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로 변신한 ‘맥베스’, 신의 운명 대신 인간의 탐욕을 채웠다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왕족이자 전쟁 영웅인 장군이다. 야심만만한 부인 맥버니와 함께 덩컨왕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다. 맥베스 부부는 왕관을 쓴 고개를 끙끙거리며 노래로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때 익살스러운 왈츠풍 음악이 흐른다. “왕관은 왜 이리 무겁고 난리야. 까딱 잘못하면 목 부러지겠다. 근데 왜 벗으면 또 허전해.”
서울시뮤지컬단이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를 한국에선 처음 뮤지컬로 재창작했다. 한국의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장르까지 새롭게 바꾸는 일은 어려운 도전이다. <햄릿>을 옮긴 <함익>, <바냐 아저씨>에 바탕을 둔 <순우삼촌> 등 서양 고전의 재해석으로 유명한 극작가 김은성, <작은 아씨들>을 비롯해 다양한 뮤지컬 넘버를 만든 작곡가 박천휘, <실비아, 살다>에서 독창적 스타일을 보여준 신예 연출가 조윤지가 참여했다.
기자가 관람한 지난 3일 공연에선 맥베스 역에 배우 성태준, 맥버니 역에 서울시뮤지컬단 단원 유미가 출연했다. 성태준은 대사 일부를 건너뛰거나 바꿔 말하는 실수를 종종 했지만 발성과 연기가 안정적이었다. 유미도 맥버니의 성마른 모습을 잘 표현해 존재감이 뚜렷했다.
뮤지컬 <맥베스>는 원작의 운명론을 거부하며 ‘세 마녀’ 캐릭터를 없애는 파격을 시도했다. 원작에선 맥베스가 세 마녀에게서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듣고 욕망이 움튼다. 하지만 뮤지컬에선 맥베스가 순전히 자기 몫을 얻어야 한다는 욕망으로 왕을 살해한다. 살인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왕좌를 빼앗기지 않을지 불안감으로 괴로워하다 파멸한다. 어떤 의미에선 주체적 캐릭터가 된 셈이다.
세 마녀 대신에 억압적인 아버지 스콧, 병사한 아들 앤디, 청년 시절 맥베스의 환영이 등장해 맥베스의 욕망을 자극한다. 맥베스가 어릴 적부터 맥더프에게 열등감을 품고 있었다는 설정도 추가됐다. 원작에선 맥베스를 부추기는 배역에 불과했던 맥베스 부인은 뮤지컬에서 맥버니라는 이름을 얻어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로 변신했다. 맥베스와 함께 전투에 뛰어드는 검술의 고수이기도 하다.
뮤지컬 <맥베스>는 신의 운명 대신 인간의 욕망을 작품의 동력으로 삼았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내면에 품은 욕망으로 배신하고 배신당하는 정치극을 그렸다. 원작에 없는 초상화 장면을 넣기도 했다. 결말에선 반전을 통해 인간의 역사란 권력 투쟁의 역사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한다.
전체적으로 원작의 어둡고 무거운 정서를 많이 덜어냈다. 무게가 가벼워진 만큼 비극이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부작용도 생겼다. 대사와 가사는 관객의 연령대를 어리게 잡은 것으로 보였다. 설명조의 대사에서 원작의 시적 언어들이 주는 감흥을 느끼기 힘들었다. 몇몇 코미디 대목은 심각한 분위기를 희석시키려 일부러 넣었겠지만 힘을 줘야 할 때조차 힘을 빼는 느낌이었다. 특히 뮤지컬의 핵심인 음악을 들으며 ‘가볍다’는 느낌은 더 강해졌다. 음악이 대사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장면이 많았다. 맥베스 부부가 분노와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에 쓰인 넘버 ‘거짓말’은 청춘 드라마에 어울릴 법한 멜로디였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오는 30일까지 공연한다. 맥베스 역은 성태준·한일경, 맥버니 역은 유미·이아름솔이 번갈아가며 출연한다. 공연 시간은 휴식 없이 100분. R석 7만원, S석 5만원, A석 3만원. 만 12세 이상 관람가.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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