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연이 꿈꾸는 농구는…, 이런 것이에요”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습니다. 특히 인식과 정서, 문화 등 오랜기간 이어져온 일에 변화를 주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개인이 바꾼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죠. 하지만 누군가는 첫걸음을 떼어야 되고 그렇게 시작된 곳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변화의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구태여 어깨를 맞대고 함께 걸어갈 필요까지도 없어요. 단 한 발자국이라도 흔적이 남는다면 쌓이고 쌓여 길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높게 뻗은 가시덤불도, 울퉁불퉁한 자갈도 평탄한 길의 일부가 되지 않을까요?”
우리은행, KB스타즈 등에서 활약했던 양희연(46‧178cm)이 2016년 2월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체육학과 스포츠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상당한 화제를 모은바 있다. 여자프로선수 출신으로는 최초였기 때문이다. 여자농구는 남자부와는 다르다. 대부분이 대학을 가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선수의 길을 간다.
때문에 고교 시절 내내 프로선수(이전 실업선수)가 되기 위해 체력, 기술을 닦는 것에만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고 공부와는 어쩔 수 없이 담을 쌓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일까. 은퇴 후 뒤늦게 학업의 세계에 뛰어들어 학창시절 못다한 공부를 하는 케이스도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기초도 거의 없이 나이만 먹은 상태에서 덤벼드는지라 일반인들보다도 훨씬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아예 중학교 과정부터 다시 시작 해야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는 것은 개인의 학습능력을 떠나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양희연의 케이스가 직접적으로 자극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후 몇몇 선수들이 뒤이어 박사학위 취득에 성공하며 은퇴 후 행보의 좋은 모범사례가 되어가고 있다.
“제가 최초인 경우도 있고 최초까지는 아니지만 본격적인 행보의 스타트가 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아요. 이전 사례들의 도움을 받고 싶어도 변변한 자료나 경험을 얻기가 힘들어 스스로 해결하고자 공부겸 시작한 것이 상당수에요. 후배들에게는 닦여진 길을 조금이라도 걷게 해주고 싶어요”
선수 은퇴 후 지도자의 길에 관심이 있던 그녀는 2006년 UC산타바바라 여자대학농구팀으로 지도자 연수를 떠난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부터 결코 쉽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될지 아는게 전무했기 때문이다. 여자선수들이 은퇴후 외국으로 연수를 하러 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때인지라 이런저런 루트나 경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오롯이 스스로 찾아서 해결해야만 했다. 그녀가 많은 부분에서 가이드 시스템을 만들고자 노력하게된 계기다.
해외연수를 다녀온 이후에도 누구보다도 바쁘게 달려왔다. 앞서 언급한 박사학위 취득 및 숙명여자중학교 농구부 코치, WKBL 해설위원, 저서 집필(나의 첫 번째 농구책 ‘초심자를 위한 농구 가이드’) 등 여러 영역에 걸쳐 다양한 활동이 빛났다. 현재는 본인의 색깔과 철학이 담긴 농구클럽을 운영 중이다. 선수 시절에도 그랬듯 늘 한결같은 열정에 지치지 않는 꾸준함이 돋보이는 그녀다.
◆ 양희연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172경기 출전, 평균 6.1득점, 4.2리바운드, 1.4어시스트, 0.7스틸
◆ 양희연 플레이오프 통산기록 ☞ 통산 14경기 출전, 평균 6득점, 4.1리바운드, 0.9어시스트, 1.1스틸
⁕ 경기 최다기록: 득점 ☞ 1999년 7월 22일 중국 요녕전 = 21득점 / 3점슛 성공 ☞ 2003년 2월 7일 우리은행전(외 2경기) = 4개 / 어시스트 ☞ 1999년 3월 2일 북경 수강전 = 8개 / 리바운드 ☞ 2000년 1월 27일 신세계전 = 14개 / 스틸 ☞ 1999년 8월 12일 KB스타즈전 = 6개 / 블록슛 ☞ 2000년 6월 19일 금호생명전(외 3경기) = 3개
“한걸음 먼저 가서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Q.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현재는 다양한 일을 하면서 나름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멘탈트레이너, 대학교 강의에 한국스포츠코칭랩이라는 곳을 운영하고 있어요. 스포츠코칭랩같은 경우 스킬트레이너 민간 자격증을 발급하는 파트와 돌핀즈 농구클럽이라고 아이들을 지도하는 파트로 나뉘어져 운영되는 중이에요. 스킬트레이너 자격증 발급 같은 경우 은퇴선수들의 향후 지도자 생활을 돕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어요.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보니까 은퇴하자마자 지도자로 바로 가는 것은 리스크가 있더라고요. 항상 오는 기회가 아니기에 ‘물 들어올 때 노저어야 된다’는 말도 맞지만 아무래도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는 잘 안될 위험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죠. 선수와 지도자는 다르니까요. 아무리 뛰어난 감각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전혀 다른 분야인 지도자 쪽에서 처음부터 잘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부 등 이런저런 준비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사회적기업육성사업에 지원하게 됐는데 운 좋게 선정이 되어 가지고 회사를 만들게 되었어요.
