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다른 중국의 성장세 둔화…의존도 낮출 기회”
[주간경향] 정부는 올 초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로 올해 한국 경제가 상저하고(상반기 저조하다가 하반기에 회복) 흐름을 보일 것으로 기대했다.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인 중국이 경제활동을 본격화하면 우리 수출과 내수도 회복될 것이란 의미다. 기대와 달리 중국 경제는 부진의 늪에 빠졌다. 향후 성장세가 둔화할 것이란 전망도 많다. 국책연구원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 11월 14일 발표한 ‘2024년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성장률을 종전(올 5월) 2.6%에서 3.0%로 0.4%포인트 올려 잡으면서도 중국에 대해서는 종전(5.5%)보다 0.2%포인트 낮춘 5.3%로 하향 조정했다. 내년 중국 성장률 역시 4.7%에서 4.5%로 0.2%포인트 낮춰 잡았다. 부동산 경기 침체, 경제 주체들의 심리 위축, 대외 불확실성 확대 등을 불안 요인으로 꼽았다.
한국 경제는 중국 경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대중 수출 비중은 2018년 기준 26.8%에 달했다. 비록 최근 수출 비중이 20% 밑으로 떨어졌지만, 중국은 여전히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다. 중국 경제가 부진할수록 우리 경제 회복세도 그만큼 더뎌진다.
KIEP는 국제통화기금(IMF)과 공동으로 지난 11월 29일 콘퍼런스를 열고 중국 경제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 등을 논의했다. 콘퍼런스에서 ‘중국 충격의 한국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안성배 수석이코노미스트 겸 국제거시금융실장은 “중국의 성장세 둔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12월 5일 세종시 국책연구단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만난 안 실장은 “지금이 우리 경제의 대내외 구조 개혁 기회”라며 “중국 의존도를 점차 낮춰가기 위한 공급망 다변화, 서비스 수출과 본원 소득의 확대 등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우리와 중국은 경제적으로 그간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어왔다. 그 과정에서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양국 간 경제적 교류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2001년) 등 글로벌 생산체계에 편입되면서 이런 관계는 더욱 빨라지고 확대됐다.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성장을 견인한 주요 요인에서도 중국의 성장과 양국 간 긴밀한 경제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홍콩을 포함한 대중국 수출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보더라도 2000년엔 약 17%였는데 2018년엔 34% 이상까지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 일본, 유럽으로의 (수출) 비중이 크게 축소되긴 했지만. 여하튼 이러한 대중 수출 증가는 소비재보다는 부품 등 중간재가 이끌었다. 예를 들어 2010년대 우리 경제의 대표 상품인 반도체 수출을 놓고 보면, 대중국(홍콩 포함) 수출 비중이 2000년 10% 안팎이었으나 2018년엔 68%까지 치솟았다. 수출된 중간재는 중국 내에서 최종 상품으로 완성된 후 한국이나 제3국으로 수출되거나 중국 내에서 소비되는 식으로 쓰였다. 우리 경제의 경기변동에 수출이 기여하는 정도를 생각해보면, 중국의 경기둔화가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 경제가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어떤가.
