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하오베이징] 명품 안사는 중국인들… 비상걸린 '구찌·발렌시아가'

우경희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 2023. 12. 1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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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호 기자

세계 최대 명품(사치품) 시장 중국의 동향이 심상찮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속에서도 굳건히 버티던 중국의 명품 수요가 올 상반기를 고점으로 꺾이고 있는 것이다. 실적 직격탄을 맞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의 표정에도 당혹감이 읽힌다. 유커(중국 단체관광객)들의 관광이 재개되면서 '현찰 결제 명품 싹쓸이'가 재개될 것을 기대했던 한국 등 주변국가들도 입맛이 쓰다.


2분기 고점이었나, 명품사랑도 꺾이는 中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최근 글로벌 명품산업 관련 리포트를 통해 중국의 명품시장 성장세가 3분기 들어 큰 폭으로 꺾였다고 전했다. 가뜩이나 내수시장 위축에 대한 우려가 큰 중국 언론들도 해당 리포트를 연이어 비중있게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올 3분기 세계 명품시장 아시아태평양마켓(일본은 별도 집계)에서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 늘어나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 ▲케어링그룹 1% ▲프라다그룹 13.5% ▲에르메스그룹 10.2% 등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네 곳 모두 전년 대비 매출 성장을 기록했지만 내부적으론 비상이 걸렸다. 상반기 만해도 LVMH 23%를 비롯해 ▲케어링그룹 11% ▲프라다그룹 25.3% ▲에르메스그룹 27.6% 등의 전년 동기 대비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들 네 그룹사의 실적은 사실상 세계 명품의 모든 것이다. 엄청난 브랜드가치를 앞세워 유럽 증시서 시가총액 1위를 다투는 LVMH그룹은 루이비통·디올·티파니·불가리 등과 화장품 기업 세포라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케어링그룹은 구찌·발렌시아가·생로랑 등을, 프라다그룹은 프라다·미우미우 등을 아우른다. 에르메스그룹은 세계 최고가를 자랑하는 에르메스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통상 패션 성수기는 고가의 외투가 많이 팔리는 4분기지만 명품시장 구조는 좀 다르다. 두꺼운 옷 얇은 옷 가리지 않고 비싼데다 명품 쇼핑은 관광과 함께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여행 수요가 집중되는 3분기는 명품 최대 성수기나 다름없다. 1년 실적을 판가름할 3분기에 아시아태평양마켓 장사를 망친 셈이다.

명품시장에서 아시아태평양마켓은 곧 '중국+한국'이며 소비의 핵심은 중국인이다. 베인 등 글로벌컨설팅 기관들이 중국 명품시장을 분석할 때 아시아태평양마켓을 기준으로 보는 이유는 중국인들의 해외 명품 소비 패턴 때문이다. 중국의 수입 사치품 판매가격은 인접국에 비해 훨씬 비싸다. 때문에 중국 큰손들은 한국이나 홍콩 등에서 명품을 산다.

팬데믹 이전인 2018년 기준 중국 명품소비는 정확히 50%가 국내에서, 나머지 50%가 한국 등 해외서 이뤄졌다. 조사에 따라선 중국인 명품소비의 70%가 사실상 해외서 이뤄진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시장만이 아닌 아시아태평양마켓 전체로 시야를 넓혀야만 글로벌 명품시장을 좌우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구매 동향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팬데믹으로 여행길이 막힌 2021년 중국은 세계 명품 시장의 30%를 점유했는데 이는 단일 시장으론 역대 최대였다.

/그래픽=강지호 기자


중국이 '콜록'하자 휘청이는 명품업계


그러던 중국인들의 명품 소비가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내수경기 위축이 원인으로 꼽힌다. 경기위축 초반엔 서민계층의 소비가 줄어든 반면 고소득계층은 소비가 유지됐다. 하지만 올 상반기로 접어들며 사치품 영역과 예체능 사교육 등의 영역에서도 소비 위축 조짐이 보이고 있다. 고급 피트니스체인과 발레교습소 등이 줄지어 폐업하고 사교육 시장에 삭풍이 불고 있다.

배경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는 부동산시장의 장기 위축이다. 중국 부동산 경기는 바닥을 모르고 하강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10월 기준 중국 내 70개 주요 도시 주택가격은 각각 전월 대비 신축 0.4%, 중고 0.6% 하락했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시장에 적극 개입하던 2014년 9월 이후 9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평균 중고주택 매매가격이 하락한 도시 수는 67곳으로, 이 역시 9년 만에 가장 많다. 올 들어 10월까지 부동산 투자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3% 줄었다. 이중 주거용 투자가 8.8% 줄어 감소폭이 가장 컸다. 상업용과 주거용주택의 판매 면적은 각각 7.8%, 6.8% 감소했다.

부동산은 중국인들이 부자가 되는 가장 빠르고 일반적인 코스였다. 지방정부가 토지규제를 풀어주면 부동산기업들이 아파트를 짓고 인민들에게 분양했다. 이 집엔 중국인들은 물론 쏟아져들어오는 외국인과 해외 기업 주재원들이 높은 월세를 지불하며 입주했다.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주택도 쉽게 매매가 이뤄졌다. 하지만 실수요가 뚝 끊기고 내수경기가 하강하며 주택 매매도 절벽을 맞았다.

펑펑 돈을 쓰기 불안하니 명품에부터 지갑을 닫는다. 명품의 신수요층인 20대 후반부터 30대까지의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다. 기성세대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구매력이 낮다.

기대처럼 늘어나지 않는 관광 수요도 중국 명품 수요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해외여행의 문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열어놨지만 한국이나 일본, 대만은 물론 동남아시아 등 주변국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과 우호도는 최악이 됐다. 어디서도 중국인 관광객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관광+명품소비' 패키지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중국인들이 명품을 사지 않자 명품브랜드들의 전체 실적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전년 동기 대비 15% 성장했던 LVMH의 글로벌 전체 매출은 3분기 9%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프라다그룹은 20.5%에서 10.3%로, 에르메스그룹은 25.2%에서 15.6%로 역시 매출 성장률이 반토막 났다. 케어링그룹의 분위기는 더 어둡다.

상반기 2% 성장에 그쳤던 게 3분기엔 아예 -9%로 4개사 중 유일하게 역성장했다. 중국 시장에 카운터펀치를 맞은 탓이다. 4개사를 포함한 글로벌 명품 시장도 된서리를 맞을 전망이다. 베인은 올해 글로벌 명품 시장 규모를 전년 대비 4% 늘어난 3620억유로(약 512조원)로 전망했다. 지난해엔 22% 성장했었다.

우경희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


우경희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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