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앞둔 중장년, 귀농 택한 청년…'전북 익산'에 모인 이유는

유동주 기자 2023. 12.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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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익산시청
익산 아가페정원.


국내에서도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현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북 익산시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문화관광 코스를 제안했다.

KTX와 고속도로 등 교통 요건이 좋고 도농 복합 중소도시인 익산에서의 제2의 삶 혹은 중장기 체류를 여행자들이 자연스럽게 고려할 수 있도록 관광지와 주거지로서의 익산을 알리는 것이다.

익산문화관광재단이 주관하고 여행 플랫폼 노는법이 '힐링 투 익산'이라는 이름으로 지난달 말 세차례 진행한 이 행사에선 최근 트렌드인 '웰니스 투어' 체험 코스가 소개됐다. 건강에 관심이 커지는 중장년층에게 익산에서의 건강한 여행과 삶을 알리자는 취지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을 받은 문화다양성 확산사업의 일환으로 시범 운영된 이 사업을 통해 50~60대 참가자들이 은퇴 뒤의 건강한 삶의 터전으로 익산을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건강하게 나답게 아름답게' 익산서 가능한 '웰니스 체험 관광'

행사는 '나다움', '부부다움', '아름다움'이라는 세가지 테마로 진행됐다. 참가자 50여명은 '웰니스 투어'라는 취지에 맞게 최재희 운동코치의 운동 프로그램에 맞춰 아침 조깅과 맞춤 운동 처방 등을 경험할 수 있었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중장년 은퇴자들에게 큰 종합병원의 유무는 거주지 선택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이기도 하다.
최재희 코치의 운동처방 '원포인트 PT'와 아침조깅 프로그램에 참석중인 '힐링 투 익산' 참가자들/사진= 김은영 작가

이번 행사 중 '아름다움' 테마 코스는 주로 원광대 한방병원에서 이뤄졌다. 은퇴 이후 삶을 계획하는 이들에겐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고 양한방 대학병원을 모두 갖춘 익산은 그 점에서 매력적인 도시다. 한방 치료를 체험한 참가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여기에 운동처방을 통해 자신의 몸에 더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만들자는 것도 이번 '힐링 투 익산' 행사 취지 중 하나였다.

익산권 주요 관광지와 한방병원 등을 활용한 웰니스 투어 체험 행사는 아가페정원, 미륵사지, 딸기 스마트팜, 산림문화체험관, 춘포마을, 함라한옥단지 등에서 이뤄졌다.

베이커리 까페와 체험 프로그램이 있는 익산 함라한옥단지.


익산은 여행지로서는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다. 특히 미륵사지 외에는 금방 떠올릴 수 있는 관광지가 많지는 않다. 최근 뜨고 있는 곳들이 이번 행사에 포함됐다. 사회복지시설인 '아가페 정양원'이라는 수급자를 위한 무료 요양원의 내부 정원이었다가 일반 개방한지 얼마 안 된 아가페정원이 대표적인 곳이다.

익산의 숨겨진 정원 산책 코스로 각광받으면서 핫플레이스가 된 곳이다. 사계절 언제라도 다양한 꽃과 나무의 조화를 볼 수 있다. 특히 이곳 메타세콰이어길은 사진 명소로 유명하다.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정원임에도 입장료가 있는 타 지역 명소에 비해 더 낫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레킹 코스로는 익산 산림문화체험관도 추천된다. 위도상 한반도 최북단이라는 녹차밭도 조성돼 있어 제다 체험도 가능하다. 녹차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높은 위도에 걸쳐 있는 게 익산이다. 이곳 차밭은 보성이나 하동 등 남쪽 지역처럼 넓지는 않지만 산림 속에 조화롭게 있어 운치는 충분하다.

익산 산림문화체험관에서 차 관련 강의를 듣고 제다체험을 하고 있는 부부다움 테마 여행 참가자들.

익산, 미륵사지 건너뛰고 아가페정원·산림문화체험관·춘포마을 가보자

익산에도 천주교 성지가 있다.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주교, 다블뤼신부와 함께 귀국하면서 이용한 나루터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나바위 성당이다. 당시 서양식 건물 건축 기술자였던 중국인들이 프랑스 신부 감독 하에 건설한 곳이다. 목조였던 성당은 1916년 일제시대 벽돌건물로 바뀌었고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전주 전동성당, 원주 용소막성당 등 비슷한 시기 만들어진 성당들과 비교해 보는 것도 성지 여행의 묘미다.
익산 나바위 성당.

춘포마을도 익산의 떠오르는 곳 중 하나다. 1914년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역사가 보존돼 있는 춘포역은 일제 강점기 '대장역'으로 시작됐다. 마을 이름도 원래는 일본인들이 만든 '넓은 들판'이란 의미를 담은 '대장촌(大場村)'이었다. 1996년에야 '춘포역'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마을이름도 일제 잔재를 없앤단 이유로 '춘포면'에서 따온 춘포마을이 돼 행정동 이름도 익산시 춘포면 '대장리'가 '춘포리'가 됐다.

