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컬러는 ‘피치 퍼즈’…그 많은 색깔 이름, 새에서 나왔다
19세기 조류학자, 색상표 사전 출간…야생조류 색 구분 목적
1960년대 기업 팬톤, 인쇄·광고업 위해 현재 색상표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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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쿼츠, 베리 페리, 비바 마젠타, 피치 퍼즈. 이 낯선 외래어들의 정체는 바로 색깔의 이름이다. 미국 색채 전문기업 팬톤은 매년 ‘올해의 색깔(color)’을 선정해 발표하는데, 최근 2024년을 대표하는 색으로 ‘피치 퍼즈’(Peach Fuzz)를 선정했다. 피치 퍼즈는 연한 복숭아색으로 아늑함과 편안함을 강조하는 색채라고 한다.
팬톤이 1999년부터 발표하고 있는 올해의 색은 패션, 뷰티,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며 유행을 이끄는 색깔로 여겨지고 있다. 이렇게 ‘색깔 유행’을 몰고 온 팬톤의 색상 시스템이 19세기 조류학자의 연구에서 비롯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과학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유행을 선도하는 팬톤의 올해의 색깔과 박물관의 먼지 쌓인 조류 표본은 굉장히 멀게 느껴지지만 두 주제는 생각보다 가깝다. 팬톤의 거대한 색상 도감의 일부분이 19세기 조류학자의 연구에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라고 8일(현지시각) 전했다.
최근에는 올해의 색깔이 여러 제품에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팬톤이 설립될 당시인 1960년대엔 통일된 색상표가 없어 인쇄업과 광고산업에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설립자 로런스 허버트가 자체의 기술로 팬톤 색채매칭시스템을 개발했고 이 색상표는 현재까지도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 색채매칭시스템에 조류학자의 새 깃털 색채 분류법이 영감을 줬다는 것이다.
과거 자연사를 연구했던 학자들도 생물의 몸색이나 깃털을 정확한 색깔로 지칭하거나 기록하기 어려웠다. 색은 조명이나 주변의 다른 색조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1886년부터 1929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박물관에서 조류를 연구했던 로버트 리지웨이 또한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북미의 조류를 기록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새의 깃털은 굉장히 다양한 색을 띠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파란 깃털을 지닌 새만 하더라도 파랑어치의 연푸른색과 유리멧새의 짙푸른 색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지웨이는 수컷 공작의 깃털 색을 딴 ‘피콕 블루’부터 겨자색을 닮은 ‘머스터드 골드’까지 1000여 개가 넘는 색상이 담긴 두 권의 색채 사전을 출간했다. 사전에는 직접 칠한 색채 견본과 일람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자비로 출간한 첫 책 ‘자연주의자를 위한 색채 명명법’(1886년)은 리지웨이와 그의 아내가 직접 개별 색을 칠해 제작한 색채 표본 186개가 포함됐다. 그러나 더 많은 색상 일람이 필요하다고 느낀 그들은 1912년 두 번째 책 ‘색채 표준 및 색채 명명법’을 펴냈고, 출간 즉시 대히트를 기록하며 여러 번에 걸쳐 인쇄됐다고 한다.
미국 자연보전단체 ‘오듀본협회’ 일리노이주 협회장 브라이언 엘리스는 “리지웨이가 이 책을 만들기 전까지는 색채에 대한 일반적인 어휘가 없었다. 그는 새를 연구하기 위한 색채 명명법이 필요했고, 구체적인 필요 때문에 만들어진 색상표는 현지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말했다.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야생 조류는 10만 종 이상으로 깃털 색은 본래 해당 종이 갖고 있는 색과 개체의 특성에 따라 굉장히 다양하게 발현된다. 코넬대학 조류연구소 케빈 맥고완 선임강사는 “아마추어 탐조가와 조류학자 모두에게 조류의 깃털 색은 종 식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전했다. 엘리스 협회장에 따르면, 리지웨이의 이러한 노력 덕에 1000여 종 이상의 새에게 이름이 생기고 생김새가 기록될 수 있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깃털 식별 연구실 사라 루트렐 연구원은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로 우리가 가장 먼저 인지하는 감각은 언제나 색깔이다. 자연의 색과 색깔이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되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우리가 색을 잘 측정할 수 있다면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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