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이 배우 이성민을 걱정할 정도라는 건('운수 오진 날')
파트2는 더 강렬한 ‘운수 오진 날’, 이걸 해낸 배우들이 놀랍다
[엔터미디어=정덕현] 저 지독한 역할을 도대체 어떻게 연기해냈을까.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운수 오진 날> 파트2를 보다보면 드는 생각이다. 파트1의 마지막 6회 역시 시청자들의 허를 찌르는 엔딩을 보여준 바 있다. 딸을 어떻게든 구하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선택들까지 했던 오택(이성민)이 끝내 마주한 딸의 죽음 앞에서 절망하게 됐고 그를 그렇게 만든 금혁수(유연석)를 죽이려 하지만 결국 칼을 맞고 바닷물에 던져지는 처지가 됐다. 시청자들이 파트2를 기다리게 만들 수밖에 없는 엔딩이었다.
파트2의 7회는 역시 기대한대로 오택이 가까스로 살아남지만, 대신 아들의 복수를 위해 끝까지 금혁수를 추적했던 황순규(이정은)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를 죽이기 위해 가져갔던 총에 자신이 당하게 된 것. 하지만 총에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그녀는 물에 빠져 죽어가는 오택을 구해낸다. 그녀는 죽어가면서 오택에게 부탁한다. 그놈이 죗값을 꼭 치르게 해달라고.
딸이 끝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오택의 아내는 딸의 환상을 보다가 투신해 사망하고, 딸도 아내도 잃은 오택은 아무런 희망조차 갖지 못하게 된다. 오택의 아들 승현(홍사빈)은 이 모든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자책한다. 자신이 진 온라인 도박 빚 때문에 아버지가 묵포까지 가는 금혁수를 택시에 무리하게 태우면서 벌어지게 된 일이라 여기는 것.
희극과 비극이 겹쳐지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처럼, 이 오진 하루를 보낸 오택은 로또에 당첨되지만,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심경이 된다. 하지만 그는 형사가 가져온 신상명세 속 금혁수의 얼굴이 자신이 택시에 태웠던 연쇄살인범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한다. 범인이 금혁수 행세를 했다는 걸 알게 된 오택의 반격이 시작된다.
파트1과 파트2를 굳이 나눠 놓은 건, 전편을 보고나면 너무나 이해되는 대목이다. 파트1과 파트2의 서사가 확연히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금혁수 행세를 한 인물은 이병민이라는 재력가 집안의 성공한 사업가였다. 심지어 임신한 아내와의 단란한 가정도 있는 번듯한 인물이다. 오택은 이병민을 추적하면서 그가 외과의사였던 금혁수와 어떤 관계였는가를 파헤친다.
사실 파트1에서 숨쉴 틈 없이 몰아치는 사건전개를 보여줬던 <운수 오진 날>은 그래서 파트2는 파트1과 달리 서사의 추진력이 또 남아 있을까 싶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범인의 실체가 사실 이병민이라는 게 드러나면서, 택시에서 오택에게 범인이 이야기했던 첫사랑 윤세나(한동희)와 얽힌 이야기도 등장하고, 금혁수와 이병민 그리고 오택의 딸인 오승미 사이에 벌어졌던 사건들도 등장한다. 즉 오택에게 벌어진 일이 우연이 아니고 모두 계획된 것들로 일어난 일들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10부작 긴 호흡의 스토리가 얼마나 촘촘하게 짜여졌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파트2 역시 숨쉴 틈을 주지 않는다. 범인의 실체를 알게 된 오택은 반격하지만 범인 역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반격에 반격이 이어지며 오택은 점점 이병민을 닮아간다. 이병민의 만삭 아내 노현지(오혜원)을 납치해 살해함으로써 자신이 당한 고통을 똑같이 이병민에게 돌려주려 하는 것. 하지만 이병민이 자신의 아들 승현의 연인 채리(기은수)를 납치해 살해하겠다 협박을 하자 오택은 믿지 않는다. 자신의 딸 역시 이미 죽여놓고 죽지 않았다 거짓말을 했던 것처럼, 채리 역시 그가 이미 살해했다고 믿는다. 오택이 결국 범인과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극적 갈등의 순간들이 끝까지 드라마의 긴장감을 높여 놓는다.
빈틈없이 채워진 스릴러의 서사도 놀랍지만, 진짜 놀라운 건 배우들의 연기다. 오택 역할의 이성민은 시청자들이 보기에도 배우가 걱정될 정도의 독한 역할을 기막히게 연기해냈다. 그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주로 보여줬던 것과는 상반되는 겁 많고 소심한 소시민적인 면면을 초반에는 보여줬고, 끝내 딸과 아내를 잃은 후 절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범인의 실체를 알고 추적하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복수의 화신으로 활활 타올랐다. 이성민의 인생연기라고 해도 될 법한 독하지만 다채로운 연기의 스펙트럼이 이 한 작품 안에 녹아들었다.
마찬가지로 잔혹한 사이코패스 역할을 연기한 유연석 역시 그 독한 역할을 미친 연기력으로 소화해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그 다정한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잔인한데다 치밀하기까지 한 연쇄살인범의 면면을 섬뜩하게 끌어냈다. 그의 악역이 확실히 서 있었기 때문에 <운수 오진 날>의 긴 서사가 한 호흡으로 채워진 것 같은 강력한 추진력이 가능해졌다. 이밖에도 타인의 고통을 제 고통처럼 여기는 황순규 역할의 이정은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역할과 연기가 있어 이 스릴러의 깊이와 의미가 생겼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보는 대본부터 연출, 연기까지 꽉 찬 스릴러다. 군더더기 없이 에두르지 않고 한 방에 흘러가는 스릴러가 이토록 다채로운 긴장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이 쉽지 않은 감정의 파고를 온몸으로 받아낸 연기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들의 호연이 있어 꽤 오래도록 남을 명작 스릴러가 탄생했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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