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호 회장 ‘오너 리스크’에 발목 잡힌 한일시멘트그룹
(시사저널=송응철 기자)
최근 국세청 세무조사로 허기호 한일홀딩스 회장의 오너 리스크가 부상하고 있다. 조사 배경으로 허 회장의 시세조종 혐의와 일감 몰아주기 의혹 등이 국세청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의 총부리가 모두 오너 일가의 사익편취 논란에 정조준돼 있는 셈이다.
그룹 지배력 강화하려 시세조종한 의혹
국세청은 최근 한일홀딩스 등 한일시멘트그룹 복수의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조사가 특별 세무조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나섰기 때문이다. 기업의 비자금 조성이나 횡령 등 비리 의혹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조사4국은 '재계 저승사자'로 불린다. 허 회장이 시세조종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국세청이 한일시멘트 오너 일가의 사익편취 논란에 대한 본격조사에 나섰다는 평이 나온다.
한일시멘트그룹은 2018년 지주사 체제 전환 작업에 착수했다. 허 회장이 그룹 총수에 오른 지 2년 만이다. 그해 7월 한일시멘트그룹은 핵심 회사인 한일시멘트를 존속회사인 한일홀딩스와 신설회사인 한일시멘트로 인적분할했다. 이후 한일시멘트는 자사주 공개매수 신청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허 회장 일가의 보유 지분 전량을 인수하고 대신 지주사인 한일홀딩스 주식을 돌려줬다. 당시 허 회장과 부친인 허정섭 한일시멘트 명예회장이 보유 중이던 한일시멘트 지분은 각각 10.11%와 6.63%였다.
또 2020년에는 한일시멘트에 한일현대시멘트(옛 현대시멘트) 모회사인 HLK홀딩스를 1대 0.502 비율로 흡수 합병시켰다. '한일홀딩스→한일시멘트→한일현대시멘트'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이루기 위함이라는 명목이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허 회장과 부친인 허정섭 명예회장의 한일홀딩스 지분율은 각각 31.23%와 16.33%로 증가했다. 별도의 투자 없이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3배 가까이 끌어올린 셈이다.
그러나 축배를 들 새도 없이 허 회장은 암초를 맞닥뜨리게 됐다. 2020년 7월 시세조종 혐의로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의 수사 대상이 된 것이다. 이 사건은 금감원 특사경 출범 이래 증권사가 아닌 일반기업을 대상으로 강제수사에 나선 첫 사례로 기록됐다. 2021년 4월 수사를 마무리한 금감원 특사경은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했고, 검찰은 같은 해 11월 허 회장 등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2018년 7월 한일홀딩스가 현물출자 방식으로 신주를 발행할 당시 허 회장이 시세조종을 목적으로 주식을 매입했다고 판단했다. 또 허 회장이 HLK홀딩스와의 합병을 앞두고 한일시멘트 주가를 의도적으로 눌렀다고 봤다. 한일시멘트의 기업 가치가 낮을수록 합병 이후 더 많은 한일홀딩스 지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허 회장은 주식 보고 의무 위반 혐의에 대해서만 인정할 뿐 시세조종 등 나머지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허 회장 측 법률대리인은 재판부에 "주식 매수 사실과 매입량은 대부분 맞지만 시세조종을 목적으로 주식을 사들인 건 아니다"며 "통상적인 거래 패턴과 다르지 않았고 매수한 주식은 나중에 손해를 보고 팔았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국세청이 한일시멘트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세무조사 대상에 한일L&C(옛 한일건재)와 한일인터내셔널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 기업은 한일시멘트그룹 계열사 중 내부거래 비중과 규모가 높은 계열사로 지목받아왔다.
'간접 지배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로 논란
산업재 무역업체인 한일인터내셔널에는 2018년 설립 직후부터 그룹 차원의 일감이 집중됐다. 이 회사는 2019년 전체 매출 748억원 중 18.99%에 해당하는 142억원을 그룹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올렸다. 이듬해인 2020년에는 내부거래 규모가 162억원으로 늘어났지만 전체 매출이 1178억원으로 크게 증가하면서 내부거래율은 13.79%로 감소했다. 한일인터내셔널의 내부거래 규모와 비중은 2021년부터 다시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해 내부거래 규모는 995억원(44.27%)이었고, 지난해에는 2459억원(54.91%)까지 늘어났다. 4년 사이 계열사에 대한 매출 의존 규모가 17배 이상 커진 셈이다.
