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호구축→셀프연임, 은행지주 `승계 악습` 고리 끊는다
은행 CEO 승계절차 최소 3개월전 개시…이사회 독립성 강화
앞으로 금융(은행)지주와 은행은 현 최고경영자(CEO)의 임기 만료 최소 3개월 전부터 후임을 뽑기 위한 경영승계절차를 시작해야 한다. 후임 CEO 평가 방법이나 시기는 현직이나 내부 출신에 비해 외부 인사가 불리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체계적인 CEO 승계계획을 마련해 문서화해야 한다. 이사회의 규모와 구성도 손질해 실질적으로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뚜렷한 대주주(주인)이 없는 지배구조 탓에 자신의 측근으로 참호를 구축하고, 경쟁자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셀프 연임'을 이어오는 후진적 관행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금융감독원은 12일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하는 '은행지주·은행(이하 은행)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best practice)'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그동안 이사회의 경영진 견제 및 감시 기능 미흡, CEO 선임 및 경영승계 절차의 투명성·공정성 결여, 이사회의 집합적 정합성(collective suitability) 부족 등으로 국내 은행의 지배구조가 글로벌 기준에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은행의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및 리스크관리를 통한 성장을 위해서는 건전한 지배구조 확립이 필수적이라고 판단, 지난 7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모범관행 수립을 논의해왔다.
모범관행은 사외이사 지원조직 및 체계(6개), CEO 선임 및 경영승계 절차(10개), 이사회 구성의 집합적 정합성·독립성 확보(9개), 이사회 및 사외이사 평가체계(5개) 등 4개 주요 테마 관련 30개 핵심원칙을 제시했다.
먼저 CEO 선임 및 경영승계 절차와 관련해 면밀한 평가와 검증이 가능하도록 최소 임기 만료 3개월 전 경영승계 절차를 개시하도록 명문화하고, 단계별 최소 검토 기간을 두도록 했다.
외부 후보군 포함 시 자격요건이나 추천 경로, 절차 등을 명확히 하고, 평가 방법이나 시기가 이들에게 불리하지 않은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단순히 한 차례의 인터뷰나 면접에 그치지 않도록 외부평가기관이나 전문가 참여, 심층 평판조회 및 다면평가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은행지주 등은 내부 CEO 후보를 부회장 등으로 선임해 이사회나 이사들과의 다양한 접촉기회를 제공함에 따라 외부 후보가 불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모범관행은 CEO 후보군 관리·육성부터 최종 선정까지를 포괄하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승계계획을 마련해 문서화하고 CEO 자격이나 평가요건은 공개하도록 했다.
적정 규모 CEO 후보군을 상시 관리하고, 최소 연 1회 이상 관리실태를 점검해 보완하는 한편, 부적합 후보는 제외하도록 했다.
박충현 금감원 은행 담당 부행장보는 논란이 됐던 지주 회장이나 은행장 연임 등에 관해 별도 규정하지 않은 데 대해 "지배구조 부분이 어느 정도 정착되면 이사회에서 잘하고 있는 CEO는 연임하도록 할 것"이라며 "(모범관행에서) 임기에 대해서는 터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핵심 원칙도 마련했다.
모범관행은 우선 사외이사 지원조직은 CEO 관할이 아니라 이사회 아래 독립조직으로 설치하고, 업무총괄자 임면은 이사회의 사전동의 등을 거치도록 했다. 경영진이 참여하지 않는 사외이사만의 간담회를 운영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한 뒤 적극 활용하도록 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모범관행은 또 이사회가 은행 규모나 복잡성, 위험 프로파일, 영업모델에 적합한 집합적 정합성을 갖추고 경영진을 견제·감시하는 독립성을 확보하도록 9개 원칙을 수립했다.
사외이사의 직군, 전문 분야, 성별 등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이사회 역량 구성표(Board Skill Matrix·BSM)를 작성해 후보군 관리 및 신규 이사 선임 시 활용할 계획이다.
BSM은 이사회 구성의 전문성, 능력, 경험, 자질 뿐만 아니라 성별, 연령, 사회적 배경 등 다양성 정보를 표나 그림 등으로 도식화해 이사회 구성의 적절성 등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모범관행은 또 사외이사 임기가 현재 획일적인 '2+1' 제를 택해 동일 연도에 임기만료가 집중되고 임기 연장 여부가 경영진에 영향을 받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 적정 임기정책과 장단기 이사회 승계계획을 마련하도록 했다.
독립성 강화와 함께 이사회 및 사외이사의 평가체계도 강화한다.
이사회 소위원회, 사외이사 활동에 대해 외부 전문기관 활용 등을 통해 연 1회 이상 주기적으로 평가를 실시하고, 평가 결과를 사외이사 재선임과 연계하는 한편 세부 내용을 공시하도록 했다.
금감원은 이번 지배구조 모범관행 최종안과 관련해 은행별 특성에 적합한 자율적 개선을 유도할 계획이다. 각 은행지주와 은행은 과제별로 이사회 논의를 거쳐 개선 로드맵을 마련하고 추진해야 한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와 협의해 내년 1분기 중 규정을 개정, 모범관행 최종안을 추후 지배구조 관련 감독과 검사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박 부원장보는 "(모범관행을 따르지 않더라도) 강제적으로 제재를 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제대로 되고 있는지 정기검사에서 체크한 뒤 경영실적평가에 정확하게 반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행 시기와 관련해서는 "(은행 등의) 내규에 반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다. 주총이 보통 내년 3월이니 빨리 하면 내년에 적용이 될 것"이라며 "다만 언제까지 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고, 대형 지주사와 지방은행과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으니 로드맵을 받아 판단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2일 중구 은행회관에서 8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과 정례 간담회를 갖고 "은행지주 이사회의 경영진 감시기능을 강화해야한다. 최고경영자(CEO)나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공정성을 높여야한다. 단기 실적 위주 경영문화와 성과보상체계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담회에는 이 원장을 비롯해 KB금융지주 김경호 의장, 신한지주 이윤재 의장, 하나금융지주 김홍진 의장, 우리금융지주 정찬형 의장, NH금융지주 이종백 의장, BNK금융지주 최경수 의장, DGB금융지주 최용호 의장, JB금융지주 유관우 의장 등 이사회 의장들이 참석했다.
이 원장은 "은행지주 이사회는 지주 그룹의 경영전략과 리스크 관리 정책을 결정하는 곳이다"며 "자칫 단기성과에 매몰되기 쉬운 내부 경영진이 경영 건전성과 고객 보호 등에 소홀하지 않도록 통제·감독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이어 "지난 몇 년간 대규모 소비자 피해사례나 금융사고로 국민 신뢰가 크게 저하된 상황이다"며 "내부통제 최종 책임을 가지는 이사회가 단기 실적 위주 경영문화와 성과보상체계를 개선하고 강력한 내부통제 체계가 작동되도록 노력해 달라"고 덧붙였다.
특히 CEO과 임직원을 겨냥해 막강한 권한을 내려놓고, 준법의식을 제고할 것을 당부했다. 이를 위해 이사회의 감시기능이 강화돼야한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대표적 소유-지배 분산기업인 은행지주에서 CEO나 사외이사 선임 시 경영진 참호구축 문제가 발생하거나 폐쇄적인 경영문화가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며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강화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어 "고금리 기조가 예상보다 장기화하고 실물경제 회복도 지연되고 있다"며 "예상치 못한 손실에 대응할 수 있도록 손실흡수능력의 확충, 세심한 리스크관리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경렬기자 iam1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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