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도 ELS에 테마형 ETF 단타까지"…은행인가 증권사인가
고객 성향 아닌 'PB 성향' 따라 달라지는 상품 권유
[서울=뉴시스]우연수 기자 = 은행들이 무더기 판매한 홍콩H지수 편입 주가연계증권(ELS)이 시한폭탄으로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최근 몇년 새 판매가 부쩍 늘고 있는 테마형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2021년부터 2차전지, 메타버스 등 다양한 업종 테마가 뜨면서 관련 주식을 담은 ETF도 종류가 많아졌는데 노후자금을 맡기러 온 고객에게까지 "ETF는 만기가 없는 안전 상품"이라며 판매하는 사례들이 드러나고 있어서다.
"2차전지·메타버스, 만기 없이 유망 업종에 투자"
ETF는 물론 주식도 한번 안해본 A씨는 직원의 매수·매도 타이밍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직원은 매수를 권유할 때 전화로 은행에 방문하도록 하고, 매도할 땐 전화로 은행 앱을 통해 팔도록 했다.
3%만 수익이 나면 기계적으로 판다는 게 직원의 원칙이었다. 심지어 같은 ETF도 3% 이익만 넘어가면 일단 팔고 남은 돈은 전액 다시 투자하도록 했다.
하지만 해당 테마들의 전성기가 지나가면서 A씨는 2차전지, 메타버스, 바이오·헬스케어 ETF들에서 모두 40% 내외의 손실을 보고 있다. 은행은 잦은 매매 때마다 선취 수수료 1%를 챙겼다.
A씨뿐 아니라 같은 지점에서만 ETF로 손실을 본 사람들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은행 VIP 고객 B씨는 같은 지점에서 2차전지, 반도체 등 특정 업종 ETF에 수억원씩 넣어 손실을 봤다. 최근 2~3년 간 변동성이 컸던 상품들이다.
오랜 기간 공격형 투자를 해온 한 금융투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국내 주식으로 대부분 이뤄진 테마형 ETF는 안정적으로 은행을 찾는 고객들이 할 만한 상품으로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며 "주식 테마형은 업황에 따라 짧은 주기로 가격이 급변하기 때문에 이 같은 트렌드를 잘 알고 직접 주식앱을 보며 스스로 판단해 대응하는게 중요한 상품"이라고 전했다.
'신탁'이란 껍데기 속 랜덤박스…과감해지는 은행의 고난도 상품 판매
법규상 은행은 ETF 중개를 할 수 없지만, 신탁을 통해선 금융투자상품을 담을 수 있다. ELS도 원래는 증권사만 팔 수 있지만 주가연계신탁(ELT)이나 주가연계펀드(ELF) 형태로 판매하는 것이다. 투자일임업, 투자매매업, 투자중개업 라이선스는 없지만 고객이 직접 투자 대상을 지정하고 운용 방법을 지시하는 '신탁업'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과 달리 고객이 직접 투자를 지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게 업계와 투자자들의 설명이다. 노후자금, 전세자금 등을 굴리기 위해 증권사가 아니라 은행을 찾은 투자자들 중 운용을 지시할 만큼의 금융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은행 창구에서 만들어놓은 상품 포트폴리오 전략들을 보고 선택하거나, PB의 권유에 따라 운용하게 된다.
ETF가 은행에서 가입하면 크게 불리한 상품임에도 잘 팔리는 이유도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ETF는 증권사 주식 앱을 다운받아 거래하면 거래 수수료가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은행을 찾으면 선취 수수료가 1%나 된다. 은행에서 가입하면 '실시간 거래'라는 ETF의 가장 큰 강점도 사라져 버린다. ETF가 뭔지 아는 고객이라면 증권사로 가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잘 모르기 때문에 PB의 말에 의존해 "은행에서 파는 상품은 다를 것"이라 생각하고 가입하는 수순이다.
해외금리형 파생결합펀드(DLF), 라임 등 사모펀드 사태가 터진 뒤 판매 절차가 까다롭게 적용되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의 기준이 2021년 정해졌지만 ETF는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TF를 담은 펀드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으로 분류되지만 ETF는 레버리지형(추종 지수의 2배로 수익률을 내는) 등 특이 상품을 제외하곤 고난도 상품에 들지 않는다.
일반 시중은행의 특정금전신탁 자산은 2021년 87조2654억원, 지난해 99조302억원, 올해 6월 말 117조7741억원까지 늘었다.
"애초에 팔지 말았어야지"vs"고객 수익률 위해 PB 할 일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들도 은행의 특정금전신탁에 대해서는 고민이 깊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에 터진 홍콩H지수 ELS도 ELS 자체가 문제이기보단 ELS, ETF 등 금융투자상품을 신탁이라는 껍데기에 안전해보이는 것처럼 포장해 파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도 이 같은 문제의식은 있지만 개별 프라이빗뱅커(PB)들의 재량에 맡기고 있는 상황이다. 보수적인 직원은 위험 상품을 팔지 않고, 적극적인 직원은 직접 주식 공부까지 해 고객 관리를 하는 식이다.
문제는 고객별 성향에 따라 갈리기보단 직원 성향에 따라 같은 직원의 고객들 가입 상품이 성향과 관계없이 비슷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A씨 역시 코로나 이전에 담당해주던 직원은 보수적으로 운용해 홍콩H지수가 들어간 ELS는 전부 빼길 권유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직원이 바뀌면서 홍콩H지수 ELS를 줄서서까지 가입하게 됐고, 2차전지와 메타버스가 대세라는 이야기에 주식이나 펀드라는 생각도 못한채 믿고 가입했다는 것이다.
해당 은행 관계자는 "우리는 증권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공격적인 투자 지침을 전사적으로 장려하진 않는다"며 "PB마다 자기 특기가 있다보니 보수적으로만 하는 사람도 있고, 고객 자산을 더 불리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주식 공부를 해 재테크를 돕는 PB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oincidenc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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