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옥수수밭 갈아엎고 의류단지로...‘세계의 공장’ 더 견고해졌다
“5~6년 전까지 이곳은 완전 황무지였어요. 지금 의류 회사들이 속속 들어오는데,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지난달 22일 중국 중부 후베이성 톈먼시에서 만난 30대 주민 황(가명)은 현재의 변화가 대견한 듯 자랑스럽게 말했다. 근처 대도시 우한에서 일하러 왔다는 황은 “공장에서 일한 만큼 돈을 받는다”며 “열심히 하는 사람은 1만위안(180만원)까지 번다”고 했다.
상하이에서 정서쪽으로 1천㎞ 떨어진 톈먼시는 2018년 의류 특화 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옥수수농사 등을 짓던 도시 외곽에 3.5㎢(107만평) 규모의 대규모 의류산업단지를 조성했다. 단지 곳곳에 ‘중국 패션의류 특색 마을’, ‘톈먼 의류 브랜드를 강화하고, 전자상거래 시범 기지를 구축하자’고 쓰인 거대한 선전용 간판이 서 있고, 신축 기숙사로 보이는 건물 베란다에는 칸칸마다 빨래들이 빼곡히 걸려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코로나19 장기 봉쇄라는 변수로 인해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지만, 현재 이곳 산업단지에 하오셴성·신쿠판·이신·메이다 등 10여개의 대규모 의류 회사가 입주해 밤늦게까지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또 다른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40대 주민 차오(가명)도 “외지로 나가 일하는 것보다 월급은 적지만, 아이들과 부모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며 “성과급으로 월급을 계산하기 때문에 일이 있으면 휴가를 내고 집안일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동남부 해안에 거점을 둔 의류 기업을 유치하려는 톈먼시의 전략은 적중한 듯 보였다. 2020년엔 광저우시에 자리한 의류 공장들과 이전 협의를 했고, 올해는 그 옆의 선전시와 같은 협의를 진행 중이다.
2020~2022년 발생한 코로나19의 여파, 치열한 미-중 전략 경쟁,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한 임금 상승 등으로 애플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베트남·인도 등으로 공장을 옮기는 ‘차이나 엑시트’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전체적으로는 의류·장난감·가구·신발 등 노동집약산업의 수출이 증가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일본·대만 등 중국에 앞서 경제를 발전시킨 이웃 나라들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천~5천달러에 이르면서 노동집약산업의 수출 비중이 줄고 중화학·중공업 분야의 수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1983년 중화학 제품의 수출이 경공업 수출을 앞섰고, 일본은 1960년대부터 중공업 중심의 산업 구조로 전환했다.
그에 따라 올해 1인당 국내총생산이 1만3천달러를 넘을 것으로 보이는 중국에도 같은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이어졌지만, 실제로는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를 보면, 최근 6년 새 의류·장난감·가구·신발·모자·우산 등 노동집약산업 분야의 수출이 급증했다. 섬유·방직업의 경우 지난해 수출액이 2조1304억위안으로 2017년(1조7444억위안)보다 22% 증가했다. 신발류 수출도 2017년 3270억위안에서 지난해 4140억위안으로 늘었고, 장난감류 수출은 2017년 3692억위안에서 2022년 6902억위안으로 갑절 가까이 증가했다. 중진국 대열에 들어선 중국이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중남미 등에 노동집약산업을 넘기고 중공업·첨단산업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이 빗나가고 제조업 전반에서 ‘세계의 공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이 한국 등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규모’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의 노동집약산업을 이끌어온 ‘토종 기업’들이 싼 임금을 쫓아 외국으로 나가지 않고 중국 안에서 인건비가 싼 곳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동부 해안 도시인 산둥성 웨이하이의 섬유회사 웨이하이 롄차오국제협력그룹은 산시성 시샹현과 프로젝트 협약을 맺고 공장 이전 사업을 진행 중이다. 롄차오 그룹은 웨이하이에서 남서쪽으로 약 1500㎞ 떨어져 있는 시샹현에 8천만위안(144억원)을 투자해 9400㎡(2800평)의 의류 가공 공장과 창고 등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쑨톄 롄차오그룹 대표는 8월 협약식에서 “중국 중심부에 있는 시샹현의 양호한 사업 환경과 뛰어난 업무 효율을 보니 이곳에 투자하는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31개 성급 지역으로 이뤄진 중국은 동부 해안과 중·서부 내륙 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 격차가 3~4배에 이를 정도로 크다. 국가통계국 자료를 보면, 중국 31개 지역 중 1인당 국내총생산 상위 1~5위인 베이징·상하이·장쑤성·푸젠성·저장성의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은 12만~19만위안이었지만, 하위 1~5위인 간쑤성·헤이룽장성·구이저우성·광시성·지린성은 4만4800~5만4300위안에 불과했다.
