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혈액매매 에이즈 감염’ 알리다 탄압…가오야오제 미국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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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국 허난성의 에이즈 실태를 알리고 퇴치운동을 벌인 의사 가오야오제가 10일 미국 자택에서 숨졌다.
가오는 이즈음부터 수년 동안 허난성의 마을 100여 곳을 방문해 에이즈 감염자들을 면담하고 치료했다.
가오에 앞서 1995년 허난성의 에이즈 실태를 최초로 확인하고 당국에 보고한 감염질환 연구자 왕슈핑 역시 이후 직장을 잃고 고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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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자 면담·예방운동 펼치다 탄압당해 미국 망명
1990년대 중국 허난성의 에이즈 실태를 알리고 퇴치운동을 벌인 의사 가오야오제가 10일 미국 자택에서 숨졌다. 향년 96.
1927년 산둥성에서 태어난 가오는 1954년 허난대 의대를 졸업한 뒤 정저우의 허난중의학원에서 교수를 지냈다. 1990년 은퇴한 뒤 평온한 삶을 살던 그의 인생이 뒤바뀐 것은 69살이었던 1996년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면서였다. 허난성 보건 당국의 부실한 관리 아래 진행된 혈액 매매로 가난한 농촌 지역에서 대규모 에이즈 감염이 발생한 것이었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낙후된 허난성은 주민들의 피를 사들여 제약회사에 파는 채혈센터를 운영했다. 비위생적인 방식으로 진행된 채혈 과정에서 에이즈 감염이 확산했다. 1995년 에이즈 발생 사실이 처음 확인됐지만 당국은 초반에 이를 묵살하다가 이듬해 4월 채혈센터를 잠정 폐쇄하기 시작했다.
가오는 이즈음부터 수년 동안 허난성의 마을 100여 곳을 방문해 에이즈 감염자들을 면담하고 치료했다. 그가 힘을 쏟은 분야는 예방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활동으로 받은 상금 등을 대부분 자료 제작에 썼고 수십 만부를 제작해 허난성 마을에 배포했다.
가오의 활동이 불편했던 중국 당국은 그가 사회 불안을 조성한다고 보고 탄압을 시작했다. 2007년에는 방미 의사를 굽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금 조처를 하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2009년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미국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당국은 생활의 모든 것을 제한했다. 전화와 컴퓨터도 감시당했고 집 앞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됐다. 시골로 갈 수도, 기자를 만날 수도, 외국에 상을 받으러 나갈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가오에 앞서 1995년 허난성의 에이즈 실태를 최초로 확인하고 당국에 보고한 감염질환 연구자 왕슈핑 역시 이후 직장을 잃고 고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해야 했다. 왕은 2019년 9월21일 59살로 사망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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