Q.민간자격증이라는 점에서 다용도로 활용이 가능할 듯 싶어요.
맞습니다. 무엇보다 농구선수 생활을 하지 않은 이들에게 특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농구클럽 등을 보면 농구를 전공하지 않은 선생님들도 적지 않아요.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생활체육자격증을 취득한 후 가르치게 되는데 디테일함은 둘째치고 기본기 교육에서도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어요. 선생님들이야 그렇다쳐도 교육을 받는 아이들같은 경우 제대로된 기본기를 배워야만 이후 꾸준한 발전이 가능하거든요. 때문에 저희는 선생님들에게 좀 더 확실한 준비를 도와주고 싶습니다.
Q.여자선수들의 경우 은퇴 후 대학원까지 가서 공부하는 케이스도 늘고 있고 학구열도 상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여자 지도자는 많지않아요. 여성들의 마음은 같은 여성이 더 잘 안다고 여자 농구계 쪽이라도 여성 지도자가 늘어날 필요도 있을 듯 싶어요. 이런 얘기는 예전부터 있어 왔는데 왜 변화가 없을까요?
아, 저한테 이유를 물어보시는…?
Q.아니요. 이유는 정답을 콕집어서 요구하는 것이잖아요. 정답이 정해진 문제는 아닌 것 같고요. 의견을 여쭤보는 겁니다.
네.(웃음) 여자농구 같은 경우 고등학교에서 바로 프로를 가잖아요. 그러다보니 사회를 나왔을 때 남자 선수들에 비해 학연, 지연, 인맥 이런 부분에서 많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남자선수들이 능력과 별개로 루트를 통해서만 지도자 쪽으로 간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아 주세요. 아무리 잠재력이 좋고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있어도 그것을 어필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말을 드리려는 겁니다.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능력에 더해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과 써먹을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잖아요. 여자선수들이 은퇴 후 대학을 가는 케이스가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로로 오는 남자선수들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러한 과정에서 무슨무슨 대학교 총동문회 그런 식으로 든든한 배경도 가지게 되고요. 여자대학은 그런 식으로 체계적인 뭔가가 만들어지지 않았죠. 그저 나만 열심히 공부해서 스팩을 쌓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다보니 남자선수와 여자선수는 스타트 지점부터 다른 것이 아닐까 싶어요.
Q.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해가 잘됩니다.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분명 그런 부분도 영향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들이 곧 바로 프로에 오잖아요. 농구만 하면서 성인으로서 성장해 가는거에요. 그러다 보니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도 사회 물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죠. 심지어 대학 생활조차 해보지 못했어요. 다른 경험이 아예 없으니 은퇴하고 나면 처음부터 시작해야 되는 경우도 많아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의지할 수 있는 큰 집합체 같은 것도 없고요. 그렇다고 무슨 무슨 기업의 어떤 관계자와 안다던가, 그런 사람을 알기 위해서 친분을 쌓아가는 과정? 그런 것도 직접은커녕 간접적으로 보기도 힘들고요. 어필도 하기 힘들고, 알아주는 사람도 적을 수밖에 없는지라 열정이 있더라도 이른바 맨땅에 헤딩하면서 들어가야만 하는 거죠.
Q.그래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있는 이들도 늘고있으니 앞으로는 더 좋아지지않을까 싶어요.