이는 그대로 임금 격차로 이어진다. 지난해 상하이·장쑤성·저장성·광둥성 등 동부 해안 지역에 있는 민간기업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7만위안이 넘었지만, 후베이성·후난성·쓰촨성·장시성·안후이성 등 중·서부 지역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5만위안대에 머물렀다. 소득이 높고 물가가 비싼 동부 해안 지역 도시의 젊은이들이 힘든 제조업보다 서비스업 일자리를 더 선호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하지만 중국 내 공장 이전으로, 중·서부 지역 노동집약산업의 수출이 점점 늘고 있다. 중부 후베이성의 올해 1~10월 노동집약산업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1%, 서부 쓰촨성의 같은 기간 노동집약산업 수출은 전년보다 36.5% 증가했다. 베이징 섬유회사의 한 임원은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은 인건비 압박에 베트남·미얀마·인도 등 인건비가 싼 다른 나라로 가지만, 중국 기업은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며 “중국 중·서부로 가면, 말과 문화가 같고 인건비는 싼 지역에 공장을 이전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2000년대 들어 추진한 서부 대개발 계획도 기업들의 중·서부 이전 결정을 돕고 있다. 중국은 낙후된 지역을 개발한다는 목적으로 2000년대 초부터 중·서부 지역에 도로·통신·전기 등 사회 간접시설을 적극 건설했고, 현재 사회적 인프라가 상당히 갖춰져 있다.
노동집약산업 수출이 증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 산업이 로봇·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서 고도화를 달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로봇·기계류 등을 도입해 임금 상승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상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0월 말 발표한 ‘중국 노동집약적 업종 수출 동향과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2011~2021년 의류·장난감·가구·신발 등 업종에서 노동자 1인당 고정자산, 즉 생산에 도움을 주는 장비가 2배 이상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과거 사람이 몸으로 했던 일을 현재는 기계나 로봇 등을 투입해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 위원은 “(중국이) 인공지능, 로봇 도입, 자동화, 스마트화 등을 통해 노동집약적 산업에서의 인력 투입을 줄이는 데 성공할 경우, 기존 노동집약적 산업의 성격이 자본 및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해 생산성이 낮았던 산업들이 적은 인력과 많은 기계를 활용하는 고도의 장비 사업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국제발전지식센터도 2021년 낸 ‘섬유산업 이전 상황’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 5G, 블록체인 기술 등을 활용해 섬유산업의 스마트 제조를 가속화하고 인력을 대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의 결론은 ‘국내 공장 이전’과 ‘산업 고도화’로 중국이 자동차·조선·전자 등 중공업과 첨단산업뿐 아니라 의류·장난감·신발·가구 등 노동집약산업에서도 한동안 비교우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도 지난 10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반도체·인공지능 등 주요 산업의 공급망에서 대중 견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중국 내륙이 생산 기지로 개발되면서 오히려 세계 제조업 무대에서 중국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그럼에도…지정학적 리스크에 애플·델·삼성 등은 ‘탈중국’
중국이 자체 동력으로 ‘세계의 공장’ 지위를 유지하더라도 그동안 전세계 기업·자본이 주목했던 투자처로서의 매력은 상당히 잃은 상황이다. 비싼 노동력과 토지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지정학적 갈등, 중국 정치 체제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많은 기업이 중국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8일 아이폰의 95% 이상을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애플이 향후 2~3년 안에 연간 5천만대가량의 아이폰을 인도에서 생산할 계획이라고 회사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애플은 전체 아이폰 제품의 약 25%를 인도에서 생산하게 된다. 이미 최대 아이폰 공급업체인 대만 폭스콘은 현재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주에 건설 중인 공장을 내년 4월 가동할 예정이다.
애플의 공장 이전은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지나치게 높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시도 중 하나로 풀이된다. 나아가 애플은 지난해 중국에 코로나19가 빠르게 번져 정저우 공장이 봉쇄된 뒤 제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세계 2대 퍼스널컴퓨터(PC) 제조업체인 미국 델도 지난 5월 중국 내 생산량의 50%를 2025년까지 해외로 이전하는 방침을 위탁생산 업체들에 통보했다. 일본 소니는 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되는 카메라만 중국에서 생산하고, 다른 나라들에 수출하는 카메라의 생산기지는 중국에서 타이(태국)로 대부분 이전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직격탄을 맞은 삼성도 중국 시장에서 스마트폰과 가전제품의 판매가 급락하자, 2019년 톈진과 후이저우에 있던 휴대폰 공장을 철수하고, 톈진의 텔레비전 공장도 문을 닫았다.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FDI)도 올해 들어 급감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 발표를 보면 올해 1~10월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는 지난해 동기 대비 9.4% 감소했다. 중국은 월별 투자액을 발표하지 않고 있는데, 시장 조사기관 윈드가 지난 9월의 외국인 직접 투자를 자체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같은 달보다 34%나 급감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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