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완화 통화정책’ 출구전략...‘조용한 전환’에 초점
인플레 안정화 등 완화적 통화정책 목표 최우선
성장 부진 신호에 갑작스런 긴축 전환도 부담
일본은행(BOJ)이 조만간 초완화 통화정책에 대한 출구전략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고조되고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될 지만 조금 다를 뿐 시장에서는 마이너스 금리가 조만간 폐지될 것이라는 컨센서스가 형성되고 있다. 다만 과격한 금리 인상으로 시장과 경제에 충격을 가하기 보다는 ‘조용한 전환’에 초점을 맞출 것이란 관측이 크다. 임금 상승을 동반한 지속적인 인플레이션과 경제 성장이라는 현재의 완화적 통화정책 목표를 최우선으로 달성하는데 방점을 둘 것이라는 전망이다.
히미노 료조 일본은행 부총재는 지난주 일본 오이타현 내의 기업 지도자들과의 회담 자리에서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을 이끄는 선순환이 가계와 기업에 이어지고 있다”며 “출구전략이 제대로 이뤄지면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BOJ 내에서도 통화정책을 바꿀 환경이 조성됐다는 확신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시장에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폐기 시사는 장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초완화정책에 마침표를 찍는 결정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일본은행은 1990년대 불황이 시작되자 2016년 1월부터 지급준비금(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예치하도록 한 자금) 이자율을 연 -0.1%로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10년 만기 일본 국채 금리(장기금리)가 상한선을 넘어가면 이를 무제한 매입하는 수익률곡선 통제 정책(YCC)도 시행하고 있다. 이는 각각 단기와 장기 금리를 조작해 시장을 움직이는 방식이다.
마이너스 상태인 단기금리 인상까지 단행하면 일본의 초완화정책은 사실상 정상화로 돌아서게 된다. 일본은행이 초완화정책을 전환하려는 것은 오랜 경기 침체가 마무리되고 물가와 임금이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10월까지 19개월 연속 일본은행 목표치인 2% 이상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기록하며 장기간 자국 경제를 짓누르던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고 있다.
다만 최근 발표된 일본 경제 지표를 보면 30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한 물가 상승률에 내수 수요가 꺾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행으로선 소비심리가 크게 꺾인 상황에서 급격히 긴축 기조로 선회하기엔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
히미노 부총재도 초완화 출구전략의 필요성을 시사하면서도 “일본은행은 안정적이면서 지속적인 물가 목표 달성이 가시화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완화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일본 내무부에 따르면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7% 역성장하며 예상치인 -0.1% 감소를 크게 하회했다. 실질 가계 지출 지수는 올해 내내 기준선(100)을 밑돌았다. 일본 정부가 저소득층 에너지 비용 보조금 등 각종 고물가 대응 지원금을 지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 상승에 대한 일본 가계의 저항이 현실화 된 셈이다.
소비가 둔화하자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지난달 말 부랴부랴 고물가 대책 관련 경비 2조7363억엔(24조원)을 포함한 13조1992억엔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에 일본 자본시장 내에선 일본은행이 적어도 내년 4월까지는 긴축 전환 보다는 전통적인 통화정책 체계로의 회귀 등 정상화 과정을 밟는 이른바 ‘조용한 전환’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정책 정상화의 시점을 4월로 잡는 것은 통상 3월에 임금 인상을 위한 춘투(春鬪)가 몰려있기 때문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역시 2% 물가 목표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달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내년 임금 인상 기조와 에너지 가격 등 비용 상승의 가격 전가 현상이 확인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블룸버그는 일본은행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은행은 견고한 임금 상승을 확인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기다리는데 필요한 잠재적 비용이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다만 엔화의 움직임은 이번 회의에서 나올 세부 사항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이 같은 일본은행의 ‘조용한 전환’ 기조가 가져온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내년 미국의 기준 금리 인하가 본격화될 경우 미·일 기준 금리 차는 축소되고, 결과 엔화 강세가 전개된다면 일본의 수출 실적이 꺾일 수 있다. 일본 국채 금리의 급격한 상승 등 변동성 확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시장 일각에서는 일본은행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가 시작되기 전에 정책 수정에 나서야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아다치 미사미치 UBS 재팬 수석경제학자는 “일본이 공격적으로 금리 인하를 시작하면 엔화 상승 압력이 가중되며 일본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이 경우 일본은행이 정책 전환에 나서기가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손미정·원호연 기자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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