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00만여 가구에 ‘특혜’…노후계획도시특별법 선거용 논란

송진식 기자 2023. 12.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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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신도시 포함 전국 51곳…총선과 대선까지 영향
동탄도 2027년이면 ‘노후도시’돼 재건축 가능
전문가들 “실현 가능성 의문”…시민단체 “매표행위”
잠실 롯데타워에서 바라본 서울 송파, 경기 성남시 방향 아파트단지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주간경향] 12월8일 국회에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노후계획도시특별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내년 4월부터 시행 예정이다. 이 법은 지난 11월3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뒤 1주일만에 ‘신속하게’ 처리됐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전세사기특별법’이 몇달 째 국회 문턱을 못넘는 것과 대비된다.

법안 이름이 혹시 낯설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1기 신도시 특별법’을 떠올리면 된다.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같은 법안이다. 본래 ‘1기 신도시 특별법’이던 이 법안은 “왜 1기 신도시에만 특혜를 주느냐”는 비판에 직면한 뒤 슬그머니 다른 이름을 쓰고 있다.

단순한 법안 이름의 윤색(潤色)만이 아니다. 1기 신도시에만 부여하려 했던 용적률 상향, 안전진단 완화 등 여러 재건축상 특혜를 ‘조성된 지 20년 이상 경과, 면적 100만㎡ 이상’ 되는 택지에 모두 주기로 했다. 그 결과 특별법의 적용 지역이 분당, 산본, 일산, 중동, 평촌의 5곳(1기 신도시)에서 전국 51곳으로 늘었다. 특별법 적용을 받게 된 가구 수도 30여만 가구에서 전국 100만여 가구로 늘었다. 인접한 택지를 묶어 100만㎡를 만들 경우 특별법 적용이 가능하고, 향후 제정될 시행령에서 안산, 창원 등의 산업단지 등을 대상 지역으로 추가할 예정이라 특별법 대상 가구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노후계획도시에 개발 특혜를 부여해 빠르게 일괄 재정비하자는 게 특별법의 취지다. 지역과 규모별로 차이가 있지만 통상 건설업계에선 아파트단지 하나를 재건축하려면 10~15년을 내다본다. 조합 설립, 인가, 이주, 철거, 건립 등에 필요한 기간이다. 인구 4만~5만명급 신도시를 하나 조성하는 데 적어도 8~10년이 걸린다. 그렇다면 전국 51곳에 산재한 100만여 가구를 재건축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노후계획도시법안을 향한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의 무책임한 매표행위”(시민단체), “실현 가능한지 의문”(도시계획전문가들) 등의 비판은 여기서 시작된다.

■특별법은 ‘특혜 덩어리’, 동탄도 2027년엔 재건축 가능?

특별법으로 총선에서 표를 얻어보고자 하는 여야가 일사천리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월 1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과거 인구 분산을 위해 조성한 신도시들이 노후화하면서 주민 안전과 층간소음, 주차 시비 등의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며 특별법 처리를 국회에 촉구했다. 그러자 여야가 한목소리로 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공언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전국 100여만 가구에 특별법으로 재건축 특혜를 주겠다는데, 당장 이를 반대할 ‘간 큰’ 정당은 없다. 내년 총선에서 어림잡아도 수백만 표가 특별법에 달렸다. 차기 대선에서도 노후계획도시특별법은 주요 이슈가 될 전망이다.

특별법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특혜’ 덩어리다. 대상 지역 51곳에 있는 아파트들은 재건축 연한이 30년에서 20년으로 사실상 단축된다. 대상 지역 외 아파트들은 여전히 30년 적용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특혜다. 예컨대 2기 신도시인 동탄은 2007년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특별법에 따르면 지금부터 대략 4년 후인 2027년쯤부터는 동탄이 ‘노후도시’가 되므로 재건축이 가능하다. 2기 신도시의 경우 일부 미개발 택지나 미분양 지역은 지금도 분양이 진행 중이다. 자칫하면 한쪽에선 신축 입주를 하는데 한쪽에선 재건축을 하는 진풍경이 연출될 수도 있다.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경기 안양시 동안구의 한 아파트단지를 찾아 노후화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년 됐다고 재건축을 할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특별법이 부여하는 ‘최대 500%’의 용적률 상향 특혜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별법에서 지정하는 ‘특별정비구역’이 되면 해당 지역 토지용도의 종상향(1종주거→2종주거, 3종주거→준주거)이 허용된다. 3종주거에서 준주거로 상향되면 용적률도 300%에서 500%까지 늘어난다. 2기 신도시의 용적률은 159~200%로 1기 신도시(169~226%)보다 낮다. 용적률 상향으로 집주인들이 얻을 수 있는 개발이익이 더 크다는 뜻이다. 서울 용산의 한 공인중개사는 “아파트의 경우 당장 재건축을 하느냐의 여부보다는 재건축이 가능한 아파트인가가 가격을 좌우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늘어나는 용적률 일부를 회수해 공공임대나 기반시설을 짓겠다는 입장이지만, 특별법으로 얼마의 개발이익이 발생하고 얼마가 공공에 회수되는지 등은 아직 산출된 게 없다. 특별정비구역에서는 ‘재건축 3대 대못 규제’로 꼽히는 안전진단도 완화되거나 필요에 따라선 아예 면제된다. 대상 지역 51곳에는 서울 개포동, 목동, 상계동 등도 포함된다. 이들 지역은 안전진단 규제가 재건축 최대 걸림돌 중 하나였는데, 특별법 통과로 재건축 사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부동산 업계는 전망한다.

