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웰터급 파이터 콜비 코빙턴(35·미국) 이야기를 하려면 2017년 10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데미안 마이아(46·브라질)와의 경기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랭킹 7위였던 코빙턴은 출중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UFC 수뇌부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끈적한 레슬링 일변도의 경기가 수뇌부와 팬들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기 때문. 마이아와 붙기 전까지 UFC 4연승이었지만 퇴출 가능성까지 제기됐던 코빙턴은 인생 최대 결심을 한다. ‘악역’이 되기로 한 것.
브라질 국적의 마이아를 만장일치로 이긴 코빙턴은 경기 후 옥타곤 인터뷰에서 ‘역대급 발언’을 한다. 과격하기로 소문난 브라질 팬들 앞에서 브라질 선수를 이긴 뒤 그가 내뱉은 말은 충격적이었다. “브라질 사람들, 이 더러운 동물들아. 엿이나 먹어라.” 안 그래도 야유가 쏟아지고 있던 경기장엔 더욱 큰 아유소리가 퍼졌다. 이제껏 브라질 팬 앞에서 이런 말을 한 선수는 없었다. 코빙턴은 옆에 있던 통역가를 밀치며 이어서 말한다. “오늘은 통역 안 할거야.” 그러곤 경기장을 떠나버렸다.
이 인터뷰는 코빙턴 인생을 바꿨다. UFC는 코빙턴과 재계약했고, 코빙턴은 UFC 내에서 ‘악역’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이후 코빙턴 입담은 만개한다. 선수들 이름을 웃기게 바꿔 부르는가 하면 떠오르는 신예 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과 함께 “Who?(누구?)”라고 응수한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취지다. 한 번 입이 터진 코빙턴의 입담을 따라갈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공개 지지하며 ‘미국을 사랑하는 미국인’이라는 캐릭터도 만들어 냈다.
원래 실력이 있던 선수가 캐릭터까지 가지니 사람들은 열광했다. 코빙턴은 기세를 몰아 2018년 하파엘 도스 안요스를 꺾고 웰터급 잠정챔피언에 올랐지만 카마루 우스만(36·나이지리아)에게 2019년, 2021년 2번 연달아졌다. 정상에 영영 오르지 못할 것처럼 보였던 그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오는 17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T-모바일아레나에서 열리는 UFC296에서 영국 출신의 웰터급 챔피언 리온 에드워즈(32·영국)를 만나게 된 것.
코빙턴은 경기가 잡힌 뒤부터 이 경기를 ‘미국과 영국의 싸움’으로 프레임을 짰다. 과거 영국이 미국을 지배하다 미국이 독립한 역사를 끌어와 에드워즈를 괴롭히고 있다. 미국이 독립을 쟁취했듯 본인도 에드워즈로부터 타이틀을 빼앗아오겠다는 것이다. 코빙턴은 최근 TMZsports와 한 인터뷰에서 “토요일 밤은 미국의 1776년을 상기시키는 밤이 될 것”이라며 “영국인이 미국에 와서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1776년은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해다.
코빙턴이 입담으로 에드워즈를 거침없이 괴롭히고 있지만 에드워즈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에드워즈는 코빙턴이 2번이나 넘지 못한 ‘벽’ 우스만을 하이킥 KO로 잠재우고 타이틀을 땄다. 그리고 1차 방어전에선 우스만을 다시 이겼다. 코빙턴은 2번 진 우스만을 2번 이긴 것이다.
하지만 코빙턴은 자신만만하다. 그는 최근 ESPN MMA와의 인터뷰에서 “에드워즈와 싸운 우스만은 내가 싸운 우스만과 다르다”며 “에드워즈의 승리는 운과 타이밍이 좋았다. 그리고 첫 번째 경기는 심지어 경기 내내 지배당하고 있다가 운 좋게 터진 ‘뽀록’”이라고 비하했다. 코빙턴은 “경기에 나가서 에드워즈를 이길 생각에 설렌다”며 “나는 아내도 없고 아이도 없다. 싸움과 결혼했고 매일 발전 중”이라고 했다.
이 경기의 관전 포인트는 코빙턴의 레슬링이다. 미국 엘리트 레슬러 출신인 코빙턴의 최고 장점은 지치지 않는 체력을 바탕으로 한 무한 레슬링 압박이다. 코빙턴은 본인이 밀고 들어갈 때 가장 효율적인 선수이기 때문에 이번 경기에서도 레슬링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코빙턴이 에드워즈를 케이지에 가둬놓을 수 있을지, 그리고 가둬놓는 것을 넘어 테이크다운 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코빙턴이 이에 성공한다면 의외로 경기는 코빙턴 쪽으로 쉽게 흐를 수 있다.
하지만 에드워즈가 케이지에 몰리거나 테이크다운 당할지는 미지수다. 웰라운더인 에드워즈는 레슬링 베이스인 우스만의 레슬링 공격을 잘 막아냈다. 심지어는 우스만을 테이크다운 시키기도 했다. 코빙턴은 우스만과 2번 싸우면서 한 번도 우스만을 테이크다운 시키지 못했다. 코빙턴이 에드워즈를 케이지에 가두거나 바닥에 눕히지 못한다면 에드워즈의 날카로운 타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그림도 충분히 예상된다.
종합격투기는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잔인한 스포츠다. 코빙턴이냐, 에드워즈냐. 신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일요일이 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