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최고 서점 CEO가 책보다 ‘사람’에 투자하는 이유

한겨레21 2023. 12. 1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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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책방 기행]디지털 시대 위기에 빠진 워터스톤스와 반스앤노블을 구한 제임스 돈트, 그가 한 의외의 전략
교외에 넓게 자리잡은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의 전형적인 반스앤노블 매장. 위키코먼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에 2011년 문을 연 땡스북스는 동네책방의 원조로 불린다. 이기섭 대표는 1990년대 중후반 미국 뉴욕에서 만난 반스앤노블(Barnes & Noble)에서의 정서적 만족감을 땡스북스로 실현했다. 이 시절 신문에서 종종 ‘우리는 왜 반스앤노블 같은 서점이 없는가’라는 글을 만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창기 반스앤노블은 마치 개인 서재 같은 느낌을 주던 유서 깊은 독립서점을 그대로 베꼈다. 반스앤노블의 전략은 성공했고 이후 공격적으로 지점을 늘렸다. 그사이 미국의 많은 독립서점이 문을 닫았다.

세계적인 서점 잇따라 살려낸 서점인

세월이 흘러 이번에는 반스앤노블이 수세에 몰렸다.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과 싸우다 만신창이가 됐고 결국 2019년 여름 매각됐다. 인수한 엘리엇 어드바이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영국의 서점인 제임스 돈트를 불러들이는 것. 돈트는 이미 2011년 위기에 처한 영국 체인서점 워터스톤스(Waterstones)를 맡아 흑자로 되돌린 경력이 있었다. 이로써 돈트는 유럽 최대 체인서점 워터스톤스에 이어 미국의 대형 체인서점 반스앤노블을 책임지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서점인이 됐다.

한때 런던의 독립서점 대표에 불과했던 돈트가 영국과 미국의 양대 체인서점을 책임진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가장 중요한 관점 포인트는 따로 있다. 돈트의 실험은 디지털 변혁기에 과연 서점이란 무엇인가란 진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핵심은 대형 체인서점의 운영 방식을 모두 폐기하고 서점 본연의 모습으로 돌리는 것.

지금껏 반스앤노블의 주요 전략은 도서 대량 구매였다. 중앙에서 담당자가 일괄로 도서를 구매하고 지점으로 내려보낸다. 이 시스템에서 대형 체인서점은 저렴한 임금을 주고 쓸 수 있는 임시직원을 두면 충분했다. 반면 돈트는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고 믿는다. 돈트북스를 운영하며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경력을 쌓을 수 있게 도우면서 상거래를 교육하는 게 중요하다. 지적이고 열정적인 훌륭한 서점원이 훌륭한 서점도 만들 수 있다”는 경험을 얻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돈트북스 직원들은 체인서점보다 두 배 정도 높은 급여를 받았다. 서점업에서 임대료 비중은 말할 수 없이 높지만 그보다 서점원 한 명이 얼마나 많은 책을 팔 수 있는가 하는 전문성을 더 중요시했다.

영국 맨체스터 중심부의 워터스톤스 매장. 한미화

돈트는 반스앤노블을 맡은 뒤 가장 먼저 서점원의 강한 리더십과 팀워크를 되살렸다. 1990년대 이후 자리잡은 대형 체인서점의 매뉴얼을 뒤집는 일이다. 과거 워터스톤스나 반스앤노블은 어느 지점을 방문하나 똑같은 책이 진열돼 있었다. 이제는 매장 매니저가 서점에 맞는 도서를 선정하고 구매를 결정한다. 워터스톤스는 이미 이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해 성공했고 반스앤노블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했다.

대형 체인서점의 매뉴얼을 뒤집다

과거 대형 체인서점에서 이뤄지는 진열과 광고·홍보는 마치 부동산 거래와도 같았다. 워터스톤스와 반스앤노블은 돈을 받고 서점 공간을 출판사에 팔았다. 문제는 판매 예측이 자주 어긋나고 재고 부담과 반품이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 특히 돈트는 과거 워터스톤스나 반스앤노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3 for 2’ 방식을 극도로 싫어했다. 책 두 권을 사면 한 권을 더 주는 것이다. 이는 대형마트에서 공산품을 살 때 흔히 만날 수 있는 판매 기법이다. 하지만 독자는 치약을 사듯 책을 고르지 않는다. 또 돈트는 책 표지에 ‘반값 세일’ 혹은 ‘30% 세일’ 같은 스티커를 붙이는 방식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일을 서슴지 않고 했던 대형 체인서점의 경영자들을 두고 “서점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책은 소비재가 아니다.

심지어 돈트는 대형 체인 서점이 고수했던 기업 브랜딩과 매장 디자인의 기본인 일관성마저 버렸다. 전세계 어디를 가든 똑같은 맥도날드 방식을 벗어나 매장마다 고유함과 개성을 지닌 오프라인서점이 되는 걸 목표로 삼았다. “서점은 규모와 관계없이 독립서점처럼 움직여야 한다. 어느 서점이든 그 지역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독립서점처럼 지역 특성과 취향에 맞는 책과 상품을 팔아야 한다.” 새로운 반스앤노블의 슬로건이다.

물론 대형 체인서점의 대량판매 방식이 통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아마존이 없었다. 대형 체인서점과 아마존을 겪으며 독자는 자신이 서점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새롭게 깨달았다. 하지만 반스앤노블은 아마존을 따라잡느라 서점의 고유함을 모두 버렸다. 그 결과 반스앤노블은 1층 전면부에 레고 세트, 달력, 인형, 퍼즐, 초콜릿 등 책이 아닌 다른 물건을 전시 판매했다. 책은 위층에 가야 만날 수 있었다. 2023년 돈트가 새 단장을 마친 반스앤노블 뉴욕 어퍼웨스트사이드 지점은 달라졌다. 1층의 잡동사니를 모두 걷어내고 책을 중심에 둔 서점의 기본으로 돌아갔다. 작은 원형 나무테이블을 배치해 여유롭게 책을 만날 수 있도록 바꾸었다.

서점원은 가장 덜 상업적인 사람

도서 판매업은 다품종 소량판매가 특징이다. 모든 상품을 진열할 수고 지역에 맞는 큐레이션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결정하는 사람은 전문 지식을 갖춘 서점원이다. 돈트는 “서점원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덜 상업적인 사람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상업성을 덜 걱정할수록 서점은 상업적으로 더 잘 돌아간다”는 흥미로운 말을 한 적도 있다.

디지털 변혁기에 서점만큼 독자가 참여해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 물론 킬링타임용 책이나 실용서는 전자책으로 대체될 테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아름다운 물건을 소장하고 싶어 한다. 이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좋은 서점은 여전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제임스 돈트가 반스앤노블을 독립서점처럼 바꾸고 책을 책답게 대접하려는 이유다.

런던(영국)=한미화 <동네책방 생존 탐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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