 누워 K드라마 정주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외교관 출신 답게 어떤 질문에도 미소를 머금고 막힘없이 대화를 풀어갔다.
─'김치 종주국’ 한국에서 김장을 해본 소감은.
“김치 만드는 법은 부다페스트(헝가리 수도)에 있는 주헝가리한국문화원에서 배워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150포기 김장(정확히는 배추 150포기와 무 50다발, 갓 30다발이 사용됐다)은 스케일이 달랐다. 힘들었지만 화창한 날씨 덕을 봤다. 서로 돕고 나누는 게 김장의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았다. 헝가리에서 김장할 때 쓰려고 소형 김치매트도 구입했다.”
─헝가리에서도 김치 만드는 행사를 해 볼 생각인가.
“내년 11월에는 부다페스트에서 김장 행사를 하려고 계획을 이미 세웠다. 장소는 아직 미정인데, 한국문화원 옥상이나 시내에 있는 공원 등을 검토해 볼 생각이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5~6년 전 쯤 한국 음식과 사랑에 빠졌다. 무엇보다 맛에 끌렸다. 사실 헝가리음식과 한국 음식은 꽤나 비슷하다. 한국과 헝가리의 날씨와 계절이 닮았고, 식재료도 비슷하다. 헝가리 음식에 돼지고기, 양배추, 파프리카 등을 많이 사용하는데, (김치와 비슷하게) 발효시킨 양배추도 먹는다. 한국에서 찌개와 국을 자주 먹듯이 헝가리에서는 스튜와 스프를 많이 먹는다. 헝가리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굴라쉬(헝가리식 비프스튜)는 한국 김치찌개와 비슷한 점이 있다. 김치찌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다. 헝가리 사람이 한국음식을 사랑하는 건 쉬운 일이다(웃음).”
─처음 맛본 한국음식을 기억하는지.
“아마 김밥이었을 것이다. 헝가리 사람들이 한국 김밥을 좋아하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헝가리에는 바다가 없다(헝가리는 유럽 7개국과 국경을 접한 중부 유럽 내륙국이다). 헝가리인의 식탁에 해산물은 좀 낯설 수밖에 없다. 김밥은 일본 초밥과 비슷하지만 고기를 넣을 수 있어 헝가리에서 인기가 많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한국 음식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을까.
“한국 드라마는 헝가리 사람들을 한국 음식의 세계로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사랑의 불시착’ ‘서른, 아홉’ 등이 큰 인기였다. 한국 드라마에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다 보니 드라마를 보다가 한국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K드라마의 인기가 K푸드로 번진 셈이다.”
‘사랑의 불시착’은 남한의 재벌 2세 여성이 북한의 장교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담았다. ‘서른, 아홉’은 마흔을 코 앞에 둔 39살 세 친구의 우정에 관한 드라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여주인공이 손예진이다.
─정관스님과의 만남은 어땠나.
“지난 9월 주헝가리한국문화원 초청으로 정관스님이 부다페스트에 열흘 일정으로 다녀갔다. 부다페스트 있는 동안 우린 아주 좋은 친구가 됐다. 난 고기를 즐겨 먹지만, 스님의 사찰음식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채식이지만 음식 종류가 다양하고, 맛도 다채롭고 영양적인 균형이 잘 잡힌 음식이었다. 무엇보다 내 몸이 좋아했다.”
─헝가리 사람들이 정관스님의 음식을 좋아했나.
“초청 행사에 헝가리의 미슐랭 스타 셰프와 장래가 유망한 젊은 셰프 등 30~40명을 초청했다. 그들은 깊은 인상 받고 매우 놀라워 했다. 스님에게 장류와 김치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런 종류의 오래된 보존, 발효 기술에 기후변화 시대를 살아가는 셰프들의 관심이 클 수 밖에 없다. 다들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대단했다.”
─외교관으로 일하다가 커리어를 전환했다. 어려움은 없었는지.
“외교관 시절에도 문화 분야를 많이 담당했기 때문에 현재 업무와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음식을 매개로 서로 다른 문화를 연결하고 있고, 국가(헝가리)를 대표해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헝가리에는 지금 대대적인 한국 문화 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에 관한 이야기와 정보를 원하는 이들이 많은데다 부다페스트에만 약 2만 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헝가리와 한국을 연결하는 것도 내겐 매우 중요한 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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