■정치적 셈법 따라 엇갈리는 입장…국토 균형 발전은 ‘실종’

대상 지역과 가구가 많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특정 지역에 과도한 특혜를 몰아주는 것은 당연히 반발을 불러온다. 특히 대상 지역 51곳 중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24곳이 서울(8곳)과 수도권(경기 13곳·인천 3곳)에 집중돼 있어 ‘국토균형발전’이라는 국가 과제와 모순된다는 비판이 정치권 내부에서도 일고 있다. 특별법이 국토위 전체회의를 통과하던 날에도 쓴소리가 터져나왔다.

전북 익산이 지역구인 김수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회의에서 “특별법이 통과되면 지방 청·장년층은 다 서울·수도권으로 올 텐데, 지방소멸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아무 대책이 없다”며 “국토부는 지방 원도심, 구도심 활성화 방안도 마련해서 보고해 달라”고 말했다. 강원도 춘천이 지역구인 허영 민주당 의원도 “지난 10년간 강원에서 수도권으로 4만7000명이 이동했는데, 이는 강원도의 2개 군에 해당하는 인구 규모”라며 “균형적인 국토발전대책을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총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수도권 노후계획도시의 대규모 재건축은 곧 지방의 인구 유출을 가속화하리라는 우려다.

여야 모두 특별법 통과를 공언했지만 막상 당 내부에서는 지역구가 도시냐 지방이냐에 따라 의원들의 찬반 입장이 엇갈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노후계획도시특별법은 그간 발의된 유사법안 13개를 통합해 만든 법안이다. 해당 법안들을 (공동)발의한 의원들 대부분은 대도시를 지역구로 두고 있다. 국토위 법안소위에서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지방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은 “수도권 특혜법”, “지역에서 원성이 높다” 등의 불만을 드러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1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노후계획도시 정비특별법 연내 통과 촉구를 위한 주민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반면 특별법 대상 지역이 지역구인 의원들은 적극적으로 법안을 옹호했다. 분당이 지역구인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특별법은 기존 도시정비법이나 뉴타운법 등에서 주는 용적률 특례 등에 비해 훨씬 더 큰 특례를 주는 법이 아니다”라며 “(규제를) 5~10년 당겨 불편을 겪는 주민들에게 좋은 아파트를 공급하는 게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강남이 지역구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특별법 적용 기준 면적을 50만㎡ 등으로 더 줄이자고도 제안했다. 국토교통부가 “그렇게 하면 대상 지역이 51곳에서 138곳으로 늘어나 부동산 시장 불안이 예상된다”고 반대하자 유 의원은 “대체 그 ‘불안’의 기준이 뭔가”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지자체장들 반응도 제각각이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특별법이 통과되자마자 곧장 환영 성명을 내고 “특별법의 성공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오세훈 시장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오 시장은 지난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특별법의 안전진단 기준 완화, 리모델링 시 가구 수 증가 허용 등의 조항에 대해 “무분별한 재건축이 일어날 수 있다”며 문제 제기에 나선 바 있다. 특별법으로 서울도 8곳이 포함되지만 워낙 재건축 수요가 높은 지역 특성상 다른 곳에서 “왜 우리는 안 해 주냐”며 따지는 등 논란이 불거질 경우 오 시장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실현 가능한지 따져봐야”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소신 발언에 나선 의원들도 있었다. 맹성규 민주당 의원과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은 법안에 대해 내내 반대 입장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맹 의원과 김 의원 모두 국토교통부 출신이다. 맹 의원의 경우 특별법 대상 지역에 본인의 지역구가 포함됨에도 법안에 소신을 이어가 눈길을 끌었다. 맹 의원은 1기 신도시가 이미 과밀하게 개발된 점, 일괄 재정비에 따른 대규모 이주 대책의 부재, 용적률 상향 등에 따른 기반시설 부족 문제 등을 들어 특별법을 “실현 가능성이 없는 희망 고문법”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도 안전진단 면제 등과 같은 과도한 특혜 및 지방과의 형평 문제, 지역별 인구 및 부동산 수요에 따른 사업성 문제, 광역교통망 문제 등을 들어 “특별법은 1기 신도시 양두구육법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도시계획전문가들도 특별법에 회의적인 견해를 나타낸다. 최봉문 목원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신도시들은 건설할 때부터 충분히 밀도 등을 고려해 설계했고, 1기 신도시의 경우도 거주 만족도는 높다”며 “단지를 벗어나 밀도를 올리는 순간 도로나 체육시설, 공원 등 기반시설에 부담을 주게 되는데, 이를 감당할 공간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또 “그렇게 고밀개발 후 도시가 지금보다 더 쾌적하고 행복할 공간이 될지, 한편으론 미래세대가 개발해야 할 공간까지 현세대가 모두 지금 가져다 쓰는 건 아닌지 등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분당신도시 개발 이전(위)과 개발 이후 전경 모습. 성남시 제공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세부 시행령이나 계획이 나와봐야 실현 가능 여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1기 신도시라고 해서 상황이 다 똑같은 게 아닌데 특별법을 통해 과도한 재건축 인센티브가 주어지거나 정치적 선택으로 ‘20년 재건축’ 같은 ‘과(過)선택’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우려가 있다”며 “현행법을 적용해서 하되 여러 정비 사업이 서로 연결돼 진행될 수 있도록 규제 완화를 해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한국주택학회 회장)는 “노후 신도시 등은 그래도 저층 노후 주거지에 비하면 교통이나 인프라 등의 상황이 나은 편”이라며 “저층 노후 주거지의 경우 기존 법으로 하려면 사업성도 낮고 속도도 안 나는데 노후 신도시를 우선해 특별법으로 개발하는 방향이 옳은지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기 신도시의 경우 당장 못 살 정도가 아니고, 30년간 인프라가 잘 조성돼 자리 잡은 측면도 있다”며 “선도지구 사업을 통해 검증을 거친 뒤 단계적으로 대상 지역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들 “총선 매표행위, 철회해야”

