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식구 감싸기’ 방지법 무색… 軍 ‘수사권 없는 수사’ 여전 [심층기획-군사법원법'헛바퀴']
‘故이예람 중사 사건’ 계기 법개정 불구
‘채 상병 사망’ 軍이 조사… 실효성 논란
단순사망 이관 안돼… 혐의 있어야 가능
경찰도 사실상 軍조사 끝나야 수사 개시
“사실관계만 정리… 신속 이첩하게 개정을”

◆3대 범죄 수사 지휘·감독권
박 전 단장 항명사건의 핵심 쟁점은 민간 수사기관에 관할권이 있는 3대 이관 범죄의 조사와 관련해 국방부 장관과 해병대사령관이 개입할 수 있는지 여부다. 이첩 보류 및 재검토 지시를 할 권한이 있다면 박 전 단장이 항명을 한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윗선의 부당한 외압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개정법 시행 후 국방장관이나 각군 참모총장이 3대 이관 범죄 수사에 개입한 사실은 이번 채 상병 사건 말고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이 국방부 조사본부와 육·해·공군 검찰 및 수사단에서 받은 답변서에 따르면 군사법원법 개정 후 3대 이관 범죄에 대해 국방장관이나 참모총장 결재를 거쳐 민간 수사기관으로 이관된 사례는 채 상병 사건 단 한 건뿐이다. 지금까지 각군 수사기관에서 1000건 넘는 사건을 자체적으로 조사한 뒤 경찰 등에 이첩했다는 것이다.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 해군본부와 방위사업청에서 법무관을 지낸 문건일 변호사(법무법인 일로)는 “법률을 문헌적으로만 해석하면 다툼의 여지는 있다”면서도 “국회의원들이 입법 과정에서 이야기한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장관과 해병대사령관은 그런 지시를 내릴 권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문 변호사는 이어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인 만큼 국회 입법 취지를 존중하려고 하겠지만 법원의 판단이 나와봐야 알 것 같다”며 “국회와 국방부가 서로의 해석론을 가지고 다투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역임한 조동양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는 “장관이 왜 결재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종 결정권자는 해병대사령관이고 사령관의 명령을 위반했다면 항명죄가 성립될 수 있다”면서도 “이첩 보류 수준을 넘어 내용에 대한 지시는 정당한 지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조 변호사는 “(특정 인물을 피의자 명단에) 넣어라, 빼라고 한다면 직권남용이 된다”고 지적했다. 국방부 검찰단이 경찰에 이첩된 기록을 회수해 온 것에 대해선 “기록을 반환할 권한이 없다”며 “기록 반환에 관여한 경찰은 근거없이 공문서를 준 것이므로 최소 징계 책임은 져야 한다”고 말했다.

비단 채 상병 사건뿐만 아니라 개정된 군사법원법 시행 이후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지난달 군사법원에 대한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제출된 업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7월1일부터 올해 6월30일까지 민간에 이관된 범죄 1140건 중 재판권이 군에 있는지, 민간에 있는지 혼동한 사례만 약 150건에 이른다. 또 민간과 군 간에 군인·군무원의 수사 개시 및 처분 결과 통보 여부를 교차 검증할 수 있는 체계가 확립되지 않아 통보를 누락한 사례도 100건 이상 발생했다. 수사권이 민간에 있음에도 이관되지 않거나 사건을 넘기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전체의 10%가량 된다는 뜻이다. 국방부도 “민간 이관 범죄의 경우 군 수사기관별, 업무 담당자별로 차이가 있다”며 “이첩 시기, 방법에 대한 일관된 기준 수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3대 이관 범죄의 경우 군이 기초적 사실관계만 정리해 신속히 이첩하게끔 법을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동양 변호사는 “피의자, 죄명을 적는 것도 수사의 영역이므로 조사기관에서는 할 수 없다”며 국방부 훈령의 별지 인지통보서에 피의자 죄명 등을 적는 칸이 있는 것에 대해 “군이 수사권을 완전히 넘겨주고 싶지 않으니 일부 권한이라도 남겨놓고 싶어한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일수록 軍형사사건도 민간법원서 관할”
채 상병 사건을 계기로 시민사회에서는 군사법원법 무용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선진국일수록 군 형사사건도 별도의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 형사법원에서 관할한다는 점을 들어 군사법원 자체를 폐지하거나 적어도 평시에는 군사법원을 운영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한국법제연구원이 펴낸 ‘최신외국법제정보 2018’ 제1호에 따르면 독일은 과거 군사지휘권 중심의 군사법원 제도를 시행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없앴다. 현재 독일은 기본법 제96조 제2항에서 군사형사법원 설치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전시 또는 해외에 파병되거나 군함에 승선하고 있는 군 소속원에 대해서만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 즉, 평시에 발생한 일반 형사사건은 군사법원이 아닌 일반 법원이 관할한다. 군사법원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재판하지도 않는다. 사법권 및 재판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군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독일 이외에도 군사법원과 민간 법원이 혼합된 형태로 운용되는 나라는 헝가리, 핀란드 등이 있다.
영국의 군사법체계는 오로지 군 복무규범 위반에만 적용된다. 재판장인 법무관을 모두 민간 법조인으로 대체해 투명성을 높였다. 군검찰의 경우도 군 지휘·명령 계통으로부터 독립돼 있다. 수장인 검찰국장의 경우 기소 등 소관 업무에 관해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할 의무가 없다.
우리 군사법원의 경우도 대부분의 사건은 일반 형사사건이다. 군 조직과 관련된 특수한 범죄는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군법무관 등이 순환적으로 보직을 맡고 있는 구조에서 재판 독립성이 우려되며, 군내 비리가 축소·은폐될 위험이 있다는 우려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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