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한류 집주인 아닌 에어비앤비 호스트돼야"...한류NOW 세미나
강보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파이낸셜뉴스] 국제문화교류와 한류를 아우르는 토론의 자리가 마련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주최·주관한 ‘제13차 한류NOW 정기세미나’가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더북컴퍼니 토브홀에서 열렸다.
‘한류, 경계를 넘어서: 딜레마와 과제’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에서는 ‘K’ 없는 한류, OTT의 습격, 한류와 교류, 2024 프랑스 파리 올림픽까지 한류 논의에 있어 꼭 필요한 담론들이 오갔다.
제1부 ‘K 없는 한류?: 한류의 본질과 미래’에서는 원용진 서강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됐다. 발제를 맡은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한류’가 국가 간 교류의 흐름을 일컫는 것이었다면, ‘K-’는 원산지 표기에 가깝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K’의 의미가 점차 흐려지는 현상에 주목했다. 한국인 없는 K팝 그룹의 등장뿐만 아니라 한국 배우와 제작 인력, 한국적 요소까지 해외로 건너가 서로 닮아가는 요소 시장의 디커플링화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K라는 출처의 강조보다는 해외 수용자의 반응”이라면서 “더 많은 글로벌 파트너가 함께 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합토론의 문을 연 심두보 성신여대 교수는 각국 이용자의 취향 변화에 주목할 것을 강조하면서 한류 동향연구가 인기 순위 집계를 넘어 해외 수용의 본질과 맥락 탐구로 이어져야 한다고 봤다. 같은 맥락에서 홍경수 아주대 교수는 한류를 가장 왕성하게 수용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면서 경제적 수익만 담보된다면 K가 어떤 모습이어도 상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에 대해 우려했다.
이어 강보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K라는 접두어가 특수성과 보편성을 획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완결 상태는 아니라며, 현 시점이 한류의 유연성을 시험하는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봤다. 특히 한국은 한류에 있어 ‘집주인’이 아닌, 그 누구든 함께 여행하면서 받아들일 줄 아는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젠더·인종 다양성, 콘텐츠 IP 확보, 노동 문제가 한류의 고려 대상이 될 필요가 있음을 덧붙였다.
■'D.P' 기획사·'피지컬: 100' PD가 본 OTT시대 콘텐츠의 성공비결은?
제2부 ‘OTT의 습격: 방송과 영화 경계의 와해’에서는 조영신 SK브로드밴드 경영전략그룹장의 진행으로 두 개 발표가 이어졌다. 첫 발표를 맡은 'D.P.'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기획PD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이상미 이사는 자사가 영화 제작자를 주축으로 구성됐지만, 그 전신이 레진스튜디오라는 점에서 여러 변화에 더욱 기민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음을 회상했다. 무엇보다 원작 IP의 영상화에는 포맷 길이, 유통 플랫폼, 홍보 방식 면에서 상이한 영화와 시리즈물 각각의 특성을 유념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여기에는 제작자의 발빠른 판단이 동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마켓' '황야'는 웹툰 ‘유쾌한 왕따’를 원작으로 디스토피아 공간을 연결한 작품이며, 이들은 다름 아닌 세트장을 공유하는 ‘공간 유니버스의 확장’판임을 강조했다.
2부 두 번째 발표자 장호기 PD는 '피지컬: 100' 제작기로 단상에 올랐다. 장 PD는 그간 예능 프로그램 수출 장벽으로 작용한 문화적 할인의 문제를 다름 아닌 ’피지컬‘로 극복할 수 있었다면서 미장센의 심플함이 '피지컬: 100'의 주된 성공 요인임을 강조했다. 또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되는 ’피지컬 유니버스‘에 대한 포부도 밝혔다. 넷플릭스가 여전히 로컬 퍼스트를 요구하지만, 글로벌 수요를 간과할 수 없다는 점에서 향후 스튜디오 확대를 비전으로 내세운 것이다. 장 PD는 당분간 ’몸‘이라는 세계 공통의 소재로, 직관적인 시청 경험을 선사하는 데 주력할 의지를 내비쳤다.
토론자들은 대체로 OTT의 긍정성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한국 산업에 ‘습격’으로 작용한 것을 우려했다. 장영엽 씨네21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영화감독의 TV 진출이 보편화되면서 ’멀티스튜디오 시스템‘이 중요한 비즈니스 모델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경달 네오터치포인트 대표는 레거시 미디어 측면에서 OTT는 확실히 ’습격‘이었지만 창제작자 그룹과 스태프에게는 오히려 시장이 확장되는 긍정성을 발휘했다고 보았다. 이어서 기존 방송사 역시 글로벌 콘텐츠 스튜디오그룹으로의 정체성 변화를 고려할 때라고 강조했다.
유건식 KBS 시청자서비스부 박사는 OTT와 방송국이 제작 표준을 통해 제도적 변화를 꾀할 것을 제언했다. 이수엽 미디어미래연구소 박사는 한류에 대한 인식이 커지는 만큼 다른 한편으로 막연해지고 ’납작해지는 감각‘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했다.
■글로벌 시대 진정성 있는 국제협력의 노하우는?
글로벌 파트너와 함께 일하는 방법에 대한 탐구도 이어졌다. 홍석경 서울대 교수가 좌장을 맡은 제3부에서는 하민호 맑은시네마 PD가 첫 발표를 맡아 ’예산의 투명성‘과 ’경험의 표준화‘를 글로벌 협업의 주요 사항으로 강조했다. 국제 협력은 적절한 촬영지와 예산 조정이 관건이라는 점에서 촬영 단가표를 수시로 갱신하고 이를 파트너에게 공유하는 것이 진정성 있는 협력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이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 프랑스 한류 현황과 대응‘을 주제로 발표한 민지은 경희대 주임교수는 이 시대 프로슈머인 Z세대 한류 팬의 이용 양상에 맞춰 정책적 대응을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에서 동호회 지원, 페스티벌 개최 등 ’DIY‘식 정책 지원 필요성을 역설했다.
종합토론에 참여한 김명신 CJ ENM 글로벌 사업본부 해외사업팀장은 파리 올림픽과 같은 글로벌 이벤트를 준비함에 있어 대중문화와 전통문화를 결합하는 방안을 제언했다.
한편 정연주 서울영상위원회 해외사업팀장은 과거와 달리 한국이 메인 로케이션 촬영지로 선택되는 일이 늘고 있다면서 향후 한국이 아세안 국가 중 가장 매력적인 촬영지이자 제작비 인센티브 제도가 탄탄한 지역으로 자리매김 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아영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조사연구팀장은 프랑스 BTS, 싸이, 블랙핑크와 같은 대형 그룹 이외의 아티스트가 유럽에서 얼마나 주목받고 있는지를 반문하면서 K팝 이외 장르에서도 K를 확신할 만한 세밀한 조사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보았다.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최근 업계와 학계에서 ‘K 없는 K팝’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는 가운데 이번 세미나는 시의적절한 토론의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원장은 “‘K 없는 한류’의 가능성과 지속성에 대한 고민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명제”라면서 “향후 창·제작과 담론의 현장에서 ‘위다우트(Without) K’가 아닌 ‘비욘드(Beyond) K’로 인식의 지향을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제13차 한류나우 정기 세미나 영상자료는 2024년 1월 진흥원 유튜브 채널에 공개될 예정이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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