“크게 무역과 금융, 두 가지 경로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무역 경로는 중국의 한국산 중간재에 대한 수요 둔화(또는 확대)가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는 중국 내수 둔화에서 오는 부분도 있고,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중국의 수출 둔화에서 오는 부분도 있다. 다만 경기둔화 요인 말고도 한국산 중간재 수요 감소가 일어나는 부분이 있다. 뭐냐면 중국 자체의 중간재 경쟁력 상승이다. 중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제품의 질을 포함한 가격경쟁력이 따라 올라갔는데, 그 결과 한국산 중간재를 대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 몇 년 동안 대중국 수출이 줄어드는 데는 이러한 현상이 배경에 있다. 금융 경로는 환율 경로나 자본 유출입 경로 등이 있을 것이다. 2010년대 후반엔 원화와 위안화의 동조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지만, 최근 중국이 저인플레이션과 경기둔화에 따라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하고 있어 이러한 현상이 약화됐다. 원·위안화 환율의 불안정성이 확대되면 대중국 투자 수익의 변동성이 커지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한편으로, 중국의 장기 성장 둔화 가능성과 정책 불확실성 등으로 해외투자자들의 신뢰가 떨어지며 중국으로의 자본유입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환율에 미치는 영향을 제외하고서도 중국 금융시장에서의 투자 수익률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중국 시장에서 유출된 자본이 한국이나 인도네시아 등으로 유입됐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경제의 부진과 성장세 둔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은행은 최근 중국의 부동산 경기 부진 장기화, 글로벌 경기 둔화,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중국 성장의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고 분석한 바 있다. 중국의 고성장 추세가 점차 하향되고 있는 원인은 뭐라 보나.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성장률이 점차 낮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국 경제도 장기 성장 경로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다만 성장률 하락 속도가 다소 빠른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작년의 경우만 보더라도 중국 정부가 당초 제시한 성장률 목표(5.5%)에 크게 못 미치는 성장률(3.0%)을 기록하지 않았나. KIEP도 (중국의 하방 리스크를 제시한) 한국은행의 분석과 비슷한 입장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중국 정부의 정책 방향이 가진 리스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은 과거 일본과 한국이 겪었던 문제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고성장 시기가 끝나가면서 나타나는 과도한 경쟁에 대한 피로감 같은 거다. 이러한 시기에는 불평등이 증가하면서 경쟁은 치열해지고 개인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좁아진다. 교육과 부동산의 과열 양상이 나타나고 새로운 외래문화의 영향력이 빠르게 확대된다. 장기적으로는 저출생과 인구 고령화가 진행된다. 우리가 ‘일본화’라고 불렀던 현상이 중국에서도 나타나고 있고, 그것이 성장 단계로 보면 상대적으로 조금 일찍 시작됐다고 본다. 중국 정부는 (분배를 강조하는) ‘공동부유’를 앞으로 나아갈 길로 제시하면서 부동산 규제나 사교육 제재 등 다소 과격한 정책을 도입했는데, 이것이 단기적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콘퍼런스 주제 발표에서 언급한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 노출돼 있다’라고 강조한 것과 비슷한 의미인가.
“중진국 함정은 여러 국가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신흥국에서 중진국까지는 앞서 성장한 국가들의 성장 전략을 따라가면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으나, 여기서 선진경제로 옮겨가는 데는 큰 도약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가 손에 꼽을 정도인데 우리나라가 그중 하나다. 중국은 규모가 큰 경제인데 현재로서는 앞서 언급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 선진경제로 이행이 쉽지 않을 것이란 의미에서 소개한 것이다.”
-미·중 갈등에 따른 견제도 중국 성장세 둔화 전망의 주원인일 텐데. 실제 중국이 받는 견제의 내용과 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보나.
“미국 내에서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에 대한 불만은 오래됐다. 오바마 정부 때 대응 방안에 대한 논의도 있었고. 트럼프 정부 들어 양국 간 관세 분쟁으로 크게 표면화됐다. 일반적인 상품에 관세를 부과해 무역 불균형을 잡겠다는 시도였다. 현 바이든 정부에서는 미래산업, 첨단산업 중심으로 중국의 추격을 늦추는 정책을 도입 중이다. 반도체는 사실상 최첨단 정밀 제조업인데 가격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만들어 내려면 축적된 기술이 체화된 장비가 필요하다. 이러한 장비의 중국 내 도입 경로를 모두 막겠다는 방향이다. 우리 경제의 주요 산업이 반도체라서 단기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긴 하나, 반도체 시장의 중기 사이클과 겹친 부분도 있어 직접적인 영향의 식별이 쉽지 않다.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의 추격을 다소 늦추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인공지능(AI) 부문도 일단은 장비 도입을 규제하는 방향이 우선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을 견제하고 싶어하겠지만 양국의 관련 산업에서의 인력 구성이나 중국 내 지적재산권 보호의 미흡 등을 볼 때 당분간 이 부분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이런 성장 둔화 우려, 경제 부진의 영향으로 우리 경제가 과거와 같은 중국 특수를 누리기는 어려우리라는 분석이 많다.