그럼요. 막 뭔가가 빠르게 변할 정도는 아니지만 꾸준히 인식의 변화는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BNK 박정은 감독 등 정말 잘해주고 있는 젊은 지도자들도 생겨나고 있고요. 먼저 간 여자선수 출신 지도자가 잘되거나 긍정적인 선례를 남겨야 후배들이 따라가는데 길이 넓혀질수 있단 말이에요. 과거에 감독, 코치 생활을 경험했던 여성 지도자의 경우는 선수 시절 커리어로 인해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본인은 의식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선수들에 대한 기준선이 처음부터 지나치게 높단 말이에요. 이른바 ‘나는 이렇게 해서 됐는데, 너는 왜 안되는 것인데’ 그런 생각으로 가르치게 되고요. 기본기가 떨어지거나 또래 중에 재능이 떨어지는 친구들은 따라갈 수 없는 교육법이죠. 그로인해 결과가 좋지 못한 경우도 많았고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나보다는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추는게 중요하고, 선수 시절 커리어가 꼭 지도자로서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죠. 완전 무시 할 수는 없겠지만 선수 시절은 선수 시절, 지도자는 지도자로, 별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선수로서는 대성하지 못했어도 지도자로서는 얼마든지 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다들 알게 됐죠. 무명선수 출신도 자신감을 가지고 지도자 준비를 하고, 스타 출신도 이전의 영광을 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더불어 지도자하면 프로 지도자가 가장 이름값도 높고 크게 성공한 느낌을 주지만 가르치는데 초점을 둔다면 무대가 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클럽이나 농구 교실까지…, 어디서든지 최선을 다하다 보면 뿌듯한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농구에 대한 접근이 더더 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Q.여자프로선수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박사 학위도 받는 등 공부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것 같아요.
공부에 대한 열정보다는 가르치는 것에 대한 욕심이 좀 많은 편이에요.(웃음) 원래부터 가르치는 것을 무지 좋아해요. 은퇴 후에 UC산타바바라 여자대학농구팀으로 지도자 연수를 간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에요.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설계해온 그림이에요. 저같이 농구를 좋아하고 꿈을 꾸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그런 생각요. 지도자 연수를 가려고 할 때도 좀 많이 힘들었어요. 정보를 얻기가 너무 어렵다는 부분이 컸어요. 지도자 연수가 남자선수들처럼 은퇴 출신 선수들의 코스 중 하나가 되면 상대적으로 수월했겠지만 여자선수들 같은 경우 그런 루트가 거의 없다 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막막했습니다. 그렇게 연수를 마치고 국내에 돌아오니까 모교에서 코치 제의가 와서 지도자 생활도 시작하게 됐고요. 그런 가운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심리였습니다.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사람은 로봇이 아니잖아요. 아무리 좋은 것도 배우는 사람과 잘 맞아야하고 무엇보다 받아들일 준비가 잘 되어있지 않으면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런 과정에서 아이들의 심리에 대해 잘 알아야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Q.그래서 농구는 멘탈스포츠라는 말이 나오나봐요?
맞습니다. 운동이라는 종목 자체가 몸을 움직이는 것이지만 결국은 그 몸을 만들고 움직이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거든요. 특히나 사춘기 아이들 같은 경우는 심리상태에 따라서 동기부여나 의지 같은 것이 크게 달라져요. 성인들보다 업다운도 심할 수밖에 없고요. 옆에서 유심히 지켜보니 이해가 되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해만 할 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심리에 대한 부분에 관심이 높아졌고 더불어 집에서도 ‘지도자는 성적에 따라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직업이니까 공부를 해서 안정성을 더 키우는게 좋다’고 추천해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이 박사학위를 따는데까지 이어지게 됐네요.
Q.공부는 엉덩이로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만큼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전까지 운동만 해온 입장에서 앉아서 하는 공부는 방식 면에서도 익숙해지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많이 다르죠. 하지만 운동은 하면 할수록 숨이 차는데 공부는 숨이 안 차더라고요.(웃음) 그냥 앉아만 있으면 되니까 계속 앉아있게 됐습니다. 운동같은 경우 어릴 때부터 지도자들에게 귀로 듣는 방식이 많잖아요. 반면 공부는 책으로 보고 이해해야 되니까 노하우가 부족해서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 방식을 잘 알고 있는 학생들에게 많이 물어보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공부를 늦게 시작했고 그로 인해 나이도 많았지만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것에 대해서 전혀 창피하다고 느끼지않았어요.
