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도서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2023. 12. 1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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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 작가’ 정세랑이 역사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 소설은 680년대 후반 통일신라를 배경으로 기록과 유물의 빈틈을 파고들어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라고 작가는 일러두기를 썼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펴냄
1,400년 전 통일신라에 나타난 셜록과 왓슨
설자은은 금성(경주)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는 길이었다. 고향 금성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곳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서도 금과 유리와 다른 귀한 것들로 조각한 땅 같은 곳. 설자은은 오래 머물렀던 장안을 사신단과 함께 떠나 육로로 등주까지 왔다. 유학생으로 처음 당나라 땅을 밟았으나 뜻밖의 전쟁으로 사신단이 오가지 않은 기간이 길어진 덕분에 고립되어 긴 수학 기간을 보내며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겨야 했다.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간다는 부푼 마음을 안고 탄 배에서 자은은 그의 인생을 바꿀 사건이 일어날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짙은 안개가 지나간 밤, 사람이 죽어서 발견된다. 배에 탄 이들 중 눈에 띄는 지식인이었던 설자은은 이 사건의 수사를 의뢰받는다. 한 번 본 것은 결코 잊지 않는 두뇌와 비상한 추리력을 가졌으니 탐정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적역이었다.
통일신라의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이라 해도 무방할 탁월한 능력의 이인조 설자은과 목인곤. 육두품 출신 설자은은 본래 11남매 중 6째인 설미은이었다. 1살 많은 오라비 설자은이 당나라 유학을 앞두고 급환으로 사망하면서 머리가 좋고 얼굴이 닮은 그가 설자은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엉겨 붙은 식객이 바로 백제인 목인곤이었다. 탑을 짓던 장인이었던 인곤은 대여섯 살이 많지만 친구가 되기로 했다. 종군 의사였던 왓슨 박사만큼이나 쓸모가 많고 다재다능하다. 밥만 축내는 식객은 아닌 것이 만듦새가 좋은 물건만 보면 백제 것이라 우기긴 하지만, 재주가 많았다. 눈이 정확하고 손이 빨라 만들거나 고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1,400여 년 전 과거를 다룬 이야기지만, 꼼꼼하게 묘사되는 금성의 이모저모는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사극 속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고 인물들의 욕망과 우정과 사랑과 갈등은 오늘날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작가의 상상력만으로 베틀을 짜듯 만들어낸 이야기라 믿기 힘든 감쪽 같은 거짓말인 셈이다. 특히나 신라는 특별한 나라이기도 했다. 연애와 여러 번 하는 결혼도 낯설지 않은 곳이고 남자들도 이상한 허영이 있어서 나이가 한참 지나도 소년처럼 아름다워 보이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사신을 뽑을 때도 미려함을 따지는 허영의 나라에서 남장 여자 탐정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누빈다.
설자은 시리즈를 열다
첫 이야기 ‘갑니다, 금성으로’에선 배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룬다. 장신구 상인이 목이 졸린 시신으로 발견되고, 동승한 아내와 딸은 배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딸은 평소 학대를 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을 뒤지지만 살인자의 흔적은 없다. 설자은은 아내와 딸이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력자가 있었을 것이고, 물독에 숨어 다른 배로 옮겨졌다면 완전 범죄가 가능했으리라 추측한다.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은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올 공산이 컸다. 두 여자의 불행을 막기 위해 도량이 넓은 설자은은 뭉툭하게 사건을 봉합해 배가 떠날 수 있도록 한다.
‘손바닥의 붉은 글씨’ 편에서는 죽은 오빠와 연인 관계였던 지체 높은 귀부인 산아가 나타나 자신의 부친에게 닥친 사건 의뢰를 한다. 명망 높은 지휘자였던 김독군은 전쟁에서 부하들을 잃고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남은 생을 보내던 인물이었다. 어느 날 손바닥에 붉은 글씨가 떠오른 뒤 의식을 잃자 가족 중 누가 범인인지 설자은이 찾아 나선다. 금성의 호화 저택에서 벌어진 사건의 범인이 밝혀지며, 오랫동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한 가족의 미스터리가 풀리게 된다.
이 책의 화룡점정은 ‘월지에 엎드린 죽음’이다. 문무왕 11년 소부리주에서 흰 매를 바쳤다는 기록 한 줄에서 부풀려낸 이야기인데 왕이 월지에서 베푼 연회에서 일어난 죽음의 비밀을 파헤친다. 연회의 하이라이트에서 왕의 상징과 같던 흰 매의 사냥이 시연된다. 매를 부리던 매잡이가 연회 중 연못에서 죽어 떠오르고 왕은 전말이 밝혀지기 전까지 연회의 밤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한다.
왕의 눈에 띄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자은은 연회에 억지로 끌려간 것도 모자라, 형제 중 셋째인 호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 죽음의 비밀을 해결할 부담을 안게 된다. 탐욕스러운 매잡이로 인해 동물을 부리던 이들은 모두 불만을 품고 있었지만 매잡이를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 자은이 죽은 매잡이의 사연을 밝혀내며 그 밤이 지나간다.
당나라 유학생에서 왕의 부름을 받은 대신이 되기까지 숨 가쁘게 달려가는 자은과 인곤의 이야기는 다음 에피소드를 기대하게 만든다.
[ 김슬기 기자 사진 문학동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08호(23.12.1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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