“동의한다. 우리가 중국에 수출하는 품목은 대부분 중간재다. 문제는 중국이 자체적으로 중간재를 생산하는 능력과 품질이 향상되면서 과거만큼 한국에서 수입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때문에 과거와 같은 특수를 기대하기가 힘들다고 보는 것이다. 아울러 큰 틀에서 대중 수출은 구조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반도체 수출을 걷어내고 나면 대중국 수출 둔화는 이미 상당 기간 지속해왔다. 이제는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소비재, 고도화된 부품과 장비, 문화 상품 수출 등에 집중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기대한 중국 리오프닝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중국 내부에서조차 리오프닝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최근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쌓였던 가계 저축을 상당 부분 소진하면서 소비 증가가 일어났다. 중국의 경우 팬데믹 기간 가계에 대한 직접적인 현금 지원이 선진국에 비해 크지 않았던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직 상당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는 인식 때문에 가계가 소비를 크게 늘리지 않는 상황이다. 청년층의 지속적인 실업률 증가, 중장년층의 미래 안정을 위한 저축 확대, 소비 여력 축소 등으로 전 연령대에서 소비가 위축돼 있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 둔화와 지방정부 부채 문제, 지속되는 미·중 갈등이 팬데믹 이후의 회복을 지연시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우리 경제의 상저하고 전제 조건으로 중국 리오프닝 효과를 강조한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어려워진 주요인 중 하나는 중국 경제의 둔화다. 중국 경제가 살아나야 글로벌 반도체 경기가 회복될 것이고, 이 영향으로 반도체 시장이 중요한 우리한테도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리오프닝 효과를 강조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설비 등 투자를 해온 기업 입장에서 보면 리스크가 커진 상황인데.
“기업마다 입장이 다를 것이다. 인건비가 싸서 중국에 법인을 세우거나 공장을 지은 기업들의 경우, 계속해서 투자를 늘릴 것인지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 비해 중국 내 인건비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경우는 미·중 갈등(또는 미국의 중국 견제)의 영향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품 그 자체의 품질과 가격을 놓고 경쟁력이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14억 인구라는 중국 시장 자체의 매력도를 무시할 수는 없다.”
-콘퍼런스 주제 발표에서 중국의 성장세 둔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우리 경제의 대내외 구조 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 경제가 중국 경제 고성장의 수혜를 누리면서 의존도 또한 상승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대중 중간재 수출에 의존한 부분이 컸다면, 이제는 다음 단계로 시장 다변화, 서비스 수출 확대, (해외 공장을 짓거나 해외 생산 수단을 제공해 얻는) 본원 소득 확대 등이 필요할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고 그동안에도 여러 노력을 해왔던 부분이다. 이 가운데 정책적 측면에서 정부가 적극 추진할 것은 해외 투자를 통한 소득 확대다. 에너지 등 자원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과 인구 고령화에 따른 경상수지 감소 등을 감안하면 특히 집중해야 하는 부분이다. 예컨대 우리의 투자 재원 중 가장 덩치가 큰 국민연금을 해외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외에서 소득을 늘리면 경상수지 개선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다만 국민연금을 통해 본원소득을 늘릴 수 있도록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를 촉진하는 규제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를 진행해왔다. 2021년 중국의 요소 수출 제한에 따른 ‘요소수 대란’ 이후 공급망 다변화를 적극 추진한 일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요소 통관 제한 조치로 또다시 요소수 대란 사태가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년여간 바뀐 게 없다는 지적마저 나오는데.
“‘요소수 대란’ 이후 우리의 대중국 의존도는 2022년 71.7%까지 낮아졌으나 올해 10월 기준 다시 91.8%까지 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중국산 요소가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싸고 품질도 좋기 때문에 다른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와 같은 사태를 피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찾자면, 우선 수급 우려에 대응하기 위한 공공 비축 물량을 늘리는 일이 중요하다. 아울러 한·중 관계 개선을 통해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응 방안이 될 수 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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