Q.2020년 7월 '나의 첫 번째 농구책 : 초심자를 위한 농구 가이드'라는 제목의 책을 냈어요. 책까지 내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앞서서 말한 근황 중에서 민간 스킬트레이너 자격증을 발급한다고 했잖아요. 그것 연수할 때 배우게 되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보시면 되요. 공 잡는 법, 드리블, 볼 핸들링, 슛폼 잡는법, 골밑슛 넣기 등…, 선수 출신들이라면 지겹도록 했던 것들이죠.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농구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해하기 편하도록 최대한 편하고 쉽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선생님들께서 학생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기 편한 기본 교재처럼 쓰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대부분의 선수 출신 지도자들은 본인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 위주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지도자마다 제각각 다 달라요. 이른바 기준이 없어요. 거기에 농구 책이라고 해봤자 대부분이 전술 책이더라고요. 선수가 아닌 이상 선생님이 일반 학생들에게 농구를 가르칠 때는 전술이 아닌 기본기부터 가르쳐야 하잖아요. 하지만 아쉽게도 거기에 맞는 적절한 책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미국에 유학갔던 시절에도 찾기 힘들었고…. 물론 제가 못 찾았을 수도 있겠지만요.(웃음) 그나마 생활체육이 발달하고 다양한 종류의 책이 쏟아져나오는 일본같은 경우 더러 그런 책이 있기는 했지만 펼쳐서 읽어보니 너무 내용이 번잡했어요. 한권에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넣어놓아서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자료는 많이 들어가 있지만 이해에 대한 배려가 조금 부족한 느낌? 답답한 마음에 직접 한번 책으로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도자 자격 연수 때 디테일하게 배우고 복습했던 부분도 많고 마침 코로나도 터져서 외부활동에도 제약이 생겼던 시점이었던지라 겸사겸사 실행하게 된거죠.
Q.농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도록 써진 것이군요?
네. 그런 마음으로 만들게되었습니다.
Q.글은 원래 좀 잘쓰는 편이었나요?
아니요. 전혀. 대학교 다닐 때도 글 쓰는게 너무 낯설고 힘들어서 논술학원을 좀 다녀봐야 되나 그런 생각도 하고 그랬어요. 어찌어찌해서 글을 좀 쓰고 나면 흰머리가 생겨나더라고요.(웃음) 글쓰는 것은 써도써도 어려운 것 같아요.
Q.‘우리가 농구에 미치는 이유’라는 책을 감수하기도 했어요.
맞아요. 진 루엔 양 작가가 쓴 책으로 원제는 'Dragon Hoops'에요. 정말 잘 쓴 책인데 운 좋게 읽어보고 감수까지 하는 영광까지 얻은바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챔피언십 우승을 목표로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뤘고 배경도 미국이지만 야오밍, 왕즈즈 등 중국 선수들이 나오는 점도 흥미롭더라고요. 아시안게임 때 만났던 선수들인지라 책에서 보니까 더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더불어 그걸로 인해 미국농구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한국농구도 누군가가 이렇게 심플하게 그래픽으로 그려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됐고 우리와 다른 농구환경을 느낄 수 있는 기회도 얻었고 이래저래 많이 배울 수 있어서 더욱 좋았어요. 일단 구성방식이 심플하고 재미있어서 한번 잡게 되면 책을 놓기가 어렵더라고요.
Q.책에 대해 남긴 서평을 보니까 농구가 선수들만의 것이 아닌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누는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물씬 느껴졌습니다.
그렇게되었으면 좋겠어요. 꼭 농구를 직접 하지않더라도 기사를 쓰시는 기자님, 경기장이나 텔레비전 등을 통해 경기를 보는 팬분들 모두 농구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다같은 농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같이 노력해서 만들어진게 오늘날의 농구이니까요. 그래야 농구도 더 저변확대가 이뤄지고 높아진 인기와 관심만큼 농구를 하려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고요. 인프라라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많은 이들이 쳐다보고 관심을 가져야 모든 면에서 성장을 기대할 수 있잖아요.
