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로애락 교차하는 4대 그룹 총수들의 연말 풍경

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2023. 12. 1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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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SK, LG 등 4대그룹 회장 중 3명이 재판으로 고전
‘대영제국훈장’ 받은 정의선 회장, 지배구조 개편 더뎌 고민

(시사저널=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치열했던 '엑스포 유치전'을 끝마친 4대 그룹 총수들이 사실상 '연말 모드'에 돌입했다. 하지만 각자 처한 그룹 및 개인의 상황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특히 총수 4명 중 3명은 내년까지 재판을 줄줄이 앞둔 상황에 올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대표적이다. 지난 몇 년간 구속 및 '복권 없는 가석방'에 발이 묶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올해 모처럼 법적 굴레 없이 한 해를 보내는 듯했다. 적극적으로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경영활동에도 제약받지 않았지만, 또 다른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1월26일 1심 선고 결과에 삼성 촉각 곤두세워

이 회장은 삼성의 부당 합병 의혹과 관련해 2020년 기소돼 지금까지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부당 합병 및 회계 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내년 1월26일이 1심 선고일인데 결과에 따라 내년에도 사법 리스크가 계속될 수 있는 상황이다.

재계에선 삼성전자가 고전하고 있는 현 상황이 승계 후 사실상 계속 이어져온 이 회장의 법적 리스크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올 3분기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은 2조433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7.57%나 감소했다. 그나마 올 들어 첫 조 단위 영업이익을 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계속 감옥을 오가고 재판을 받는 동안 중요한 의사결정들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다 보니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 등과 관련해 SK하이닉스가 더 부각되는 상황까지 왔다"고 말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노소영 관장과 이혼소송을 이어가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됐다. 최 회장은 지난 11월 연이어 열린 이혼소송 관련 재판 과정에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날 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11월9일 이혼소송 항소심 첫 변론준비기일에 직접 법정에 출석한 노 관장은 "30년 결혼생활이 이렇게 막을 내려 참담하다"며 "저희 사건으로 인해 가정의 소중한 가치가 법에 의해 지켜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최 회장 측은 3일 만에 입장문을 내고 "노 관장과의 혼인관계는 새로운 사람(동거인 김희영)을 만나기 훨씬 이전에 파탄 나 있었다"면서 "재판에서 유리한 결론을 얻기 위해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일방적인 자신의 입장을 언론에 이야기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어 당황스럽다"고 맞받아쳤다.

11월23일엔 노 관장 측이 최 회장의 동거인 김희영 TNC재단 이사장을 상대로 낸 위자료 소송 첫 변론기일에 "최 회장이 동거인에게 쓴 돈이 1000억원이 넘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최 회장의 법률대리인 측은 "허위사실을 적시하고 있다"며 법적 대응에 나서는 등 두 사람의 재판은 점차 격화되는 양상이다.

개인적 소송과 별개로 최 회장은 그룹 핵심축인 부회장단 진용을 다시 짰다. 최 회장은 12월7일 임원인사에서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장동현 SK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등을 만나 퇴진을 요청했다. 최 회장을 대신해 지난 7년간 그룹을 이끌어왔던 인사들이었다. 대신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그룹 2인자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최 부회장은 고(故) 최종건 SK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재계에서는 SK그룹이 '사촌경영' 체제를 구축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역시 그룹 지분율이 걸린 가족 간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최태원 회장과 유사한 상황이다. 구 회장은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의 부인 김영식씨와 두 딸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씨와 상속 비율을 놓고 소송을 벌이고 있다. 해당 소송은 단순한 상속 소송이 아닌 사실상 경영권이 걸린 소송 양상이 되고 있다. 만약 법원이 세 모녀 측 손을 들어준다면 ㈜LG에 대한 세 모녀 지분율(14.09%)이 구 회장(9.7%)을 넘어서게 된다. 소송 결과를 떠나 장자 승계에 따라 잡음 없이 이어져온 전통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LG그룹으로선 기록적인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과 노 관장 간 소송과 마찬가지로 해당 소송도 양쪽 모두 물러서지 않고 팽팽히 맞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상속 관련 소송이 길어지면 해당 기업들로서도 피로감이 누적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벌가 상속 소송에 변호인으로 나섰던 한 변호사는 "상속 관련 소송은 오너가 직접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LG가 소송의 다음 변론준비기일은 12월19일이다. 구 회장은 상속 소송 중에도 이른바 LG 야구팬들의 자존심으로 여겨지는 '유광잠바'를 입고 잠실야구장을 찾아 LG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 순간을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LG트윈스 우승 이후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는 구 회장의 모습을 놓고 일각에선 누가 현재 LG그룹의 주인인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SK와 LG가는 격화되는 집안싸움에 골머리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나머지 세 총수에 비해 비교적 무난하고 평탄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연말 무렵 들려오는 정 회장과 관련된 각종 소식들이 이를 방증한다. 정 회장은 11월14일 영국 찰스 3세 국왕이 수여하는 대영제국훈장을 수훈했다. 1977년 고(故) 정주영 선대회장이 수훈한 훈장과 동일하다. 해당 훈장은 영국 사회에 의미 있는 기여를 했거나 뛰어난 성과를 이룬 인물에게 수여된다. 현대차는 올해 10월 기준 영국에서 전년 동기보다 8.7% 증가한 17만3000대를 판매했다. 또 11월27일엔 세계적 권위를 가진 미국 오토모티브뉴스 선정 '자동차 산업 올해의 리더'에 뽑혔다. 정 회장이 특히 차세대 모빌리티 산업으로의 전환에 적극 대응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회장은 올해 현대차그룹의 양적·질적 성장을 모두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찌감치 미래차 부문에 투자하고 체질 개선을 이뤄낸 것이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3분기 기준 현대차는 전년 동기 대비 146.3% 늘어난 3조821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호실적임과 동시에, 특히 대한민국 1등 기업 삼성전자를 실적으로 제쳤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한 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3분기까지 현대차 누적 영업이익은 11조6524억원으로 15년 연속 1위를 지켜온 삼성전자를 제쳤다.

다만 올해도 묵은 과제인 지배구조 개편을 이루지 못한 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는 점은 정 회장으로선 아쉬운 부분이다. 현대차는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아직 순환출자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또 내년에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주춤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어 현대차로선 숨 고르기를 하는 시간이 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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