시민단체들은 여야 합의로 추진 중인 특별법이 전형적인 ‘매표행위’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용적률은 토지 이용기준의 가장 기본이 되는 규칙임에도 특별법은 기존에 수립했던 기준의 일관성을 훼손하고 있다”며 “이미 과밀화돼 있는 수도권 신도시와 서울 등 대도시의 대규모 개발지역을 대상으로 더 특혜를 주면 지방 소도시는 더욱 소외돼 국토 균형 발전에도 역행한다”고 밝혔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노후계획도시 정비 문제는 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 및 지방 소멸 현상 등 공동체적 인식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 함에도 고민 없이 법안부터 밀어붙이는 걸 보면 국회의 기능을 의심케 한다”며 “전형적인 정치권의 매표행위로, 김포의 서울 편입 문제를 포함해 총선이 과도하게 부동산 문제에 매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총선을 앞두고 표를 구걸하는 정치권의 셈법과 집은 새로 짓고 싶은데 분담금은 어떻게든 덜 내고 싶은 지역 주민들의 그릇된 욕망이 빚어낸 결과가 이번 특별법”이라며 “용적률 문제의 경우 도시 공간적 관점에서 볼 때 공동체와 미래세대의 자산이기도 한데, 특별법으로 500%까지 용적을 주겠다는 건 곧 미래세대에 대한 약탈이나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다수의 대규모 공공택지 개발 경험이 있는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일단 이주 문제만 해도 지금 이주단지를 조성해 집단 이주를 시킨다는 건데 가정별로 직장, 학교 등에 따라 생활패턴과 거주 사유가 다 다른 상황에서 과연 집단 이주가 가능할지부터 의문”이라며 “잔뜩 용적률을 올려줘 새 아파트를 분양한다면 지금도 10억~15억원씩 가는 아파트를 과연 얼마에, 누구에게 분양하려는 건지도 궁금하다. 국회가 양심이 있다면 이런 법을 제정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최임락 국토교통부 국토도시실장은 “특별법에서는 공공성이 인정되는 곳에 한정해 용적·건폐율을 많이 주도록 돼 있고, 공공기여를 통해 도로나 녹지, 주차장 등 자족이 가능한 도시 재구축이 가능하다”며 “이주 문제의 경우 거주민이 스스로 이주를 선택할 수 있고, 유휴부지에 아파트를 지어 입주자 전용으로 쓴 뒤 공공·영구임대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안이 있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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