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나라를 왜 가요? 낙동강 오리알 될게 뻔한데”…잊혀진 차이나 드림 [World & Now]

손일선 특파원(isson@mk.co.kr) 2023. 12. 1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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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한중 수교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한중 수교 소식을 전해 들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중국 시장을 개척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는 "중국은 내 인생 30년을 바친 곳"이라며 "앞으로도 중국에 남아 꿈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 중국 교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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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대륙서 새로운 기회 찾아
중국으로 향한 교민들의 꿈
한중관계 악화·반중정서에 위기
韓 성장 이면엔 그들의 땀과 노력
아메리칸드림처럼 중국몽도 절실
정부는 中 교민들 아픔 보듬어야

중국에서 자동차 부품사업을 하고 있는 이충구 KFTC베이징 사장(71).

1992년 한중 수교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한중 수교 소식을 전해 들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중국 시장을 개척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대우실업 시장개척부에 근무하고 있던 그는 바로 다음날 베이징 지사로 발령이 났다.

이후 대우의 ‘세계경영’은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맞물려 시너지를 냈다. 사운(社運)과 국운(國運)이 만난 것이다. 중국은 넓었고 그도 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1999년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결국 대우를 떠났다. 하지만 중국을 떠나지는 않았다. 2003년 KFTC베이징 창립멤버로 참여해 중국에 터를 잡았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을 떠났지만 이 사장은 여전히 베이징을 지키고 있다. 그는 “중국은 내 인생 30년을 바친 곳”이라며 “앞으로도 중국에 남아 꿈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당시 썰렁했던 베이징 한인타운 왕징의 모습.
한중 수교 이후 많은 한국인들에게 중국은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됐다. “중국에서 한 명에게 젓가락 하나씩만 팔아도 13억개를 팔 수 있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며 너도나도 ‘기회의 땅’ 중국으로 향했다.

이들은 각자 중국몽(中國夢)을 품에 안고 중국을 찾았다. 시진핑 주석이 이야기하는 정치적 구호 이야기가 아니다. 타국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며 흰 도화지에 스스로 그려가고픈 그들의 인생살이다.

현지에 뿌리를 내린 교민들뿐 아니라 기업 주재원들도 다양한 중국몽을 쫓는다.

중국은 한국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한 국가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총 2만8583개사(누적 기준)에 달한다.

중국행을 명받은 많은 주재원들은 짧게는3년, 길게는 7~8년 중국에서 근무하면서 중국을 발판으로 한 걸음 더 성장하는 자신을 꿈꾼다.

최근에는 중국 근무 기피 현상이 확산하면서 중국 주재원 근무를 재수, 삼수하는 인사들도 크게 늘었다. 새로운 중국 근무 희망자가 없다 보니 ‘중국통’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과거 유경험자가 또다시 선택(?)을 받는 구조다. 그만큼 중국살이는 더 길어진다.

실제 중국 법인장들의 경우 중국 근무 연수가 두 자릿수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삼성 반도체 최고 영업사원으로 꼽혔던 양걸 중국삼성 사장은 총 34년 삼성 생활 중 10년을 중국에서 근무했다.

중국한국상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윤도선 CJ차이나 대표는 한국 근무보다 중국 근무 기간이 더 길고 포스코차이나를 이끌고 있는 송용삼 대표는 이번이 4번째 중국 근무다.

현지에 터를 잡거나 주재원으로 근무해온 중국 교민들의 ‘중국몽’은 한중관계의 단단한 초석이 됐다.

과거 한국경제가 중국 경제성장의 낙수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다. 한중 수교 이후 대중 수출액이 160배 증가한 것도 이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하지만 요즘 중국 교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

코로나19 당시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왕징 지역의 한 아파트 입구가 봉쇄된 모습
악화일로의 한중관계와 극심한 반중정서가 그들을 짓누른다. 세계 최대 시장을 바라보고 중국에 왔지만 혹자는 공산당과 가까운 거 아니냐며 색안경을 낀다.

한때 중국에서 제2의 창업을 하겠다며 우르르 중국으로 몰려갔던 기업들은 이제 중국과 거리두기에 나섰다. 본사의 관심과 지원이 끊기자 중국 주재원들은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

내년에 한중 정상회담 등 고위급 대회가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 대표단이 중국 교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아픔을 보듬었으면 한다.

한중관계와 한미관계가 동일선상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미국 교민들의 아메리칸드림처럼 중국 교민들의 중국몽도 소중하고 절실하다.

베이징 손일선 특파원 iss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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