조선시대 말기까지도 홍수가 빈발해 사람이 살기 어려웠던 이 곳에 일본인들이 들어와 물길을 바로 잡는 제방을 만들어 비옥한 농토로 개간한 뒤, 쌀농사를 위주로 하는 대농장을 건설하면서 마을이 생성되고 역이 들어서게 됐다.

대대로 구마모토의 영주 가문이었던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일본 총리의 친조부가 이 마을을 개척한 대농장 소유주였다. 당시 대장촌은 일본에 '부자마을'로 알려져 일본 농민들에겐 일종의 '이상향'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일본에서 아무 주소없이 '조선 대장촌'이라고만 적고 수신인만 정확히 쓰고 편지를 보내도 우편이 제대로 배달됐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곳의 풍족함은 '갈등'이 아닌 '조화'를 가능하게 했다. 마을 역사를 기록한 책에 따르면 다른 곳엔 흔했던 대지주를 상대로 한 소작쟁의가 거의 없을 정도로 대농장의 소작료도 합리적인 수준이었다. 그런 배경에서 같은 소작농인 일본 정착민들이 현지 주민들과 어울려 살면서 큰 마찰없이 쌀농사를 같이 짓고 살아갈 수 있었다. 일제가 패망하면서 마을의 주류를 이루던 일본인들이 일시에 쫓겨났지만 그런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어 흡사 일본 농촌 마을에 온 듯한 풍경도 이곳에선 느낄 수 있다.

익산 춘포마을 일식 목조주택 '호소카와 농장가옥'.


마을 가운데 남은 일제 말기 호소카와 농장 기계 관리인이었던 '에토'가 1940년 지었다는 2층 일식 목조가옥도 그런 분위기에 한몫하고 있다. 적산가옥이 많은 인근 군산이나 전남 목포에선 보기 힘든 정도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이 곳은 사유재산으로 사람이 계속 주거하면서 관리가 잘 돼 85년 된 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한 외형을 유지하고 있다.

익산 춘포마을. 까페 춘포와 펜션.


춘포마을엔 대농장 소유였던 정미소 설비와 부지를 그대로 살려 최근 문을 연 갤러리와 농장 내부 관사 일부를 활용한 까페와 펜션도 운영되고 있다. 갤러리는 호소카와 농장의 정미소였던 곳을 공기업을 은퇴한 대표가 인수했다가 우연한 기회에 문화공간으로 바꿔 나가고 있다. 조덕현 작가의 설치 미술 작품이 전시돼 있는 이 갤러리는 쌀농사로 살아가던 춘포마을의 역사가 그대로 엿보이는 특별한 공간이다. 100년 넘은 일제시대 만들어진 주요 설비와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1998년까지도 도정공장으로 이용되던 곳이다.

까페와 펜션은 서울 살이에 지친 MZ세대 청년들이 뭉쳐 창업한 공간이다. 호소카와 농장과 함께 대장촌의 터줏대감이던 이마무라 농장 관사와 부지가 농촌민박과 트렌디한 까페 그리고 워케이션 공간으로 변신했다.

이런 문화관광콘텐츠가 코로나 시기를 거쳐 하나 둘 채워지면서 마을이 새로운 관광명소로 탈바꿈 되고 있는 셈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 정착민 뿐 아니라 소작으로 살아가던 현지 주민 모두가 굶지 않고 넉넉하게 먹고 마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던 이 마을은 100여년이 흐른 현 시점에도 은퇴자와 청년들이 로컬에 문화관광콘텐츠를 채우고, 정착하고 싶은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익산 춘포도정공장갤러리.

'쌀농사'로 풍족했던 춘포 대장촌, 익산의 '과거'…스마트한 청년 부부의 '딸기' 농장체험장, 익산의 '오늘'
익산 스마트팜 체험 농장 '오늘의 딸기'에서 잘 익어가고 있는 딸기/사진=오늘의 딸기
익산 용동면엔 올해 첫 딸기 수확에 들어간 최신 스마트팜 체험 농장인 '오늘의 딸기'가 있다. 이 딸기 농장을 운영하는 30대 부부는 불과 2년전만 해도 익산과 아무 연고없이 수도권에서 직장에 다니던 청년들이었다. 농업을 통한 귀촌을 생각하면서 고르고 고른 곳이 익산 농촌이었다. 그만큼 익산은 스마트팜 등 농사에 뜻을 둔 초보 청년농부에게도 매력적인 곳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부부는 서울에서도 KTX로 1시간 남짓, 자동차로도 2시간 이내에 올 수 있으면서 주요 기반시설은 갖춘 도농 도시 익산의 매력을 알아봤다고 말한다. 서울 사는 지인들과의 인연을 이어가면서도 농사에 전념할 수 있고, 인근 전주와 대전에서 문화와 쇼핑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익산엔 있더란 것이다.

안전한 실내 놀이공간을 꾸미고 케이크만들기 등 체험프로그램을 곁들여 농장을 아이와 함께 체험학습으로 올 수 있는 곳으로 만든 젊은 부부의 감각이 힘을 발휘해, 이 곳 농장의 빨갛게 잘 익은 딸기는 오늘도 고사리손에 의해 따여지고 있다.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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