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다시 ‘조국의 늪’ [김지현의 정치언락]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가 11월 29일 세종시에서 열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북콘서트에서 한 말입니다. 조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만 안 했으면 각종 비리도 들키지 않고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하필 장관을 맡은 탓에 걸린 것이 안타깝다는 걸로 들립니다.
조 전 장관은 올해 2월 1심에서 자녀 입시 비리 혐의 7개 중 6개를 유죄로 인정받아 징역 2년을 선고받았죠. 조 전 장관의 딸인 조민 씨도 자신의 입시 비리 혐의 관련 첫 재판에서 혐의 자체는 모두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성난 민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국 수호’를 외치다가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나서야 뒤늦게 부랴부랴 ‘조국 손절’을 선언한 거죠. 이대로 대선마저 질 수는 없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4년 만에 ‘조국의 강’을 또다시 건너온 거죠. 결국 4년 전 사과는 선거를 앞둔 민심 달래기용, 보여주기용이었던 셈이네요.
당시 이재명 대표도 태세 전환에 있어선 누구보다 발 빨랐습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 전까진 “비이성의 극치인 마녀사냥”, “조 전 장관은 선택적 정의에 당한 것”,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언론 플레이”라며 조 전 장관을 감싸던 이 대표는 대선 후보가 되자마자 조국 손절에 나섰습니다. 그는 2021년 11월 “집권 세력의 일부로서 작은 티끌조차도 책임져야 하는 건 당연하다”, “똑같은 책임도 권한이 있을 때는 더 크게 지는 것”이라고 했죠.
열흘 뒤엔 공식 사과도 했습니다. 그는 “민주당이 국민들의 공정성에 대한 기대를 훼손하고 실망시키고 아프게 한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며 ‘공식 사과’로 받아들여도 되느냐는 질문에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아주 낮은 자세로 진지하게 사과드린다”고 답했습니다. 당내 경선을 통과하기 전까진 당내 주류인 친문(친문재인)과 친조국 등 강성 지지층 눈치를 본 것일 테고, 대선 후보가 된 뒤부터는 중도층 표심을 계산한 거겠죠.
발단은 올해 6월 조 전 장관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남 양산 평산책방을 찾으면서였을 겁니다. 조 전 장관은 문 전 대통령과 만난 직후 페이스북에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길 없는 길’을 걸어가겠다”고 썼었죠. 그때만 해도 민주당 내에서도 ‘설마’ 하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게 사실상 출마선언이었던 셈입니다. 문 전 대통령이 끝내 그 문을 다시 열어준 거죠.
이렇게 문 전 대통령을 뒤에 업은 조 전 장관은 “비법률적 방식으로 저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한다”(11월 6일) “어떤 방식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민생경제 파탄 상황을 해결하는) 거기에 일조는 해야겠다는 각오는 하고 있다”(11월 29일) “돌 하나는 들어야겠다는 마음”(12월 4일) “윤석열 정권에 아부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12월 5일)며 연일 총선 출마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민주당 전·현 지도부도 동조하며 우왕좌왕하는 거죠. ‘상왕’ 문재인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운 것도 있을테고, 내년 총선에서도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유지돼 ‘조국 신당’ 같은 꼼수 비례 위성정당이 등판할 수 있다면 민주당으로서도 나쁘지 않다는 계산일 겁니다.
최근 만난 지도부 소속 의원은 “조국 신당이 이준석 신당보다 훨씬 파괴력이 있을 거라고 본다”라며 ‘지난 총선 때 열린민주당과의 관계처럼 초반엔 선을 긋다가도 나중에 손잡을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한 석이라도 더 이겨야 하는 상황이 오면…”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두더군요.
또 다른 지도부 의원도 “조 전 장관 본인이 민주당으로 들어오는 건 본인도, 민주당에서도 부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총선에) 나온다면 비례 신당 형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습니다. 지역구로 나오면 민주당 후보와 대결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가 되는데, 그건 조 전 장관에게도 부담일 것이란 겁니다.
그동안 줄곧 조 전 장관을 엄호하던 강경파 의원들은 요즘은 대놓고 ‘조국 신당’을 옹호하고 있죠. 한 강경파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조국의 강을 건넜느니 어쩌니’ 헛소리 하던데 우리가 그 인식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올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출신 윤미향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국도 개혁 저항인 거지, 무슨 지방대 표창장 받으러 일부러 위조하러 그럽니까. 그게 무슨 그렇게 입학 평가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미리 알고선, 지방대 표창장을 일부러 위조하고 그랬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쿠데타로 가는 전조였는데 그걸 민주당이, 당시 청와대가 못 알아들은 거죠.” 대체 무슨 말인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딸을 의사로 만드는 데에 혈안이 된 엄마가 기어이 대학 표창장까지 위조한 사건이 도대체 검찰개혁과 무슨 상관이라는 걸까요. (추 전 장관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대표가 뒤늦게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했을 때 “‘조국은 불공정하다’고 한 번 더 낙인찍게 된 것”, “인간 존엄을 짓밟는 것”이라고 공개 반발한 바 있습니다. 어이는 없어도 의리는 있네요.)
지난 대선을 앞두고 뒤늦게 “우리는 ‘조국의 강’을 모두 건넜다”고 선언하던 민주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권심판 여론에 취해 스스로 다시 ‘조국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은 못 하는 듯합니다. 또 모르죠, 이러다 다시 여론이 나빠지거나 조 전 장관의 재판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손절할지도요. 과연 민주당에 진정성이라는 게 존재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선거철입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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