Q.혹시 2번째 농구책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않아도 제자나 팬분들 사이에서 ‘응용편’에 대한 부분도 다뤄주면 어떻겠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하지만 쉽지 않은게, 가이드라인을 잡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농구책이다 보니까 일반적인 도서와 다르게 사진이나 그림이 많이 들어가거든요. 단순히 끼워넣는 것도 아닌 보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컷한컷 신경을 써야하고요.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응용편같은 경우는 더 그렇겠죠. 그러다보니 과연 어디까지 오픈을 할 것인지. 오픈된 부분을 이해하기 쉽게 잘 담아낼 수 있을지, 주 독자층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아예 동영상으로 만들어야 되나 싶기도 하고…, 현재도 고민 중입니다.(웃음)
“달라진 세태만큼이나 농구를 가르치는 방식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Q.모든 스포츠는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하는게 일반적이잖아요. 현장인이 아니라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여자 농구같은 경우 퇴보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더라고요.
휴우…, 이 부분은 저도 기자님처럼 조심스럽기는 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바로는 전혀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어요. 얼마 전 모 대학교를 다녀왔는데 다른걸 떠나서 기본기 자체가 많이 부족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자 프로농구 등을 보면서도 기량이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를 종종 들은바 있어요. 아무래도 선수층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어요. 확실히 예전보다 농구하는 인원이 줄었거든요. 그만큼 좋은 선수가 나올 공산이나 서로간 경쟁률이 작아질 수밖에 없죠. 더불어 선수들의 기본기 부족도 문제점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예전에는 선수들 각 개인에 대한 부모님들의 개입이 거의 없었어요. 그냥 건강 챙겨주면서 계약 등 중요한 시기에만 참여하는 정도였죠. 요즘은 플레이에 대해서도 깊이 들어오십니다. 워낙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가 많이 공유되는 시기인지라 따로 스킬트레이닝 등을 시키기도 하고요. 본의 아니게 또 다른 코치 역할을 하시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요.
Q.지나친 관심이 독이 되는것일까요?
애매한 부분이네요. 물론 기본적으로 관심이 많은 것은 좋은거죠. 하지만 한창 기본기를 닦아야 할 때 스킬트레이닝 등이 남발이 되면 배우는 아이들 입장에서도 혼선을 겪을 수 있습니다. 시기에 맞게 중심을 잡으면서 성장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더불어 발전하지 못한 기존 지도자들도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고 봐요. 예전 우리들이 농구 배울 때는 공부도 거의 하지 않고 온종일 농구만 해댔어요. 훈련의 강도도 셌죠. 그러다 보니 강제적으로 성장하거나 팀플레이에 특화되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어요. 제도적으로도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고 아이들도 그 시절처럼 강압적인 훈련방식을 강요받으면 견디기 쉽지 않을거에요. 상당수 지도자들은 가르칠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합니다. 예전 저희 세대가 농구를 배웠을 때처럼 성장하는데는 많은 훈련시간이 필수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Q.내가 배운대로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군요?
아무래도요. 큰 틀은 그렇겠죠. 물론 그분들의 말도 상당수는 맞습니다. 세상 모든 일은 많은 시간을 들이는 만큼 잘할 가능성이 높아지겠죠. 하지만 우리는 모든 면에서 많은 변화가 온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미국 등 다른 국가들이 그렇듯 학생들도 오로지 농구만 하는 것이 아닌 공부를 병행해서 하는게 맞다고 봐요. 모든 학생이 농구선수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닌 이상 또 다른 인생의 방향도 준비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줄어든 시간 속에서 효율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시간의 총량이 아닌 질에 집중할 때죠. 익숙한 방법은 아닐겁니다. 그만큼 다방면으로 공부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제 말 또한 꼭 정답은 아니겠지만 이것은 저의 개인 인터뷰니까 개인 의견과 소신 위주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웃음)
“농구는 저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튼튼한 끈같은 존재입니다”
Q.농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것인가요?
그 시절에는 농구부가 있는 학교에서 본인들 학교는 물론 타학교까지 돌아다니면서 키 큰 아이들을 찾아다녔어요. 저도 농구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평범하거나 작은 편이었지만 일반 학생들 중에서는 키가 컸어요. 그러다 보니 해당 학교 관계자분들이 저와 친구들을 보고는 언제 한번 농구 하러 놀러 오라고 하더라고요.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던 저로서는 당장이라도 하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치솟았어요. 하지만 부모님의 생각은 달랐나 봐요. 집에 가서 말씀드렸더니 엄마가 ‘여자아이가 무슨 농구냐’면서 반대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농구가 하고 싶었어요. 특히 해당 학교로 놀러가서 농구를 직접 해보니 너무 재미있는 것이에요. 그 뒤로 계속 농구가 하고 싶으니 전학시켜달라고 지속적으로 졸랐어요. 해당 학교로 수시로 가서 농구에 참여했고요. 부모님께서도 쭉 지켜보셨나 봐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한결같은 것을 보고는 그제야 허락을 해주셨어요.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때에요.