건설자재 운송 및 판매업체인 한일L&C도 매년 매출의 상당 부분을 그룹 계열사들이 책임져왔다. 2017년 전체 매출 594억원 중 69.07%에 해당하는 410억원을 내부거래로 채웠다. 다만 이후 한일L&C의 내부거래 비중은 하락세를 보였다. 매년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비슷한 규모의 매출을 올렸지만, 외부 매출 비중을 점차 높여가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희석된 것이다. 실제 한일L&C의 내부거래 비중은 2018년 62.31%(684억원-426억원)에서 2019년 63.34%(615억원-390억원)로 정점을 찍은 후, 2020년 52.04%(660억원-343억원), 2021년 43.84%(783억원-343억원), 지난해 41.68%(954억원-398억원) 등으로 낮아졌다.
한일L&C와 한일인터내셔널은 모두 한일홀딩스의 100% 자회사다. 한일홀딩스 지분 64.39%를 보유한 허 회장 일가의 간접 지배 아래에 있는 셈이다. 한일L&C와 한일인터내셔널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수익이 한일홀딩스를 거쳐 오너 일가에게 전달되는 구조다.
한일홀딩스는 지난해 매출 400억원 가운데 95.54% 해당하는 382억원을 내부거래로 채웠다. 이 중 261억원은 한일L&C와 한일인터내셔널 등 계열사들로부터 거둬들인 배당수익이었다. 한일홀딩스는 계열사들을 통해 얻은 이익을 바탕으로 매년 고배당을 실시했다. 특히 2018년 지배구조 개편 이후 배당 규모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한일홀딩스는 지난해에도 246억6500만원을 배당했다. 지분율을 감안하면 약 158억원이 허 회장 일가의 몫으로 돌아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일L&C와 한일인터내셔널은 지배구조 개편 이후부터 허 회장 일가의 자금 창구 역할을 했다. 그 이전까지는 전기시설재 제조업체인 중원전기(현 중원)와 부동산 매매 및 임대업체인 세원개발이 오너 일가의 '곳간'이었다. 허 회장(38.09%) 등 오너 일가의 사실상 개인회사이던 중원전기는 매년 100억원 규모의 매출을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허동섭 명예회장의 장녀 서연씨와 차녀 서희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세원개발도 매년 매출의 대부분을 그룹 계열사와의 거래에 의존했다.
그러나 허 회장은 2018년 중원전기 지분을 감사보고서상 기타 특수관계자로 분류된 금풍과 유성관광개발에 매각하며 내부거래를 청산했다. 세원개발도 2019년을 기점으로 한일시멘트그룹 계열사와의 거래를 모두 정리했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오너 일가의 사익편취 논란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점을 고려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거래처도 조사 대상…부당 거래 의혹도
일각에서는 국세청이 거래처와의 부당 거래 정황을 파악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일시멘트 거래처인 A사와 B사도 세무조사 대상에 포함됐다는 이유에서다. 이들 기업은 모두 한일시멘트그룹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유통·도소매 업체인 A사는 2017년 보유 중이던 한일시멘트 주식 3만7727주를 시간외거래로 허 회장에게 매각했고, 화물차 운송주선 업체인 B사는 장아무개 한일시멘트 감사가 대표이사로 재직했던 회사다.
허 회장의 오너 리스크에 이번 세무조사까지 더해지면서 한일시멘트는 궁지에 몰렸다. 악화한 업황에 대응하기도 벅찬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시멘트 업계는 지난해부터 원가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시멘트 업계는 활로를 시멘트 값 인상에서 찾았다. 지난해와 올해 4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그 결과 단기적인 실적 개선은 이뤘지만 향후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정부의 탄소중립 기조에 발맞춰 친환경 설비 투자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한일시멘트도 2025년까지 친환경 설비에 271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멘트 제조원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전기료와 유연탄 가격 상승 등도 걸림돌이다. 결국 한일시멘트는 생존 전략 모색과 동시에 오너 리스크를 해소해야 하는 과제까지 떠안게 된 셈이다. 한일시멘트는 이번 세무조사와 관련해 "세무조사 배경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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