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예산 부족 사태, 왜… 의경 공백에 ‘인파 관리’ 수요 예측 실패
올해 인건비 예산안 보니, 전년比 4.4% 증액 편성
최근 5년 평균 3.9%↑… 18·21년보다 작은 증가폭
‘이태원참사’ 계기 경력 지원 폭증… 추산 적절했나
경찰청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연말까지 전국 경찰관들의 초과근무 시간을 제한하는 전례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의경이 완전 폐지된 공백을 경찰 인력이 메꿔야 하는 상황인데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올해 인파 밀집 지역에 경력을 강화했는데, 이를 예산안에서 충분히 예측하지 못한 탓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1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경찰청은 10월 초 “시·도 경찰청별로 남는 예산에 맞춰 가능한 초과근무 시간 기준을 정하고, 이를 넘기면 휴가로 적립하도록 하라”는 내용의 계획을 공지했다. 일선 경찰들 사이에선 “돈을 못 받아서 출동 못 한다”고 자조하는 등 비판이 커지고 있다.
◇ 올해 경찰청 소관 인건비 예산 4.4% 증액… “충분했나” 논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경찰청 소관 인건비 예산은 지난해 결산 기준 9조2108억원에서 올해 9조6150억원으로 4.4% 증가했다. 예년보다 높은 수준의 증가율이긴 했지만, 2018~2022년 연평균 증가율이 3.9%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넉넉한 증액 편성은 아니었다. 2018년, 2021년 관련 예산이 전년 대비 각각 4.5%, 4.8% 증가한 것보다 증가 폭이 작았다.
사상 초유의 예산 부족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예측하지 못한 추가 인건비 소요 때문이었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비슷한 상황을 막기 위해, 올해엔 인파가 밀집될 것으로 예상되는 행사 때마다 대규모 경력이 동원된 것이다. 일례로 지난달 5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세계 불꽃축제에는 100만명 인파가 몰려 경력이 대거 투입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예산 전문가는 “이날 초과 근무 수당으로 하루에만 5억원이 들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불꽃축제뿐만 아니라 각종 행사에 대규모 경찰 인력이 동원되는 일이 잦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경찰 기동대가 집회·시위 및 행사와 축제 등에 지원된 건수는 ▲2021년 316건 ▲2022년 1604건 ▲2023년 1~8월 2570건으로 늘었다. 인파 운집 장소에 지원된 경력은 지난해 월평균 7068명에서 올해 1만8780명으로 3배 폭증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올해는 특히 예기치 못한 집중 호우 사태 등에도 경력이 많이 동원됐다”며 “게다가 하반기에는 흉기 난동 등 강력범죄로 인한 특별치안활동이 전개되면서 초과근무수당 소모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의경이 ‘완전 폐지’되며 공백이 생긴 인력을 경찰들이 오롯이 감당했단 점도 경찰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의경 폐지 발표 당시에도 경찰 기동대 1명이 의경 3명 몫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며 “그것이 여의찮으니 자원 근무로 메워야 했고, 이는 모두 초과 수당으로 잡힌 것”이라고 했다. 경찰의 의경 인력 대체, 인파 밀집 행사 대응 강화에 따른 종합적인 비용 증가 몫을 제대로 추산해 예산안에 반영한 것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 내년도 정부안 4.4% 증액… 경찰들 “구체적 예산 부족분 밝혀라”
내년도 예산안에는 이런 사정을 감안해 인건비를 편성한 만큼 문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경찰청 소관 인건비는 10조356억원으로 편성됐다. 올해 예산 대비 4.4% 증액된 것이다. 경찰청과 시도경찰청 인건비는 각각 6.9%, 4.1% 증액된 6611억원, 9조2249억원이 배정됐다.
경찰 직원들은 경찰청이 제대로 된 구체적인 예산 부족 원인과 내역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지방경찰청에서는 일반 직원들 승진이 예년보다 늦어지는 것 역시 이런 인건비 부족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경찰 직원 내부망 ‘폴넷’에는 지난달 22일 ‘초과근무 수당 삭감, 경찰청장의 책임이다’란 제목의 전담경찰직장협의회 입장문이 올라왔다. 이들은 “경찰청은 예산 운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숨긴 채 14만 경찰관에 손실을 전가하고 있다”며 “경찰청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청은 현재 경찰 노조 격인 전국 경찰직장협의회(경찰직협)와 초과 근무 시간 제한과 관련한 실무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직협은 경찰청에 구체적인 예산 부족분을 밝히라고 요구해 둔 상황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5일 내부망 메시지를 통해 “이유를 불문하고 유감스럽고 죄송하다”며 “필요한 근무를 하고도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못하는 억울한 사례들이 나오지 않도록 올해 책정된 예산 범위 내에서 나머지 재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을 약속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난해 8월 말 정부안이 완성된 이후인 10월에 이태원 사태가 발생한 탓에, 인파 관리에 따른 초과근무수당 예산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며 “과거 동결 내지 감액 기조를 이어온 관련 예산을 내년도 정부안엔 6.4% 증액(1조3979억원 편성)해 둔 만큼, 내년엔 문제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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