Q.선수시절 어떤 플레이스타일의 선수였는지 궁금합니다.
시기별로 달랐던 것 같아요. 어느정도 기량이 무르익은 고등학교 때는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였어요. 이것저것 다했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 가드로 시작해 키가 크면서 포워드를 맡게 되었고 이것저것 고르게 배운 것이 도움이 된 듯 싶어요. 주변을 봐도 실업, 프로선수로 뛴 선수의 상당수는 저와 비슷한 케이스가 많더라고요. 적어도 선수로 스카웃되거나 지명받을 정도면 학창시절에는 해당 학교에서 에이스 역할을 했던 케이스가 많거든요. 반면 프로에 가게되면 조금 상황이 달라져요. 다들 에이스 출신인지라 거기서 다시 역할 정리를 해야되요. 그러다보니 학창시절에는 공격수를 했어도 팀 상황에 맞게 수비나 궂은일로 스타일을 바꾸는 선수가 있고 패스에 더 신경 쓰는 선수도 생겨나고 그래요. 저같은 경우는 초창기 시절 기회를 많이 받다가 이적생들로 인해 팀뎁스가 갑자기 두터워지면서 변화가 오기도 했어요.
Q.팀뎁스가 갑자기 두터워졌다고요? 파격적인 트레이드가 오갔나요?
아니요. IMF 시절에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운영을 중단한 팀들이 생겨났잖아요. 그러다 보니 해당팀에서 에이스나 핵심선수로 뛰던 이름값 높은 언니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남아있던 팀으로 간거에요. 입지가 애매한 선수들은 그 와중에 은퇴하기도 했고 결국 경쟁력있는 선수들이 주로 남아서 온 것이니까 받아준 팀에서도 변화가 클 수밖에 없었죠.
Q.그래도 꾸준하게 선수생활을 오래가져갔어요.
그렇죠. 실업시절부터 프로농구까지 나름대로 할때까지는 한 것 같아요. 사실 우리은행 시절에 농구를 그만두려고 한 적이 있어요. 당시 P감독님이 계셨는데 솔직히 말해서 잘 안 맞았어요. 감독님과 잘 맞는 선수를 찾는게 더 어려웠을 정도지만 저는 특히나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좋아하던 농구가 싫고 은퇴해야겠다는 마음까지 먹었던 시기였어요. 다행히 트레이드가 되었고 KB스타즈에서 남은 시절을 잘 뛸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때 우리은행에서 은퇴했으면 미련? 그런게 좀 남았을 듯 싶어요.
Q.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될까요?
특별한 변화가 없는한 저는 늘 비슷할 것 같아요. 멘탈 트레이너, 클럽운영 등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좋아하는 농구와 함께 사는 것이죠. 멘탈 트레이너같은 경우 농구만 다루지는 않지만 그래도 농구공을 잡거나 농구를 생각할 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보면 저도 천상 농구인 같아요. 다른 쪽에서 힘든 일이 생겨도 농구를 통해 심리적 위안을 받거나 스트레스를 풀게 되는 듯 싶더라고요.
Q.마지막 질문입니다. 농구인 양희연에게 농구란 무엇일까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기별로 다른데요. 은퇴 후로만 본다면 저에게 농구는 소통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농구로 인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점이 정말 기뻐요. 비단 선수나 현장관계자가 아니더라도 순수하게 농구 그 자체를 좋아하는 분들이 정말 많으세요. 덕분에 저는 농구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좋은 인연을 계속해서 쌓아가고 있어요. 예를 들어 보드게임방에 사람들이 모여있다고 봐요. 서로 대화를 통해서 친해질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함께 웃고 공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보드게임을 같이 하는 것이겠죠. 저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농구가 바로 그러한 존재입니다. 경기, 이야기, 상담…, 어떤 것이든지 좋아요. 여러분들도 저랑 재미있는 농구 한번 나누실까요?(웃음)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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