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권도형, 미국 가나? 칼자루 쥔 몬테네그로 법무장관 [특파원 리포트]

송락규 2023. 12. 1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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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테라폼랩스 전 대표 권도형 씨, 여권을 위조해 소지한 혐의로 몬테네그로에서 붙잡혀 지난 3월부터 몬테네그로 스푸즈 구치소에 수감돼 있습니다.

현지 시간 지난달 24일,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이 권 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을 승인하면서 이제 권 씨가 어느 나라로 송환돼 재판을 받느냐에 관심이 쏠립니다.

앞서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권 씨에 대해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한 국가는 한국과 미국입니다.

이 중 청구를 먼저 한 쪽은 한국 법무부입니다. 지난 3월 29일에 권 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고, 미국은 이보다 닷새 늦은 4월 3일 청구했다는 게 몬테네그로 법원 설명입니다.

앞서 지난 3월 마르코 코바치 당시 몬테네그로 법무부 장관은 범죄인 인도 청구시 송환국을 결정할 조건으로 ▲범죄의 경중 ▲범죄가 벌어진 지역 ▲범죄인 인도 청구 시기 ▲범죄인의 국적 등 기타 상황을 고려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설명대로라면 한국 법무부의 범죄인 인도 청구 시기가 빨랐고, 권 씨의 국적이 한국인 점, 또 권 씨 역시 한국행을 원한다는 점에서 한국 송환이 더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법무부는 권 씨 관련 범죄인 인도 청구 진행 내용에 대한 KBS 질의에 "조약 및 외교관계상 비밀 유지 의무, 향후 절차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답변이 어렵다"며 "범죄인을 신속히 송환해 형사 사법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만 설명했습니다.

지난 3월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테라폼랩스 창업자 권도형 씨.


■ 현 몬테네그로 법무장관은 "미국은 대외중심 파트너"

하지만 최근 들어 권도형 씨의 송환국이 미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연이어 나오고 있습니다. 발단은 권 씨의 송환국을 최종 결정할 권한을 가진 안드레이 밀로비치 몬테네그로 현 법무장관의 현지 방송 인터뷰였습니다.

밀로비치 장관은 지난 23일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권 씨의 인도 대상국과 관련해 "미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 파트너"라고 말했습니다. 또 "우리는 향후 범죄인 인도를 위한 법적인 틀을 만들기 위해 (미국과) 상호 범죄인 인도 협약에 최대한 빨리 서명하고 싶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미 블룸버그 통신은 해당 발언에 대해 밀로비치 장관이 송환국을 어디로 결정할지 의도와 관련해 힌트를 준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도 지난 7일 밀로비치 장관이 주디 라이징 라인케 몬테네그로 주재 미국 대사 등과의 비공개 논의 과정에서 권 씨를 미국으로 보낼 계획을 밝혔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보도와 관련해 밀로비치 장관은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채 성명을 통해 "대중에게 적시에 결정을 알릴 것"이라고만 밝혔습니다.

권도형의 송환국을 결정할 안드레이 밀로비치 몬테네그로 법무부 장관.


■"미국 가면 징역 100년형" "한국 피해자 배상 어려울 수도"

몬테네그로 당국이 권 씨를 미국에 인도할 경우, 권 씨는 중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은 경제사범 최고 형량이 40년이지만,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방식인 병과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100년 이상의 징역형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현지 검찰은 가상자산에 증권성이 있다는 판단을 적용해 소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SEC는 지난 2월 권 씨와 테라폼랩스가 수백만 달러의 가상자산 증권 사기를 조직했다며 민사 소송을 제기했고, 뉴욕 연방 검찰도 한 달 뒤 사기와 시세 조종 등 8개 혐의로 권 씨를 기소했습니다.

고객 자금 수십억 달러를 빼돌린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가상화폐 거래소 FTX 창업자인 샘 뱅크먼-프리드는 내년에 있을 선고 공판에서 '100년형 이상'을 받을 거란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권 씨가 미국에서 재판을 받을 경우 한국에서 다시 재판받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기회 자체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다만 미국에서도 금융사기 범죄의 형량을 섣불리 예상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의 경우 강력 범죄에 비해 덜 엄하게 처벌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데, 실제 미국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대 사기극을 벌인 바이오벤처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는 지난해 징역 11년형을 선고받는 데 그쳤습니다.

앞서 한국 검찰은 권 씨를 국내로 송환하는 것이 국내 투자자들의 피해 회복과 사건 진상규명에 가장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 권 씨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인정될 경우 최고 무기징역까지도 가능하다는 점을 들기도 했습니다.

국내 피해자 변호인단 역시 미국에서 권 씨 관련 재판이 진행될 경우 권 씨의 어떤 재산이 몰수, 추징됐는지 확인하는 데 제한이 있기 때문에 국내 투자자의 피해 회복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 송환국 결정되더라도 당분간은 몬테네그로에

범죄인 인도 청구 건을 담당하는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지난 6월 15일 권도형 씨에게 6개월 구금 명령을 내렸습니다. 오는 12월 15일 구금 기한이 끝나는 만큼 몬테네그로 법무부장관은 조만간 권 씨를 어디로 송환할지에 대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권 씨의 송환국이 한국이든 미국이든 곧바로 송환되는 건 아닙니다.

권 씨는 앞서 지난 3월 16일 위조여권을 사용하다 체포됐고 이후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에서 징역 4개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6월 15일 고등법원의 6개월 구금 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권 씨의 복역 기간은 3개월 남짓입니다. 이 때문에 12월 15일 이후 송환국이 결정되더라도 권 씨는 남은 한 달여간의 형기를 몬테네그로에서 더 채워야 합니다.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권 씨의 송환 시기에 대한 KBS 질의에 "권 씨의 남은 복역 기간은 약 한 달로, 송환국에 인도되기 전 잔여 형기를 채워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권 씨가 몬테네그로 법무부의 범죄인 인도 결정에 대해 항소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설명했습니다.

■ 권도형의 미국행 바라는 피해자들…왜?

지난 3월, '루나·테라 코인 공식 피해자' 인터넷 카페에서 권도형을 어디로 송환할지를 놓고 공개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약 70%는 '미국 송환'에 '한국 송환'은 15%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게 1차적인 이유라면,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도 어느 정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한국 법원은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이자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또 다른 핵심 인물인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의 구속 영장을 두 차례나 기각했습니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두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건데, 그동안 가상화폐의 증권성을 인정한 판례는 없습니다.

돈을 돌려받기 더 어려운 길인 게 분명함에도 일부 국내 투자자들이 권도형의 '한국행'보다 '미국행'을 더 선호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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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락규 기자 (rockyo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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