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대법원장의 품격과 소명[뉴스와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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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8일 취임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정통 TK(대구·경북) 보수'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조 대법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사법부 독립론자로서의 일관된 견해를 밝히며 선입견을 극복했다.
재판 지연 문제만 해결하더라도 역사는 다른 사람의 임기 절반 남짓만 수행하면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낸 대법원장으로 조희대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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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8일 취임했다. 같은 날 국회 임명동의안 투표에서 264표의 찬성을 얻었고, 찬성률은 90.4%에 이르렀다. 찬성투표 수만 보자면 1988년 이일규 대법원장 이후로 최다였고, 사사건건 정부에 태클을 거는 거대 야당의 존재를 감안하면 찬성률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이로써 조 대법원장은 안정적으로 사법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정통 TK(대구·경북) 보수’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조 대법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사법부 독립론자로서의 일관된 견해를 밝히며 선입견을 극복했다. 행정부 권력과 유착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압수수색 사전 심문과 조건부 구속영장 제도 도입 검토다. 검찰 수사에 상당한 제약을 가할 수 있어 현 정부가 불편해할 수도 있지만, 인사청문회에서 조 대법원장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이틀간 끊임 없는 유도 신문에도 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킨 조 대법원장에게 진성준 민주당 의원도 “마음에 큰 울림과 감동을 주었다”며 태세 전환을 시도했다.
온갖 삐딱한 시선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 대법원장은 30여 년의 법관 생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로 2008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노숙 여성 상해치사죄로 기소된 10대 청소년 4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건을 꼽았다. 1심 유죄였던 이 사건에서 항소심을 맡은 조 대법원장은 “잘못된 증언을 하면 어린아이들이 억울하게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에 마음이 바뀐 증인은 “검사가 벌금형으로 풀어주겠다고 해서 거짓 증언을 했다”고 털어놨다. 조 대법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최고 사법 기관이 어린 학생을 회유하는 방식으로 자백을 받아낸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수사 방식에 대해 사법부의 견제가 필요하다는 소신의 뿌리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실제 대법관 시절에도 조 대법원장은 압수수색 피의자 참여권을 보장하는 판결을 내기도 했다.
이제 조 대법원장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는 재판 지연의 해소다. 이를 해내지 못하면 사법부 신뢰 회복도 없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조 대법원장도 재판 지연 해소를 가장 먼저 챙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앞서 법원 행정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생각해 내지 못했던 장기 미제 사건 법원장 재판 전담제와 같은 획기적 대책도 벌써 내놓고 있다. 재판 지연 문제만 해결하더라도 역사는 다른 사람의 임기 절반 남짓만 수행하면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낸 대법원장으로 조희대를 기억할 것이다. 조 대법원장은 정년(70세) 규정 탓에 임기 6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3년 6개월여만 재임할 수 있다.
대법원장의 자격을 증명한 조 대법원장이 앞으로 보여줘야 할 것은 추진력이다. 그에 대해 의문을 갖는 시각은 대법관 재임 시절에 존재감이 약했고, 사법부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확고한 철학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원칙을 확실히 지키면서, 때로는 협조도 얻어내면서 임기 동안 주어진 소명을 완수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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